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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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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노동자, 음악인

창립 2주년 맞는 음악인 노조 ‘뮤지션 유니온’에 각종 피해 사례 답지… 선한 기획사·음악감독과 신입 창작자 연결해주는 따뜻한 연대 시작할 것
등록 2015-09-10 05:48 수정 2020-05-02 19:28

한국 음악시장의 불합리한 노동 구조는 오랜 시간 업계에서 관행으로 통하면서 공고해졌다. 피해를 입는 쪽은 좁은 국내 음악시장에서 행여나 자신의 위태로운 일자리마저 잃을까봐 불안해하며 쉬쉬해왔다. 피해 사례가 발생해도 이를 상담하고 해결할 창구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런데 ‘주식회사 로이’(이하 로이)의 비윤리적 경영 방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비슷한 피해를 입은 이들의 목소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9월8일 창립 2주년을 맞는 음악인 노동조합 ‘뮤지션 유니온’은 음악가들의 고충을 듣고 지지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번 로이 해고 작곡자들의 고발을 후원하면서, 비슷한 피해 사례들도 접수받고 있다. 국내 음악시장에서 관행처럼 횡행해온 노동력 착취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뮤지션 유니온은 다양한 음악의 공존을 지지한다. 지난해 1월 뮤지션 유니온 조합원들은 인디 뮤지션을 소개하고 무대를 제공한 음악 프로그램 EBS <스페이스 공감> 축소 개편에 반대하는 공연을 했다. 뮤지션 유니온 제공

뮤지션 유니온은 다양한 음악의 공존을 지지한다. 지난해 1월 뮤지션 유니온 조합원들은 인디 뮤지션을 소개하고 무대를 제공한 음악 프로그램 EBS <스페이스 공감> 축소 개편에 반대하는 공연을 했다. 뮤지션 유니온 제공

공연하고 돈 못 받는 일 ‘일상다반사’

정나리 뮤지션 유니온 운영위원에 따르면, 그동안 묻혀 있던 피해 사례는 음악인들에게는 거의 일상에 가깝도록 잦았다. “로이처럼 갈취를 하는 사례뿐만 아니라 선배 내지는 이름 있는 작곡가가 ‘새끼 작곡가’들의 작업을 훔쳐가는 경우도 있다.” 같이 작업했는데 자기 이름만 올리는 식이다. 행사나 공연에서 돈을 못 받는 경우는 너무 많다. 지방자치단체나 공신력 있는 단체들도 제때 돈을 입금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인들은 혼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밟아도 꿈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는 건지, 집행 능력의 미숙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연락을 피한다.” 그럴 때 ‘뮤지션 유니온 차원에서 변호사를 통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히면 그제야 비용을 지급하거나 ‘니네들이 감히 어떻게?’ 식의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공연비를 지급하지 않는 클럽은 셀 수 없이 많고, 이와 관련한 크고 작은 물리적·정신적 폭력이 따른 사례도 많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여러 횡포를 맞닥뜨리는 것이 음악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막상 피해를 입고도 용기 내어 끝까지 싸우는 사례는 많지 않다. 법적 소송에 휘말리면 자문을 구하거나 비용을 들여 변호인을 구해 긴 시간 상대와 얼굴을 붉히면서 싸워야 한다. 음악인들이 활동할 시장이 좁다보니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절반은 된다는 게 정나리 운영위원의 설명이다.

힘을 내 끝까지 싸우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음악인들이 음악과 무대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도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문식 뮤지션 유니온 위원장(밴드 여섯개의달 보컬)은 9월2일 과 만나 “우리가 왜 노동자냐는 반발심”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인들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하라고 얘기하면,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한 반감부터 보인다. 음악인은 노동자가 아닌 예술가라는 거다.” 뮤지션 유니온 입장에서는 이런 인식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음악인 스스로 노동자라고 인식해야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목소리를 내고, 경제적 지위 개선과 사회복지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이 0원이 되자, 지워져버린 노동의 가치

