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명이 전남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지 1년이 다 돼간다. 그 가운데 9명은 주검으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도 아직 수면 아래에 있다. 정부가 위원회 직제와 예산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1992년 일본에서 출간된 (펜타그램 펴냄)의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이를 예견한 듯 썼다. “내 아이의 죽음의 의미를 묻는 사람과, 슬픔은 금액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고 직업적으로 굳게 믿는 사람의 어긋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정신병리학자다. 전쟁과 혁명을 겪은 이들 또는 대형 사고 피해자들을 상담해왔다. 1985년 8월 일본 오사카로 향하던 일본항공(JAL) 비행기가 오스타카 산등성이에 추락해 520명이 숨지자 그 유족들을 수년 동안 만났다. 그 기록을 1990~91년 일본 월간지 에 13차례 싣고 책으로 펴냈다. 그의 말대로 “슬픔이란 함께 체험하는 것이지 지식으로 아는 대상은 아닐 것”이다. 그는 “슬픔은 일상의 흐름을 끊고 모든 시간을 잠시 멈추고서야 깊이 체험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일본항공 추락 사고로 남편을 잃은 한 유족은 주검을 찾고 싶었다. 남편 주검만이 아니다. 다른 유족들에게도 주검을 돌려주려 했다. 희생자 520명 가운데 온전한 상태의 주검은 177구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부분 주검’이었다. 2명은 그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는 정부, 경찰, 항공사와 싸웠다. 주검 식별을 위한 법의학자 투입을 요청했고, 미확인 주검의 합동화장을 반대했다. 저자는 이를 “남편을 사고로부터 빼앗아오는 싸움”이라고 표현한다. 그 싸움은 유족이 자책감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족과 갑자기 사별한 유족은 스스로 묻는다. ‘나는 무엇을 해줬나.’ ‘나는 당신을 찾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걸까.’ “죽어가는 시간이 지나치게 짧았기 때문에 죽고 나서 (유족이) 다시 죽음의 과정을 천천히 밟아가야만 한다. 죽어가던 시간을 공유할 수 없었던 대신 스스로의 감정과 의욕을 동결시켜 죽음의 과정을 되씹는다.”
유족의 슬픔은 네 가지가 결정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유족’ ‘죽은 가족’ ‘죽음의 상황’ ‘사고 뒤 환경’. 사회는 오로지 네 번째에만 관여할 수 있다. “가해자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구조자나 관계기관의 자세는 어땠는지, 언론, 장례업자, 종교인, 변호사, 손해보험회사 등 이른바 ‘상’의 비즈니스에 관계된 주체들이 유족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유족이 체험하는 슬픔은 달라진다.” 그들은 또한 사회가 그 태도를 바꾸는 과정을 통해 슬픔에서 벗어난다. “비참한 사고였지만 그 사고를 계기로 뭔가 사회 전체의 자각과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희생자의 죽음은 헛되지 않게 된다. 유족은 고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할 때, 고인에게로 향했던 생(또는 죽음)의 에너지를 사회로 돌릴 수 있다.”
“과거 몇 번이나 대참사가 있었는데도…”
한 유족은 저자에게 말했다. “우리 유족이 가장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일본에서는 과거에 몇 번이나 대참사가 있었는데도 그때의 경험을 제대로 정리해놓지 않아서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유족들은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되풀이해서 겪어야 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우리의 체험만큼은 제대로 정리되어 훗날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남편의 죽음이 덜 헛될 것이다.” 유족의 바람이 책으로 돌아왔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과거 36년간 왜놈을 멕이기 위하야 말러빠진 조선에 돌아오니 감개무량합니다. 우리 가족이 살든 정동례배당을 찾으니 문꼬리 쇠솟을 걸어놓은 모양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경제적으로 빈한했기에 이렇게도 진보하지 못했는가를 느꼈습니다.” 1946년 3월 현미옥 대위가 신문 인터뷰에서 당차게 한 말이다. 현미옥은 현앨리스의 한국 이름이다. 1903년 하와이로 떠나는 제물포항에서 어머니의 복중에 있었던 그는 50여 년 뒤 북한에서 박헌영과 함께 숙청된다. 반세기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가 쓴 (돌베개 펴냄)은 현앨리스와 그의 가족이 ‘좋은 시대’를 희망하며 뜨겁게 살다 차갑게 식고 만 기록이다. 그리고 ‘박헌영의 첫 애인’ ‘한국판 마타하리’ 따위의 수사로 가려진 현앨리스의 진실을 추적한 탐사다. 지은이가 꽂은 탐침은 1921년 중국 상하이에서 박헌영(훗날 조선공산당 당수)을 비롯한 동료 유학생들과 20대 푸른 시절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30여 년 뒤 북한 김일성 정권이 박헌영을 숙청하는 데 결정적인, 그러나 조작된 증거로 사용된다.
