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연합군은 승리할 겁니다. 반면 성공한다면 국가 간의 신뢰와 신용이 무너져 결국 연합은 해체되고 말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과 영국, 소련, 독일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대다수 과학자는 국가의 요구에 말없이 따랐으나, 덴마크의 한 물리학자는 핵무기의 달콤함에 홀린 정치권이 인류를 자멸로 몰고 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는 루스벨트와 처칠을 찾아가 핵무기의 공개적 공동 연구와 통제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 길만이 전후에 소련과의 군비 축소를 끌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그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국 세계는 그의 우려대로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분열됐고, 1950년에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 4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과학과 기술에도 윤리와 책임이 있음을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한 그 물리학자는 우리에게 ‘보어의 원자모형’으로 친숙한 닐스 보어다.
짐 오타비아니의 (릴런드 퍼비스 그림, 푸른지식 펴냄)는 ‘현대물리학의 아버지’ ‘원자물리학의 교황’으로 불리는 닐스 보어의 삶과 현대물리학의 역사를 경쾌한 발걸음으로 좇아간 작품이다. 원자핵공학 석사이자 도서관 사서였다는 저자의 이력답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과학 이야기를 조리 있게 풀어냈다.
보어가 활동한 20세기 초는 마리 퀴리,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같은 걸출한 과학자들이 현대물리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시대였다. 쪼갤 수 없다고 믿었던 원자의 내부를 들여다봤고, 빛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임을 증명했다. 이 역동적인 시대에서 보어는 기존 원자모형에서 한층 발전된 새로운 모델을 내놓았고, 양자역학의 기초가 되는 혁명적인 개념들을 구상했다. 양자역학은 고전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극도로 작은 입자들의 운동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또한 코펜하겐 이론물리학 연구소를 설립해 물리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물리학에서의 엄청난 업적과는 반대로 보어의 엉뚱한 면모는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단상에서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딱한 마음마저 들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인슈타인과의 논쟁은 유치원생 싸움처럼 천진난만하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진한 인간다움을 풍기는 보어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무언가에 몰두하면 하나의 목표밖에 보이지 않기 마련이지만, 보어는 언제나 좋은 아빠, 좋은 친구였다. 명성과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는 더 많은 사람을 도왔다. 그의 과학적 방법론은 웃으면서 동료들과 걷는 것이었다. 이 인간다움이 그에게 포기를 모르게 했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었다. 이 작품을 통해 보어가 ‘위대한 과학자’보다 ‘근사한 과학자’였음을 잔잔한 웃음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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