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평상에서 보았다

거문슈퍼 앞 평상에서 바라본 섬사람들의 삶과 일상… 매시간 소규모 산다이가 일어나는 풍경
등록 2016-05-29 09:06 수정 2020-05-03 04:28

지난번에 벤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등대 가는 길 고개에 있는 벤치. 내가 툭하면 앉아 음악 들으며 담배 피우는 곳. 수평선과 무인도들, 바람과 해류와 파도가, 철새의 비행이 보이는 곳. 가까이에 좋아하는 벤치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비슷한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거문슈퍼 앞 평상. 언젠가 등장한 적 있는,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슈퍼마켓 하는 선배네 가게이다. “아, 그냥 냅둬. 당구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치게” 했던 그 사람. 나하고는 책 작업을 함께 하기도 했는데 이 양반 때문에 나는 종종, 거문도에서 슈퍼를 하려면 대학원을 나와야 한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근 십 년 가까이 나는 이 평상을 자주 찾았다. 지금도 최소한 하루에 한 번씩 앉아 있다. 평상이라는 게 벤치처럼 아무나 앉아도 되는 자리지만 몇몇 이에게는 ‘한창훈 고정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친한 장소이다.
내 재산 두 개, 고갯마루 벤치와 평상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이 평상에서 가장 행복할 때가 있다. 따스한 햇살 받으며 낚시 채비를 하는 시간. 이 시간이 정작 낚시하는 것보다 더 좋다. 나가면 고생이니까. 가지고 있는 재산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고갯마루 벤치와 더불어 이 평상을 댈 것이다. 물론 내 소유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거문도를, 정확히는 거문도 주민들의 삶과 일상을 바라보고, 읽어낸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과 소문도 듣게 된다.

워낙 자주 가다보니 앉아 있는 시간도 매번 다르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 계절이 흘러가는 것을 보는 장소가 벤치라면 이곳은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곳이니까.

혹시 첫차를 타보신 적 있으신가. 시내버스나 인근 도시로 가는 직행버스 말이다. 막차는 종종 타보실 것이다. 첫차와 막차는 분위기가 비슷할 것 같지만 정말 다르다. 막차 풍경은 일상에 지친 몰골이 대부분이지만 새벽 첫차는 인생 자체에 지친 이들이 따로 모여 있다. 몰랐던 마을이 따로 존재하듯이(시베리아 어딘가는 제2차 세계대전 자체를 몰랐던 마을이 있단다), 생각지도 못했던 입성과 사연들이 거기에 있다.

이를테면 천안이나 인천, 동두천에서 서울 가는 새벽 버스를 탄다면 원거리 출근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구경할 수 있다. 다들 양복 양장 차림이지만 곧바로 잠에 빠져든다. 새벽 공기를 가르는 버스 속, 고달픈 잠깐의 수면.

블루칼라는 더하다. 지방에서 첫차를 타면 서로 아는 이들이 타고 있는 풍경을 보기 어렵지 않다. 대부분 같은 공장이나 현장에 다니는 이들이다. 내가 노가다 하러 다닐 때도 그랬다. 다른 지역에서 일하게 되면 보통 함바(현장 식당)에 달려 있는 숙소에서 잤지만 집에서 다닐 때는 꼼짝없이 첫차를 타야 했다.

이십 대 후반 나는 대전 인근 세천이란 곳에서 살았다. 도심지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으로 도시 저편 공사 현장으로 가려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충북 옥천군에서 넘어오는 첫차를 타야 했다. 거기엔 나와 비슷한 행색의, 별빛과 함께 움직이는 중년들이 타고 있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내 팔자가 네 팔자구나, 그런 느낌. 특히 겨울이면 쌓인 눈을 헤치며 엉금엉금 기어오는 버스를 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고단함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밀물처럼 밀려들곤 했다.

수평선 너머 배가 들어올 때마다

섬의 새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이 터오르기 직전부터 깊은 밤까지 이 평상에서 보는 섬마을 풍경을 하루로 압축해서 시간대별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AM 5시.

수평선 너머에서 집어등 불빛이 한두 개 보인다. 불빛을 키우는 것은 암흑이다, 라는 시구처럼 그것은 어둠을 더 깊고 짙게 만들고 있다. 제주 쪽에서 온 갈치잡이 배들이다.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되려면 한 달 정도 남았지만 혹시나 하고 나와본 것이다. 머잖아 여름 밤바다, 수평선 너머의 불야성이 시작될 것이다.

희미한 새벽 기운이 퍼지면 중년, 노년들의 새벽 운동이 시작된다. 두세 사람씩 짝지어 등대를 향하여 걷는다. 남자들은 엠피스리(MP3)로 ‘뽕짝’을 틀어놓는다. 여자들은 그런 것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대신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그녀들에게서 계속 나온다. 이 시간대 누구와 짝을 짓느냐에 따라 평소 친분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 옆으로 새벽 물살을 가르며 그물 걷으러 가는 배들이 있다.

AM 7시.

항구의 기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밤 어장 나갔던 배가 들어온다. 이집 저집 문 열고 사람들도 나온다. 운동 갔던 이들이 돌아오고 쓰레기 수거차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집집마다 밥을 짓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굴뚝에서 연기가 났던 시간대이다.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것. 그건 사람살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다. 백도 가는 부정기 관광선이 뜨기도 한다. 나이 든 관광객은 멀쩡한 얼굴로, 젊은이들은 잠과 술이 덜 깬 얼굴을 하고 선착장을 향해 종종걸음을 걷는다. 손님이 많을 때는 이렇다. 이 시간에 다녀오면 오전 여객선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AM 10시20분.

