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산 최신형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하필 거친 아스팔트 위다.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다. 밀려오는 절망과 좌절, 허탈은 떨어뜨려본 사람만 안다. 전화도 잘 걸리고, 문자를 주고받는 데도 문제가 없다. 본디 목적으로 쓰기에 부족한 건 전혀 없어도 분노를 삭이기 어렵다. 움푹 파인 모서리와 흠집 난 액정은 내 몸의 상처보다 아프다. ‘매끄러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로 독일과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학 교수의 (문학과지성사 펴냄)은 매끄러움을 소재로 책의 첫머리를 시작한다.
“매끄러움은 미적 효과의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의 사회 전반적인 명령을 반영한다.” 흠집을 스스로 치료하는 표면을 가진 스마트폰, 작은 터럭 하나 용납하지 않는 브라질리안 왁싱, 반짝이는 금속성 소재 작품으로 인기를 끌며 제2의 앤디 워홀이라 불리는 제프 쿤스. 한 교수가 꼽는 매끄러움의 화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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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와!’라는 감탄사만 부르는 매끄러움에서 한 교수는 배타성을 발견한다. 동일한 소재로 만든 표면은 이물질을 허용하지 않는다. 타인을 받아들일 장소는 없다. 티끌 하나 없는 매끄러움은 소유욕을 부채질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소유는 소비다. 소비는 자기중심적 욕망이다. “타자를 위해 옆으로 물러나거나 후퇴하지” 않게 한다. 이 모든 과정에 타인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나만이 모든 행위의 중심이다.
한 교수는 이 책에서 소비 대상으로 전락한 ‘미’의 위기를 말한다. 그는 미의 본질은 매끄러움이 제거해버린 것에 있다고 말한다. 부정적이고 낯설고 공격적이어서 내 삶을 통째로 흔들 수 있는 것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매끄러움이 가진 아름다움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천의무봉’ 바느질 자국 없는 매끄러움은 선녀의 옷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다. 동양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양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꼽히는 대서사시 는 트로이 영웅 헥토르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문학은 비극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얻었다. 신이 아닌 인간이 꾸며낸 예술은 고통과 분노와 격정으로 가득 차 있다. 한 교수는 블랑쇼, 릴케, 아도르노, 베냐민 등의 말과 개념을 빌려 이를 증명한다.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되돌아보게 한다. 서울 강남 한가운데에서 젊은 여성이 죽임을 당했다. 여성들은 “우리를 혐오하는 것을 멈추라”고 말했다. 정당한 응답은 “당신들을 혐오하지 않는다”일 것이다. 하지만 튀어나온 대답은 “우리(나)는 범죄자가 아니다”였다.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나의 매끄러움을 증명하는 것이 우선이 됐다.
기업들은 산업재해, 안전사고 등 직접 떠안아야 할 위험을 밖으로 내몰았다. 위험 업무는 하청에 재하청을 거친다. 멀리 떨어진 재하청 업체에서 벌어진 비극은 나의 일이 아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19살 김아무개씨가 그랬다. 그의 주요 업무는 서울메트로 지하철이 매끄럽게 다니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는 그를 자기 회사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아름다운 도시는 한 교수의 말대로 “윤리적, 도덕적 판단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미”가 가득한 곳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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