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훌륭한 사과의 장면을 찾고 싶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거나,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세기 교회의 잘못을 일일이 열거하며 가슴을 치는 위대한 장면 같은 것 말고, 사소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멋진 사과 베스트 5’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다. 자, 여기 이 사람을 보시오. 이런 사과가 얼마나 멋있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구글에는 온통 전세계 정치가와 연예인들의 ‘물의를 일으켜 죄송’으로 시작되는 뻔한 사과와 거짓 사과에 대한 질타만 가득했다.
그와 함께 인터넷 창을 빼곡히 채운 것이 ‘사과의 기술’에 대한 것이었다. ‘비즈니스’와 ‘커뮤니케이션’ 기술로서의 사과. 사과문과 사과편지의 샘플, 5W1H나 CAT(내용·태도·타이밍), 5R(잘못 확인-책임 인정-양심의 가책 표현-원상 복구를 위한 배상 제시-재발 방지 다짐)와 같은 사과의 공식이 넘쳐났다. 사람들은 그저 효율적으로 사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사과가 좋은 사과일까. 역사적으로 공감을 얻어낸 사과들은 대개 복싱 기술로 치면 스트레이트 펀치였다. 정직하고 힘있게 팔을 죽 뻗는 것이다. 이를테면 2004년 미국 9·11 사태 청문회 때, 당시 대테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리처드 클라크가 발표한 사과 연설 같은 것이다.
“청문회장에 계신 유족 여러분, 그리고 TV를 통해 시청하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 정부는 여러분을 실망시켜드렸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소임을 다하지 못했고, 저 또한 그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 그 실패에 대한 모든 사실이 규명되는 과정에서 저는 여러분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이 간명한 사과는 미국 드라마 에서 다시 인용돼 회자될 만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쳤다. 다분히 정치적 고려가 포함돼 있고, ‘사과의 정석 1장’에 나올 만한 기본 구성이었는데도 진심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아마 전형적인 사과의 공식에 따랐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사과의 핵심이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거짓 사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과의 공식들이 설파하는 효과적인 사과는 간단히 말해 모두 ‘어떻게 진심으로 보일까’의 길로 연결돼 있다. 사과는 일단 진심처럼 보이기만 하면 마법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아마 사과가 태도일 뿐 아니라 실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상대의 공감을 얻고 나면, 자신이 인정한 잘못은 평생 짊어져야 할 책임이 된다. 사과를 입 밖에 내놓는 순간, 그 말 위에 그 사람의 남은 삶이 오롯이 얹히는 것이다. 그래서 사과는 누구도 대행해줄 수 없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자적 행위이며, 일말의 거짓이 섞여 있더라도 용기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도로 깎인 기술은 실제 진심에 닿기도 한다.
사과를 제대로 받을 줄도 모른다
요컨대, 사과를 할 거면 진심처럼 보이게 좀 잘했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은 언제나 속아넘어갈 준비가 돼 있다. 지난해 우리는 가해자의 실체는 복잡모호하고, 다수의 피해자와 그에 공감하는 2차 피해자를 양산한 사건을 많이 겪었다. 그때마다 정부의 사과는 없거나, 이상했다. 구글만 검색해도 줄줄 나오는 사과의 기술들은 간데없고, 어디서 저런 성기고 부서진 기술을 배워왔나 싶었다.
그리고 세밑,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울음이 들려온다. 2015년의 단어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사과’가 아닐까 싶다. 사과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정부가 사과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연쇄. 어딘지 필연적 귀결인 것처럼 보여 슬퍼진다.
이로사 현대도시생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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