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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님, 왜 그러셨어요?

‘박근혜 동화·만화’ 다섯 권으로 읽는 정부 출범 3년… <세상을 바꾸는 약속>을 해놓고 ‘약속을 바꾸는 세상’을 만들다
등록 2016-02-24 16:59 수정 2020-05-03 04:28
2월25일이면 박근혜 대통령 취임 만 3년이 됩니다. ‘박근혜’가 제목에 붙은 동화책은 네 권입니다. 만화책도 한 권 있습니다. 모두 지난 대선 직전인 2012년 9월30일부터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4일 사이에 출간됐습니다. 대통령에 도전하는 박근혜 후보의 삶과 이력을 초등학생 독자에게 전하는 책들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린 동화책들도 물론 있습니다. 박 대통령 책보다 가짓수도 많습니다. 다른 점은 발간 시기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동화는 대부분 퇴임과 서거 뒤에 나왔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을 주인공으로 한 어린이책은 많지만, 대선을 앞두고 출판된 책은 ‘박근혜 동화’뿐입니다.
다섯 권의 ‘박근혜 동화·만화책’으로 그의 취임 3년을 읽었습니다. 의 주인공 지수의 입을 빌렸습니다. 이 책은 동화의 형식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뛰어듭니다. 아이들과 부모, 교사가 사실상 박 후보의 선거운동원처럼 대통령 당선을 기원합니다. _편집자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글 오효진·그림 구수한·스코프) 2012년 9월30일
(글 이우담·그림 임효정·형설아이) 2012년 10월30일
(글 조영경·그림 이일선·채운어린이) 2012년 12월25일
(글 김지영·그림 김주희·계백북스) 2013년 1월15일
(글과 그림 강희대·형설아이) 2013년 3월4일
※파란색은 동화·만화책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장들입니다.

그날(2012년 12월19일) 드디어 개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꺄아아아아아악! 아싸! 박근혜 아줌마가 대통령이 됐다. 만세! 만세!”

는 너무 기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만세를 외치면서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아빠는 너무 좋아하는 저를 보며 웃었습니다. “우리 지수가 무척 기쁜가 보구나.” “응. 너무 기뻐. 우리나라 이제 더 강해지는 거지.” “그냥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면서 부강해질 거야. 박근혜 대통령님은 국민들을 외면하지 않을 거야.” 엄마도 말했어요. “국가와 결혼한 대통령이 되어 경제도 좋아지게 할 거라고 믿어요.”
다음날, 수업이 끝나고 저, 효경, 애림, 영우, 준서, 주호가 모였습니다. 모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님이 우리나라를 아주 잘 이끌어나가실 거야. 난, 그렇게 믿어!” 영우가 자신 있게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분명히 박근혜 아줌마가 대통령 된 것을 축하하는 눈이 내렸습니다.((이하 ) 127~132쪽)

2015년 5월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93회 어린이날 청와대 초청행사에서 어린이들과 그림책을 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5월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93회 어린이날 청와대 초청행사에서 어린이들과 그림책을 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약속을 지키실 거라고 믿었어요

박근혜 대통령님을 좋아하게 된 건 어른들 때문이었어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은 ‘놀토’인데도 부모님들을 학교로 불렀어요. 대선에서 누굴 찍을지를 두고 ‘어른들 토론’을 시켰어요. 저희한텐 뒤에서 지켜보게 했고요. 부모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 좋다면서요. 선거 다음날 박근혜 후보님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축하하면서 우리나라 꿈나무들에게 한턱 쏘신 선생님이에요.( 138쪽)

토론 내내 대통령님 이름만 나왔어요. 아빠는 말씀하셨어요. “전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마음에 들더군요. 특히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질을 올리는 늘, 지, 오 정책이 마음에 와닿더군요.”( 27쪽)

효경이와 애림이가 집에 놀러 왔을 때도 아빠는 저희를 앉혀놓고 대통령님 공약 10가지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셨어요. “첫 번째는 공정성을 높이는 경제 민주화란다. (…) 두 번째는 한국형 복지체계의 구축인데 말이 어렵지? (…) 네 번째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착이란다. (…) 여섯 번째는 (…) 일자리를 잃을 것 같은 불안감을 없애고 일자리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고 (…) 제대로 알아들었니?”( 59~66쪽)

는 박근혜 아줌마가 대통령이 되면 아빠가 설명해주었던 공약들을 전부 지킬 거라고 믿었어요.( 130쪽) 대통령님도 말씀하셨잖아요. “제 사전에는 약속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요.”((이하 ) 101쪽)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기 위해 온갖 공약을 남발하고 당선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르쇠 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국민을 상대로 사기치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어요. 대통령님은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 덕분에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다고도 하셨어요. 그 결과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셨다고요.((이하 ) 184~190쪽)

후보 시절 대통령님을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제가 머리 숙이며 인사했잖아요. “아줌마가 대통령이 되길 꼭 응원할 거”라고요.( 76쪽) 대통령에 당선되셔서 약속을 지켜주시길 제가 얼마나 바랐는데요.