1975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현순의 여덟 자식 중 맏이인 현앨리스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3·1운동 직전 아버지와 상하이로 이주했고 거기서 사회주의·공산주의·러시아·혁명이라는 낱말들과 맞닥뜨렸다. 광복 뒤에는 미국 공산당 당원이 되었고 귀국해서는 주한미군 정보참모부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박헌영은 물론 미군 내 공산주의자들과 자주 만나다 ‘위험한 좌익 혁명분자’로 낙인찍혀 미국으로 추방된다. 1949년 평양 땅을 밟았지만 북한은 그를 ‘미 제국주의의 고용간첩’으로 내몰아 형장에 세워버렸다.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 하와이, 뉴욕, 도쿄, 서울, 로스앤젤레스, 프라하, 부다페스트, 평양을 거치며 그는 신민, 시민, 국민, 공민이 되길 원했지만 어느 것도 시대는 허락하지 않았다.
“현앨리스의 일생은 성실한 고향을 찾아헤매는 방랑자의 삶이었다.” 현앨리스와 그의 아버지, 남동생, 그리고 그의 아들이 겪은 삶은 재미 한인사, 한국 독립운동사, 한국 현대사, 북한 현대사, 냉전사를 아우르는 비극적 서사를 응축하고 있다. 지은이는 2000년부터 3년 남짓 미국과 체코 등지에서 조각조각 흩어진 문서를 헤집고 증언자들을 수소문했다. 74쪽에 이르는 주석과 참고문헌이 지은이의 땀을 증거한다. (에토 준), (김윤식) 옆자리에 이 책을 꽂아둔다. 드라마 (1991년)의 ‘여옥’이 살아낸 질곡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앞의 두 책보다 먼저 현앨리스에게 손이 가겠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2011년 3월11일, 비극적인 도호쿠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저자가 보기에 이 원전 사고는 ‘잃어버린 20년’ 등으로 불리는 침체된 일본을 깨운 사건이기도 하다. 특히 젊은이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이 사건을 계기로 터져나왔다. 프리타, 니트, 파라사이트 싱글 등 부정적 딱지를 붙이고 있던 청년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일제히 쏟아냈다.
김덕련 기자가 묻고 현대사 연구자 서중석 교수가 답했다.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을 정면 비판한다. 대담 형식이기 때문에 연대기 구성이 아니라 이야기가 이야기를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1권의 주제는 ‘해방과 분단, 친일파’, 2권은 ‘한국전쟁과 민간인 집단학살’이다. 계속해서 1987년 6월항쟁까지의 주제가 선보일 예정이다.
세월호를 기록하다오준호 지음, 미지북스 펴냄, 1만5천원
세월호 사고 당시 조타실에는 세 명이 있었다. 항해사, 조타수, 기관장. 이들은 재판에서 거짓과 진실을 섞어 진술한다. 증언 와중에 재판부는 조타수가 조타기를 잘못 조작한 것을 항해사가 시정해주지 않았다는 걸 밝혀낸다. 5개월간 33차례 이루어진 세월호 재판에 꼬박꼬박 참여해 세월호 사고를 기록한 책.
15세기 이후 불과 두 세기 동안 유럽은 전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는 위치로 올라섰다. 유럽은 아메리카 은을 파내고 모피를 교역하고 노예를 거래했다. 지구적으로 생산물이 거래되는 시기로 급속도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책은 이 지구적 경제의 확립 과정을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으로 설명한다. 1982년에 초판이 발행됐고 2010년 재출간된 것을 번역했다.
가든디자이너는 건축을 공부한다. 정원사보다 건축가에 더 가깝다. 가든디자인은 꽃뿐만 아니라 정원 내의 길, 파빌리온 같은 건축물, 바닥 등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정원 공부를 한 저자가 가든디자인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해 1부에서 가든디자인의 역사, 2부에서 유럽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여준다.
파라과이는 전세계에서 콩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다. 저렴한 땅값과 문턱 낮은 환경 규제를 눈겨여본 거대 식품회사가 콩 플랜테이션을 건설해서다. 콩 플랜테이션 이후 지역민은 쫓겨나고 숲은 파괴되었다. 식품이 재배돼 밥상 위에 오르기까지를 관찰한, 환경주의자를 위한 윤리적 소비 안내서. ‘패션’ 편과 함께 출간되었다.
젠더 무법자케이트 본스타인 지음, 조은혜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1만5800원
저자는 배우이자 극작가, 트랜스섹슈얼 레즈비언이다. 초판 이후 20년 만에 나온 한국어판의 서문에서 저자는 지난해 무지개행동의 서울시청 점거 소식을 들었다며 한국 사회의 섹스와 젠더의 미래를 궁금해한다. 44살에 이 책을 쓴 뒤 20년간 변화하는 세상을 지켜봤다. 여전히 한국에선 앞으로 겪어야 할 미래다.
저명한 문학평론가가 빅토리아시대 작가들을 찾아가는 문학여행을 떠났다. 문학 현장의 덧칠된 기억과 조작된 이미지, 엉터리 기록, 싸구려 상업주의가 냉소주의 독설가의 입을 통해 신랄하게 비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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