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살의 한 중년 남성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심각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던 그는 타인과 기본적인 대화조차 버거웠다.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지만 아무도 그를 따스하게 안아주지 않았다. 모두가 조금 이상해 보이는 그를 거부했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정신병동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그는 위축됐고, 무너졌고, 결국 꿈을 포기한다. 또 다른 재능이라 생각했던 만화도 마찬가지였다. 수년간 실업자로 지내면서 그에게는 막대한 빚이 생겼다. 빚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 돈을 갚아야 할 때쯤이면 세상에 없을 테니깐. 그에게는 불행과 외로움과 가난뿐이었다. 그리고 어둠. 그는 혼자였다. 자신을 혐오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다른 정신질환 책들과는 많이 달랐다. 다른 책들은 ‘정상인’을 위해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쓰였지만, 그는 환자 편에서 그들이 겪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호소했다. 네티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릴 커닝엄의 (이숲 펴냄)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정신병동에서 근무했을 때 직접 보고 느꼈던 우울증, 치매, 자살 충동, 반사회적 인격장애 등을 정리한 작품이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그동안 정신질환에 무지했음을 뼈저리게 반성할 수 있다. 정신질환이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신체적 증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정신질환자는 여전히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다. 게다가 그들이 범죄의 가해자가 되기보다는 피해자가 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부끄럽기까지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환자 중에는 에나 등장할 법한 연쇄살인마는 없다. 어딘가 아파서 울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그들은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이 책은 그 누구도 정신질환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다고 경고하며,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을 찾아갈 것을 권하고 있다. 환자의 사례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자신의 정신건강을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는 “적절한 치료와 보살핌으로 해결할 수 있다. 우울 장애가 있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정신병동은 금기시하는 한국 사회는 이 말에 귀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대릴 커닝엄은 정말 대단한 작가, 아니 대단한 인간이다. 모든 꿈이 좌절되는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돕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편견과 무지가 귀를 막은 세상에서 그는 환자들의 외침을 똑똑히 들었다. “그래도 난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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