왜 바뀌신 거예요?

박근혜 대통령님. 왜 그러셨어요. 삼촌이 방에 틀어박혀 안 나와요. 삼촌은 직장을 잃었어요. 회사에서 ‘저성과자’라면서 해고하더래요. 삼촌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요. 적은 월급 받고 일하면서 밤늦게까지 퇴근도 못했어요. 자기가 왜 성과가 낮은 사람으로 찍혔는지 삼촌은 모르겠대요. 대통령님이 되시기 전 해고를 어렵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대통령님이 당선되셨을 때 삼촌은 “공약처럼 해고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대통령님은 거꾸로 해고를 쉽게 만드셨어요. ‘당선되고 나면 모른 척’하는 걸 싫어하신댔잖아요.

대통령님. 왜 그러셨어요. 효경이 큰언니가 한숨만 쉬어요. 효경이 큰언니는 대형마트 비정규직이에요. 오랫동안 파견직으로 일했어요. 파견회사에서 너무 자주 잘려서 마트에 소속된 계약직만 돼도 좋겠대요. 언니는 “인생 목표가 정규직 되는 거”랬어요. 대통령님 되시기 전에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고 정규직 채용을 의무화’하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왜 바뀌신 거예요.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요. 국회의원들을 자꾸 혼내시잖아요. 파견을 늘리고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법을 빨리 통과시키지 않는다면서요. 왜 약속을 어기셨어요.

대선 이튿날이었어요. 우산 없이 눈을 맞는 저와 친구들에게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박근혜 대통령님께서 지키려는 너희는 우산도 쓰지 않고 우비도 입지 않은 채 비나 눈을 맞아서는 안 돼. 그러다가 감기 심하게 걸리면 많이 아프니까. 박근혜 대통령님이 그런 걸 원하실까?”( 138쪽)

대통령님이 원치 않으실 것 같아 저희는 눈도 함부로 안 맞았다고요. 그때 저희는 12살 초등학교 5학년(동화가 설정한 나이)이었어요.

2016년 저희는 16살이에요. 새 학기엔 중학교 3학년이 돼요. 강이 바짝 마르도록 내리지 않던 눈과 비가 대통령님의 당선을 축하하려고 내릴 리 없다는 사실쯤은 알아요. 제가 우산 없이 눈 맞는 걸 걱정하시는 분은 대통령님이 아니라, 제가 감기 걸리면 잠도 못 주무실 엄마·아빠란 것도 아는 나이예요.

제 친구 영우라고 있어요. 대통령님께서 ‘용기 있는 아이’라고 칭찬해주셨던 친구예요. 제가 길거리에서 대통령님께 인사했을 때 뒤에서 지켜보던 영우가 외쳤잖아요.

“아줌마. 우리 아빤 아줌마가 대통령이 되는 걸 반대해요. 그런데 난 아줌마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빠 앞에서 그 말을 하지 못했어요. 어떻게 하면 아줌마처럼 용기를 낼 수 있어요?” 대통령님은 영우에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확신이 섰을 때 보일 수 있는 것이 용기란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말하면 되는 거란다.” 대통령님 말씀에 영우는 용기를 냈어요. 아빠에게 “박근혜 아줌마 욕하지 마”( 76~82쪽) 하고 대들었거든요.

대통령님. 왜 약속을 어기셨어요. 영우 아빠는 자동차 부품 공장을 운영했어요. 영우 아빠가 대통령님에게 투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선됐을 때 영우한테 말씀하셨대요. “경제 민주화 약속만큼은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고요.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못 괴롭히게 하겠다는 대통령님 약속()을 영우 아빠는 정말 믿으셨다고요. 영우 아빠네 공장이 부품을 만들어 팔던 큰 회사가 있었어요. 그 회사가 영우 아빠 공장과 똑같은 기술로 갑자기 새 회사를 만들더래요. 얼마 뒤 영우 아빠와는 거래를 끊어버렸고요. 영우 아빠네 공장의 기술을 가져와 직접 부품을 만드는 거래요. 영우 아빠는 별수 없이 빼앗기기만 했어요. 큰 회사는 돈을 더 많이 벌게 됐고요.

