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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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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선 건물 옆 펄럭이는 깃발, 누가 들고 있나

고공농성 오른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 원·하청 임금차별에 맞서다
등록 2025-03-21 21:12 수정 2025-03-26 16:57
‘한화’라고 적혀있는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옆 CCTV 관제탑에 ‘금속노조’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저 깃발 옆에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있다. 신다은 기자

‘한화’라고 적혀있는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옆 CCTV 관제탑에 ‘금속노조’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저 깃발 옆에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있다. 신다은 기자


번쩍이는 유리 건물이 햇빛에 반사돼 반짝인다. 건물 꼭대기에 붙은 ‘한화’라는 간판이 위용을 뽐낸다. 서울 중구 청계천로에 자리잡은 한화 본사다. 그 아래 조용히 ‘금속노조’ 깃발이 나부낀다. 한화 본사 바로 옆 시시티브이(CCTV) 관제탑에 오른 전직 조선업 하청 노동자의 고공농성장이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3월15일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 CCTV 관제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금속노조 제공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3월15일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 CCTV 관제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금속노조 제공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은 2025년 3월15일 새벽 4시 이 곳에 올랐다. 2016년을 기점으로 사라지다시피한 하청 노동자 상여금을 도로 회복하라고 요구하면서다. 조선업은 긴 불황을 지나 2021년 호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한 번 깎인 하청 노동자 임금은 좀체 늘어날 기미가 없다. 앞서 강인석 부지회장의 49일 단식에도 한화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 묵묵부답이 자꾸만 노동자를 하늘로 올라가게 만든다. 눈 내린 날도 비닐 한 포대 덮고 잠을 청한 김 지회장을 한겨레21이 3월19일 전화통화로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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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청 임금 차별’ 해결해 준다더니

—올라가자마자 눈이 내렸습니다.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가요.
“덕분에 악천후에 대비하는 법을 빨리 익혔습니다. 춥긴 한데 견딜 만한 정도입니다. 다만 공간이 좁아서 다리를 쭉 못 뻗으니 잠 들어도 자주 깹니다.”

—30m 높이라니 너무 아찔한데요.
“안 무섭다면 거짓말이죠. 두려움을 이겨낼 만큼 절박하니까 합니다.”

—시민들이 연대의 손편지를 보냈다면서요.
“감동이죠. 너무 힘이 되고요. 읽을 때마다 뭉클뭉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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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지회장에게 연대의 편지를 적은 한 시민. 페이스북 갈무리

김형수 지회장에게 연대의 편지를 적은 한 시민. 페이스북 갈무리


—지회는 현재 50% 수준인 조선업 하청 노동자 상여금을 300%까지 맞추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규직-비정규직 상여 차이가 얼마나 나나요.
“정규직 노동자는 매년 800~900% 받습니다. 반면 하청 노동자는 2016년 전까지 550%만 받았어요. 그마저도 조선업 위기라고 2018년에 400%는 기본급 산입하고 150%는 삭감했지요. 그래서 ‘적어도 상여금 300%까지 만들어야 된다’고 요구하는 거예요.

(원·하청) 임금 차별 해소는 윤석열 정부가 먼저 꺼냈습니다. 2022년 점거 투쟁 때 노동부가 ‘투쟁 접으면 정규직 임금의 80~90%까지 맞추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한화도 그 맥락에서 대우조선을 아주 싼 가격에 인수한 거고요.

그런데 이제 와 윤석열은 파면 국면이고 한화는 모른 척합니다. 당장 하기 어려우면 적어도 계획이라도 내 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의 요구는 그때와 다르지 않아요. 고공농성도 2022년 투쟁의 연장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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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은 상여금 지급을 하청 사업주에게 떠밀고 있습니다.
“하청 노동자들은 목이 마른데 맨 위에 있는 댐(원청)에서 물을 잠가놓습니다. 그러고는 ‘너희 목마름은 아래 댐(하청) 소관’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럼 우리 노동으로 이룬 결과물은, 그 경제적 대가는 누구한테 가나요? 결국 원청한테 가는 것 아닙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이걸 우리가 자꾸만 법률적이니 경제적이니 산업적이니 얘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말장난하는 거라고요.”

—하청 노조가 원청과 교섭을 요구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 아닐까요.
“사실 원청과 교섭한대도 우리 요구 안 들어주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자고 했어요. 일단 만나서 ‘못 들어주겠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데도 원청은 (교섭) 안 합니다. 왜일까. 결국 자기들한테 책임이 있다는 걸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거니까, 그걸 들키는 게 싫은 거잖아요. 그걸 감추려고 법을 들이미는 거죠. 그래도 저는 (이런 현실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노동자들이 깨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죠.”

1차 하청도 고용불안, 차라리 물량팀 간다

—이미 조선업은 노동 강도 대비 임금이 낮아 플랜트 등으로 인력이 빠져나간 걸로 압니다.
“조선업 위기 이후 많이들 옮겨갔죠. 그리고 이제는 남은 노동자들도 물량팀(각종 노동법 적용을 피하는 대가로 임금을 올려받는 소위 ‘그림자 노동’)으로 빠지려고 해요. 예전엔 안정적 고용 형태를 선호해서 1차 하청업체를 택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1차 하청업체 고용도 불안하다고 느끼는 거죠. 하청업체가 1년도 안 돼 갑자기 폐업해 버리니 퇴직금도 못 받는 거예요.”