그래서 올해 뮤지션 유니온의 캠페인 슬로건은 ‘뮤직이즈워크’(Music is work·음악은 노동이다)다. 뮤지션 유니온이 주장하는 노동자로서의 음악인은 ‘일하는 사람’이다. 창작·연주·녹음 등의 작업에 노동력이 투여된다는 점에서, 전통적 고용 관계에서의 노동자는 아니지만,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목소리다. 이를테면 갑과 을의 고용 관계가 증명되진 않지만 예술 작품을 누리는 주체가 대부분 사회 전체이므로 사회 전반, 국가와 정부, 시장과 소비자가 피고용자인 음악인에 대한 ‘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뮤직이즈워크 캠페인은 지난 2월 ‘삼성전자 밀크 뮤직 항의 버스킹’ 이후 내부에서 나온 고민의 결과다. 밀크 뮤직은 지난해 9월 삼성전자에서 내놓은 인터넷 음악 서비스다. 기존 검색 방식으로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처럼 채널을 선택해 음악을 공급받는 서비스다. 올 2월 공식 페이스북에 “넌 아직도 돈 내고 노래 듣니”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해 음악인들의 공분을 샀다.

정문식 위원장은 “음악이 무료라고 얘기할 때 이것은 단순히 ‘가격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음악이 공짜가 되었을 때, 그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동을 투입한 존재들이 다 부정된다는 것, 0원이 된 가격과 함께 지워져버린 노동의 순간이 가지는 무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인도 노동자라는 담론은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논의됐다. 창립 2년을 맞는 뮤지션 유니온의 현재 노조원은 159명이다. 반면 미국과 영국의 음악인 노조는 각각 1896년, 1893년에 설립됐다. 현재 회원 수는 각각 9만 명, 3만 명에 이른다. 일본의 음악인 노조는 1983년에 설립됐으며 회원 수는 6천 명가량이다. 짧게는 30여 년에서 100년 이상 음악인 노조가 활발히 활동해온 해외 음악시장의 상황은 현재의 한국 음악시장과 비교해 참고할 만하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19세기 중반 기획사와 음악인 사이의 불합리한 계약 관계, 음악인들의 생활고 등이 문제로 떠올랐다. 음악인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이들 음악인 노조다. 한국의 음악인들은 서구의 19세기 중반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해외의 음악인 노조는 현재 급여 미지급 문제, 공연장의 일방적인 계약 취소 등 분쟁이 있을 때 법률적 도움을 제공한다. 각종 지원과 협상으로 분쟁을 조정하다 이행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파업을 강행하기도 했다. 200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는 음악인 노조 파업이 나흘 동안 이어졌다. 제작사와 음악인 사이의 불공정한 계약 관계, 급여 지급 등이 문제가 됐다. 이보다 훨씬 앞선 1975년에는 무려 25일 동안 파업을 지속하기도 했다.

미국 음악인 노조는 2003년 파업하기도

뮤지션 유니온의 슬로건 ‘뮤직이즈워크’는 영국 음악인 노조가 내걸었던 ‘워크낫플레이’(Work not play·취미가 아닌 일) 캠페인에서 착안한 것이다. 영국의 경우 조합이 음악인들의 관계를 촘촘히 엮어 서로 도울 수 있도록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데, 뮤지션 유니온도 이같은 지원을 펼칠 계획이다. 음악인들은 불합리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 활동을 이어나가지 못할까봐 불안을 느낀다. 뮤지션 유니온은 선의의 기획사, 제작사, 혹은 음악감독 등과 신입 창작자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뮤지션 유니온은 창립 2주년을 맞아 법내 노조 진입을 위한 설립 신고, 표준계약 기준 및 임금 가이드라인 제정 등을 준비 중이다. 음악인들에게 음악은 더 이상 부업도, 취미 생활도 아니다. 온전한 노동자로서 음악인들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을 이제 막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주 큰 용기를 내서.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알려왔습니다.
한겨레는 8.20 문화면 “TV 속 배경음악마저 `열정 페이’의 결과물이었나” 등 제목의 기사에서 TV·영화 등의 배경음악 제작사인 주식회사 로이가 작곡가들의 저작권을 존중하지 않고 부당한 계약조건을 강요했다는 등의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이는 일부 작곡가들과 계약과정, 저작물의 사용방법, 저작권료 수입 배분방법 등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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