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부산에서 보낸다. 책상 앞에 펼쳐진 창밖으로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 때문에 눈이 부시다…는 문장은 그저 바람일 뿐, 현실은 여명이 밝아오기 전 어두컴컴한 주방 식탁에 앉아서 졸린 눈을 비비며. 내가 멀리 이곳까지 온 사연은 이렇다.
신소윤
어느 새벽 집주인이 한참을 잠들지 않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소파 앞에 배를 깔고 앉아 하는 모양새를 구경하고 있는데, 아뿔싸, 좀더 깊고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을 걸 그랬다. 구경한 것도 죄인 양 내 목덜미를 덜컥 붙들더니 커다란 가방에 쑤셔넣는 것이 아닌가. 설마 했는데 벌써 올 것이 왔나. 생각만 하면 아찔하고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 괜히 머리가 아픈 것 같고 긴 연휴가 두렵기만 한, 인간들은 그런 것을 ‘명절증후군’이라고 부른다지. 지루한 자동차 여행을 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져왔다.
실로 눈앞이 캄캄했다. 집주인들은 야반도주하는 일당처럼 세상이 모두 잠든 뒤에 움직였다. 차가 밀리지 않을 때 출발하자며 늘 밤길 귀성을 택하는 이들을 따라 제리 형과 나도 야심한 시각 비몽사몽한 상태로 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바퀴 달린 몸체에 큰 바구니가 달린 괴상하게 생긴 가방 속에 우리 두 마리를 욱여넣는데 이것은 뭐 인간들이 타는 비행기로 치면 이코노미석이 따로 없다. 제리 형이 옆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내 몸과 부대끼는데, 거 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됩니까?…라는 말을 들을 리가 없지. 부산스럽기로는 우리 집에서 최고인 이 형은 차를 타면 올림픽에 출전한 사람처럼 온 체력을 다해 몸을 움직인다. 아마 나보다 조금 힘들긴 할 거다. 평형감각 차이 때문인지 고양이는 멀미가 없지만 개들은 멀미를 한다. 내 옆에 탄 이 손님은 귀 밑에 스티커라도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이동하는 내내 헥헥, 헉헉. 그냥 차분히 있으면 좀 나으련만 끊임없이 문을 열어달라고 저항한다. 포기를 모르는 이 형, 집요한 이 형, 늘 최선을 다하는 이 형.
제리 형이 늘 이렇게 투쟁할 만도 한 게, 우리가 탄 이코노미석은 인간들의 그것보다 한참 못하면 못했지 나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긴 여행을 할 때면 지루할 새 없이 밥도 주고 술도 주고 한다며? 모를 줄 알았겠지만 우리도 다 안다고. 나 정기구독 하는 고양이야. 그런데 이 야박한 주인들은 우리 둘이 담긴 커다란 가방의 지퍼를 열어서 사료 한 알 넣어줄 줄 모른다. 자기들은 휴게소에서 과자며 커피를 사들고 들어오면서. 그리고 이 자리는 뭐 창문을 열면 뭉게뭉게 구름이 떠 있는 절경이라도 있는 줄 아나. 망사로 된 조그만 창마저도 제리 형이 버둥거리며 막고 서 있어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이 형의 엉덩이밖에 없다. 아, 이 형 정말.
도착하면 뭐 또 평소랑 다를 게 있나. 부산에 오면 뭐하겠노, 우리는 바다 귀퉁이를 구경하기는커녕 늘 집 안에만 있는 걸. 싱싱한 생선 한 토막 구워줄 줄 모르는 무심한 인간들. 그렇게 길고 긴 연휴를 보내고 남은 건 뭐다? 고행을 반복해 집에 돌아가는 일뿐. 사라져라 제발, 명절이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방통위’ 이진숙·김태규, 국힘 우세 지역서 접전…“윤 어게인 탓”

“윤석열은 진정한 영웅, 고난 알고도 계엄 선택”…국힘 군산갑 후보, 장문 편지

“2030 직원 탓하니, 불매 의지 더 커져”…정용진 사과 역풍

7월부터 기초연금 탈락해도, 수급 가능성 확인되면 ‘자동 신청→지급’

독사에 물릴 위험 높아진다…기온 상승으로 서식지 확장

서소문고가 ‘침하 위험’ 알면서도 안전진단 강행…“철거절차 누락 규명해야”

고성국 “박근혜, ‘배신자 한동훈 척결’ 호소해야”…부산 북갑 지원 촉구

이란 최고지도자, 사실상 승리 선언…“중동은 미군 기지 위한 방패 아냐”

이 대통령, 자갈치시장 ‘깜짝 방문’…“악수하려고 손 씻고 기다렸어요”

후방 벽에도 주차선이…무슨 용도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