 

조선업 일터엔 크게 3가지 노동형태가 있다. 정규직 노동자와 1차 하청 노동자(이른바 ‘본공’), 그리고 다단계 하청 노동자다. 노동집약적 특성이 강한 조선소는 추가 노동력이 필요할 때 다단계 하청 노동자를 동원한다. 법의 보호도, 연장수당도 없이 오직 작업을 시간 내 마치는 대가(‘물량’)로만 돈을 받는 이들이다. 자연히 안전규범을 어기거나 무리하게 속도전한다. 물량팀 노동자 죽음이 잇따르자 2014년 노동부는 ‘물량팀은 위법’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원청의 ’모르쇠’ 아래 오늘도 조선소 곳곳에서 물량팀 노동자가 배를 만든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고공농성 중인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 시민들과 조합원들이 함께 만든 ‘연대투쟁호’가 세워져 있다. 신다은 기자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고공농성 중인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 시민들과 조합원들이 함께 만든 ‘연대투쟁호’가 세워져 있다. 신다은 기자


—물량팀 노동자가 느는 게 안전과 노동권 면에서 좋은 신호는 아닐 텐데요.
“물량팀은 시간당 업무로 수당을 가져가기 때문에 안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스스로 안전을 포기하도록 회사가 만드는 거고요. 목숨과 돈을 바꾸는 거라 생각합니다. 절벽 끝에 사람이 서 있고 차가 막 돌진하는데 ‘그래도 절벽 아래에 물이 있으니까 뛰어내려도 살지 않겠냐’고 설득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사가 자꾸 그런 조건에 하청 노동자가 놓이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다 사고 나면 우리 잘못이 아니다, 노동자가 선택한 거라고 해요. 노동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했겠나요.”

—한 번 작업 분위기가 속도전이 돼 버리면 모두가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치킨게임하고 똑같습니다. 세 명이서 (선박) 블록 3개를 담당한다고 해 보죠. 누구 한 명이 열심히 치고 나가면 블록 두 개가 금방 동 납니다. 그러면 남은 한 개 갖고 누가 먹을지 경쟁하는 거예요. 경쟁에서 지면 한 명은 못 가져갑니다. 그걸 못 가져가면 살기 힘들만큼 임금은 낮게 책정돼 있고요. 그러면 치킨게임하는 거죠.

 

—정부는 한술 더 떠 아예 외국인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쓰자는 입장입니다. 내·외국인 임금차별이고 근본 해결책도 아니라는 지적이 많은데요.
“노예 무역의 변형된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과거엔 노예를 직접 무역했는데 이제 그렇게 못하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의 탈을 쓰고 노예 무역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무릎 꿇지 않아도 되는 세상 만들겠다

—윤석열 정부의 조선하청지회 탄압에 명태균이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명태균 같은 자들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항상 있었습니다. 그래도 놀라긴 놀랐어요. 2022년 파업 때도 이런 자가 개입돼 있었구나, 근데 그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대통령 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인데 (대통령) 되니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람이 정부의 메신저 역할을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참 어이없는 대통령의 어이없는 메신저다. 저런 인간들 때문에 우리 조합원들과 내 인생이, 우리 가족이 파괴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죠. 사실은.”

 

—다른 해고 노동자(옵티칼하이테크 소현숙·박정혜, 세종호텔 고진수)도 고공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기에 고공농성을 합니다. 근데 그 문제라는 게 정말 해결되기 힘든가가 중요하죠. 옵티칼 해고 투쟁만 봐도 잘 돌아가는 공장에 10명도 안 되는 노동자들 고용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가요. 그걸 안 하려고 1년 넘게 저렇게 두는 건 얼마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가요. 다른 것도 아니고 일을 시켜 달라는데. 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세종호텔 해고 투쟁도 마찬가지예요. 코로나 때 그렇게 해고했으면 이제 호텔 다시 여니까 고용하면 되잖아요. 거기서 십수년 일했던 사람을 저렇게 두는 건 정말 너무한 겁니다.

우리가 집에 있는 물건도 오래 쓴 건 버리기 아까워하죠. 그런데 돈 몇 푼 때문에 일하던 사람을 저렇게 두는 게 맞나요. 너무 억울해서 (농성)합니다. 노동자가 이런 걸로 인생 거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자는 ‘그냥 다른 직장 찾으라’, ‘돈 더 주는 데 가라’고 쉽게 말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때리면 맞고 무릎 꿇으라면 꿇으며 살아왔겠지요. 그래도 누군가는 왜 때리냐고 이야기했고, 맞서 싸웠고, 왜 무릎 꿇어야 되는지 물었고, 끝까지 버텼을 겁니다. 그랬기에 지금 우리가 맞지 않아도 되는 세상, 무릎 꿇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을 거예요. 그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갈지 이야기하고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고공농성 중인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서 한 시민이 김형수 지회장을 응원하는 연대 글을 적고 있다. 신다은 기자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고공농성 중인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서 한 시민이 김형수 지회장을 응원하는 연대 글을 적고 있다. 신다은 기자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고공농성 중인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 농성장에서 조합원들과 ’말벌 동지’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다. 신다은 기자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고공농성 중인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 농성장에서 조합원들과 ’말벌 동지’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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