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내가 사는 집에는 귀여운 것들이 셋이나 있다. 아기, 강아지 그리고 나 고양이, 에헴. 보다시피 나는 외모가 출중, 까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볼 만하다. 하얗고 탐스러운 털,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 앙증맞은 분홍색 코와 발바닥, 그려놓은 듯 둥근 몸매까지. 제리 형님도 귀엽기로는 나와 자웅을 겨룬다. 영민하게 쫑긋 솟은 귀, 우물처럼 깊은 눈동자, 날렵하게 솟은 꼬리, 그리고 그들 세계에서 귀엽고 우아하기로 손꼽히는, 종종거리며 걷는 모습까지. 그리고 아기야 뭐, 사람이든 동물이든 귀여움으로 승부를 보는 시절이 아닌가.
이렇게 귀여움이 주렁주렁하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내가 원하던 그림이야”라며 부러워하거나 “외롭고 심심한데 나도 한 마리 들여야겠어”라고 얘기하곤 한다. 나는 오늘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그림 같지 않은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우선 우리와 함께하려면 털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한때 나는 우리 집주인이 청소 도구 수집광인 줄 알았다. 집안 곳곳에 청소 도구가 보초 서듯 놓여 있다. 집주인은 아침에 눈을 뜨면 눈곱도 떼지 않고 작은 무선청소기를 들고 돌아다닌다. 동시에 로봇청소기도 돌아간다. 큰 무선청소기를 꺼내 집 곳곳을 불도저처럼 밀고 다닌다. 작심하고 베란다에서 유선청소기를 꺼낼 때도 있다. 부직포 밀대 걸레로 먼지를 훑는다. 스팀청소기를 민다. 테이프 롤러로 소파와 침대에 있는 털먼지를 떼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한 우리의 털들은 어느 구석에서든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청소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움직여도 “아기 있는 집에 이렇게 털이 날아다녀서 되겠느냐”는 소리를 늘, 집을 방문하는 손님에게 들어야 한다.
털만 치워야 하나, 때 되면 화장실 치워야지, 냄새 나기 전에 씻겨야지, 털이 긴 고양이나 개를 키운다면 엉기지 않도록 자르거나 빗어줘야지, 밥이랑 물 떨어지지 않게 챙겨줘야지, 놀아달라면 놀아줘야지, 이래서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을 집사라고 하는 거다.
한편으론 마음이 고단한 일도 생긴다. 알다시피 개든 고양이든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 언젠가는 슬프고 긴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기만 할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세월 함께 사는 동안 아플 때 말 못하고 견뎌내는 동물을 바라보는 일 또한 생기지 말라는 법 없다. 제리 형님은 지난 몇 년간 수십 일에 한 번씩 경련을 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집주인은 외출하고 돌아올 때 오늘 갑자기 경련하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들어오는 날이 많다. 지금은 병세가 많이 호전됐지만 경련을 멈추지 않는 개를 안고 새벽에 병원으로 달린 적도 있다.
그러니까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그저 ‘예쁜 그림’이 아니다. 인간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처럼 동물과 삶을 공유하는 일도 크고 작은 문제에 봉착하고 이것을 해결해나가는 순간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를 그저 비싼 인형처럼 취급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인간들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버려진 개와 고양이가 모두 8만1147마리다. 아파서 병원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휴가를 떠나야 하는데 맡길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막상 키워보니 똥오줌 치우기도 귀찮고 너무 많이 짖거나 운다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이 됐다가 이런 볼품없는 이유로 그들의 영역에서 배제되곤 한다.
우리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막연하게 동물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람과 가족이 됐으면 한다는 것. 너무 다른 우리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면서 얻게 되는 소소한 번거로움 혹은 언젠가 찾아올 슬픔을 견딜 각오만 되어 있다면 그로 인해 얻게 되는 더 포근하고 따뜻한 일상은 커다란 선물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순간들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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