전남 여수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도착한다. 섬에서 가장 복잡한 시간대이다. 여수로 나갈 관광객들이 일찌감치 모여들어 터미널은 북새통이다. 섬에서의 마지막 음주들 하느라고 가까운 식당도 마찬가지이다. 화물을 찾기 위한 주민들도 모여든다. 여객선이 접안을 하고 새로운 관광객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오는 자와 떠나는 자가 엇갈리는 공간과 시간. 떠나는 자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곳이 들어오는 자에게는 미지의 세상이다.

손님들이 내리고 나면 주민들이 바지선 위로 가서 자신의 화물을 찾는다. 찾아서 밀차나 리어카에 싣고 나온다. ‘거북이 할아버지’는 섬마을 유일한, 화물 전문 배달꾼이다. 나이도 많고 말투도 어눌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이 일을 한다. 그러니까 화물 찾을 여유가 없는 이들이 (주로 식당과 가게다) 그에게 부탁하면 찾아서 가져다주는 것이다. 박스 하나당 가격이 오랫동안 1천원이었는데 작년 이맘때부터 2천원으로 인상을 감행했다.

그는 이 일로 자식들을 다 가르치고 키웠다. 단, 그는 절대 박스를 리어카에 묶지 않는다. 우리가 볼 때는 대충이지만 무슨 원칙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위태롭게 싣고 가다가 한두 개씩 떨어지는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도착한 관광객은 일행 수를 확인하느라 우왕좌왕이고 낚시꾼들은 서둘러 낚싯배에 오른다.

마을의 정적, 사람들 밥 먹으러 갔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PM 12시.

마을이 일순 조용해진다. 관광객들이 점심 먹으러 들어가는 시간이다.

PM 1시.

마을이 다시 시끌벅적해진다. 다들 밥 먹고 나왔기 때문이다. 나도 점심을 먹고 거문슈퍼 평상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다. 모든 이들이 다 지나간다. 관공서 직원들, 보건소 공중보건의, 간호사, 어부들, 농부들(이라고 부르기 딱히 뭐하지만), 그냥 주민들과 아이들. 몇몇은 잠시 옆에 앉아 바다 상태와 어제의 조황에 관해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다수의 관광객들. 같은 복장에 같은 등산화를 신은.

PM 4시.

오후 여객선이 들어온다. 오전과 같은 풍경이 만들어진다. 또다시 떠나는 자와 들어오는 자들이 엇갈린다. 마치 인생이 되풀이되는 것만 같다. 저 사람이 살았던 인생을 내가 되풀이하는 것처럼. 그저 말투만 조금 다를 뿐.

PM 6시.

인간처럼 밥을 자주 먹는 종족이 또 있을까. 저녁 먹는 시간이다. 그사이 백도나 등대 다녀온 이들이 식당에 들어앉아 위하여, 를 외친다. 다 먹고 나온 이들은 더 시끄러워진다. 취한 관광객은 길에서도, 심지어 여객선 안에서도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얌전한 청년도 예비군복 입으면 거칠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여행이 주는 일탈의 심정. 단체면 더욱 그러하다. 쪽수 많으면 용감해지니까. 혼자면 엄두도 못 낼 거면서. 트럭 몰고 다니는 주민들의 불만 중 하나가 그것이다. 안 비켜준다는 것.

PM 10시.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빗물 고인 바닥이 가로등 불빛을 반짝, 반사시키고 있다. 비 떨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나와 슈퍼 선배는 차양을 치고서 평상에 앉아 소맥을 마신다. 이곳 섬마을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파출소, 우체국, 수협 외에 중국집, 치킨집, 커피숍 따위가 딱 하나씩만 있다. 중국집은 저녁에는 문 닫는다. 유일한 치킨집은 육지의 수많은 호프집을 대신한다. 그래서 2차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선배와 나는, 비도 오고 하여, 가볍게 한잔 더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평상이다. 슈퍼는 이럴 때 좋다. 문만 열면 술이 있으니까. 선배가 사과를 하나 깎는 동안 나는 음악을 켠다. 시작은 레너드 코헨의 (A Thousand Kisses Deep)이다. 자리가 있고 술이 있고, 음악이 있고, 그리고 밤비 내리는 골목 풍경이 있다. 이만하면 좋잖은가. 사람들은 이런 순간을 얻기 위해 열심히 출근하고 경쟁하고 저축한다. 그러니 당장 할 수 있으면 지금 해야 한다.

이런 순간, 얻을 수 있다면 당장

이건 사람의 휴식이자 길의 휴식이며 풍경의 휴식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관광객들은 그렇지 못하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거리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왔다 갔다 한다. 그들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취한 중년 남자가 지나간다. 아는 얼굴이다. 우리를 발견하고는 어, 하는 자세로 선다. 그가 볼 때는 옹색하게 술 마시고 있는 우리가 구경감이다. 한잔 할 거냐고 묻자 한동안 멀거니 서 있다가 고개를 흔들고 걸어간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의 아내가 얼마 전에 육지로 가버렸다는 것을.

이번에는 후배 부인이 나타난다. 그녀도 취해 있다. 그녀는 우리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옆에 앉는다. 그리고 빈 잔을 들어 올린다. 빨리 따르라는 것. 그리고 운다. 들어보니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겨 속이 상한 것이다. 남편과도 싸웠단다. 그녀의 남편은 저만큼에서 걸어오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옆으로 사라져버린다. 비는 더 오고 여인의 울음소리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매시간대 풍경이 소규모 산다이들이다.

한창훈 소설가

※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