영우 아빠는 요즘 술을 부쩍 많이 마신대요. 영우 아빠 공장은 개성공단에 있어요. 북한을 왔다갔다 하는 아빠를 보며 영우는 걱정을 하곤 했어요. 그때마다 영우 아빠는 “평화가 사업 밑천”이라고 말했대요. 얼마 전 대통령님이 개성공단에서 일을 못하게 막아버리셨잖아요. 영우 아빠는 만들어놓은 부품도, 부품 만들 재료도, 부품 만드는 기계도 다 두고 몸만 빠져나왔대요. 영우 아빠는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어요. 영우네 집은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됐어요. 공장 직원들은 다 실직자가 됐고요. 남한과 북한이 평화롭게 살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3년 전 아빠한테 “박근혜 아줌마 좋다”며 소리쳤던 영우는 미안해서 집에도 일찍 못 들어가요. 대통령님 대선 공약집 제목이 이었잖아요. 헷갈려요. ‘약속을 바꾸는 세상’이 돼버린 것 같아서요.

동화책 <국가와 결혼한 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에서 주인공 지수가 텔레비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지켜보며 기뻐하는 그림. 정용일 기자

동화책 <국가와 결혼한 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에서 주인공 지수가 텔레비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지켜보며 기뻐하는 그림. 정용일 기자

우리 마음을 어디로 끌고 가시나요

대선 직전 엄마는 박근혜 대통령님의 일기를 공책에 옮겨 적었어요. 엄마는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어요. “그 아버지의 그 딸이라는 말 들어봤지? 위대했던 박정희 대통령 못지않게 박근혜 후보도 위대해.”( 35~36쪽) 대통령님도 부모님의 어떤 일이든 서슴없이 해내는 강인함을 배우며 자랐다고 하셨어요.( 39쪽)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엔 대통령님이 다짐하셨다고 들었어요. “모두 아버지를 매도하고 있”으니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아버지의 오명을 벗겨드리고 싶다”고요.( 75쪽)

그래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와 친구들은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돼요. 한국사를 국정교과서(2017년 3월 적용)로 배워야 해요. 대통령님이 그렇게 만드셨어요. 부끄러운 역사를 가르칠 수 없다며 부끄럽지 않은 역사로 바꿔서 가르치겠다고요. 저희는 부끄러운 역사는 부끄러운 대로 배워야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와 친구들은 어른들이 가르쳐준 대로 대통령님을 바라봤어요. 이젠 어른들 말만 듣고 그대로 믿는 나이는 아니에요. 하나의 생각만을 배운다고 대통령님이 원하시는 ‘일치단결’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아빠가 말해주지 않은 대통령님 공약이 있었어요. “국민 통합은 우리가 이뤄야 할 필수 과제입니다. 반쪽짜리 대한민국이 아니라 100% 대한민국을 위해,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미래를 위한 디딤돌을 마련해야 합니다.”()

저희 눈에도 보여요. 지난 3년 동안 상처가 아물기보다 새 상처가 생겼어요. 마음이 하나로 모이기보다 쪼개지는 걸 봐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대통령님은 ‘국민’에 끼워주기 싫어하시는 듯해요.

며칠 전 대통령님이 하신 말씀에 마음이 덜컹거렸어요. “일단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내야만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하겠다”(2월17일 무역투자진흥회의 발언)는 말씀 말이에요. 세월호와 그 배에 탔던 언니, 오빠들 생각이 났어요. 2014년 4월 저도 안산 합동분향소에 다녀왔어요. 효경이와 애림이, 영우와 준서, 그때 대통령님께 인사했던 친구들이 다 같이 갔어요. 저희처럼 교복을 입은 영정 속 얼굴들이 국화꽃밭 속에서 꽃보다 싱그러웠어요. 해야 할 규제를 하지 않아 배가 가라앉았는데,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는데, 대통령님은 규제 전체를 물에 빠뜨리겠다고 하신 거잖아요. 모두 물에 빠뜨리고 선택해서 살리겠다는 이야기가 아무도 선택받지 못한 영정 속 얼굴들을 떠오르게 해서 너무 무서웠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여 흘러가는 방향을 보면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의 차이가 드러난다고 누가 그랬어요. 대통령님의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나요. 우리의 마음을 어디로 끌고 가시나요.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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