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에는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그득하다. 투박한 장갑으로 밥그릇을 붙들고 있다. 두툼한 파카 위로 조끼를 걸쳐 입었다. 파카 위에는 싸리눈이 내렸다. 눈 맞은 김대기 기자의 머리 위처럼 또렷이 각인되는 사실은 이 사람이 오랫동안 밖에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밥그릇으로 알 수 있듯 그렇게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은 여럿이다. 2006년 정택용이 포착한 사진이다(사진). 기륭전자의 투쟁이 시작된 때부터 현장을 지켜온 정택용은 2006년 어느 날 기륭전자 사람들이 밥을 먹자 했던 경험을 특별하게 기억했다. 아마 저 밥그릇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사진을 표지로 내건 (알렙출판사)에서 저자 이광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 아픈 찔림의 상처, 그것은 목이 떨어져나간 대상의 처절함으로부터 느낄 수도 있고, 지금은 우리네 식탁에서 찾기 어려운 사진 속 스테인리스 국그릇에서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이 풍크툼이다. 풍크툼, 그 은닉의 그리움이 이데올로기 담론의 홍수보다 훨씬 더 아프다. 사진이 갖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풍크툼은 화살처럼 뾰족한 도구로 찔릴 때 생기는 상처나 그 흔적이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돌발적인 아픔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롤랑 바르트는 이 개념을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뒤 온 우울증의 상태에서 발견했다. 어머니의 유품으로 남겨진 어떤 사진도 어머니를 설명 못했지만 어느 날 발견한, 그는 보았을 리 없는 어머니의 다섯 살 때 사진은 어머니의 모든 것을 느끼게 했다. 바르트는 “관습적으로 되는 명료함이라는 함정을 피하는 방식으로 글의 비가독성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개념은 사진의 매력으로 직결된다. “그 소통 불가능한 우연의 세계가 사진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자 사진이 인문학의 보고가 되는 개념이다.”
책은 월간 에 3년간 3부작으로 연재된 것을 묶은 것이다. 1부는 사진을 해설하는 데 유용한 철학자의 개념을 가져오고 그것을 외국의 사진작가와 한국의 작가들로 짝지운다. 롤랑 바르트의 풍크툼 그리고 정택용의 사진이 짝지워지듯이 베냐민의 아우라-외젠 앗제-민병헌·화덕헌이, 엘리아데의 원초-마이너 화이트-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갑철이, 구하의 기록-로버트 프랭크-노순택-낸 골딘-박하선이 짝지워진다.
2부는 한 작가의 사진 연작을 작가노트를 기반으로 해석해나간다. 후방 카메라의 재현된 이미지를 다시 포착해나간 이순희의 , 존재하지 않는 가상 공간을 찍는 이정진의 , 일상의 도시 풍경을 찍는 이상욱의 <blue city>, 부산 태극마을 청년을 4년간 포착한 다큐멘터리 사진 최원락의 등 12개의 프로젝트가 대상이다(이광수의 프로젝트 도 포함되어 있다).
3부는 1부와 거꾸로 한 작가의 프로젝트를 보고 철학자의 개념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성주의 를 보며 수전 손태그를, 김정원의 를 보며 미셸 푸코를, 조기호의 를 보며 반다나 시바를 떠올렸다.
저자의 원래 직업은 인도사 연구가, 이 주제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아프가니스탄을 몇 차례 방문하고도 건질 사진이 한 장도 없던 때가 있었다 한다. 사진을 재료 삼아 철학을 하기에 참 좋아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다가 사진비평으로 들어섰다. 새로운 사진을 찾아보는 기쁨이 있고, 사연을 알게 되면 더 들여다보게 되는 것처럼, 철학 개념을 들여다보면 사진을 더 깊이 보게 된다. 유홍준의 절창 ‘아는 만큼 보인다’의 사진판이랄까.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스칼라피노 등의
여럿 감옥에 보낸 책
이런 시기, 1973년 미국에서 로버트 스칼라피노와 이정식, 두 정치학자에 의해 가 처음으로 쓰였다. “북한을 지배한 김일성은 1932~1941년 만주에서 소수의 유격대를 이끌었던 바로 그 사람”이라고 확증하는 동시에 “그가 집권한 이유는 바로 소련의 지원이다. 김일성은 소련 권력의 등에 업혀 북한에 들어왔고, 소련이 갖는 권위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단언한 이 책이 남과 북에 가져다준 충격은 이런 정황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1986년 한국어로 책을 옮겼던 당시 대학원생이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분단 이후 남쪽에서는 식민지 치하 공산주의 운동 역사가 망각, 은폐, 기피됐고 북한에서는 김일성만이 유일한 성공자로서 모든 영광을 독점하기 위해 왜곡되었다”는 말을 서문에 남겼는데, 이는 반공주의가 성성한 한국에서 ‘공산주의 운동사’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의 운명을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쪽과 북쪽 모두에서 일본의 억압에 맞서 가장 열정적으로 항거했던 한국 공산주의자들의 큰 줄기가 삭제된 정황을 의식했기 때문에도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3권짜리로 나왔다가 절판된 (한홍구 옮김, 돌베개 펴냄)가 30년 만에 한 권으로 합쳐져 복간됐다. 1990년대 이적표현물로 확정판결을 받았고 여러 차례 서점에서 압수되거나 소지죄로 실형을 산 사람이 있던 것을 상기하면 1100쪽짜리 두꺼운 책이 주는 무게감이 남다르다. 책은 1917년 시베리아 한인 공산주의자들의 회의로부터 시작해 1970년대 북한의 유일체제 형성까지, 한반도 안과 밖에 산개했던 수많은 한국 공산주의자들의 투쟁과 활동이 북한의 유일당으로 수렴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코민테른 문건을 비롯한 해외 사료에 상당 부분 의존했고 지은이들의 보수적 관점으로 한계를 긋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과 소련 공산당 사이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결합을 모색하려 애썼던 한인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초판은 “주체사상은… 진정한 의미의 북한의 독자성이 조금이라도 유지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사이 북한에서는 두 세대가 지나갔다. 개정판은 “체제 유지를 위한 귀한 자산이기도 하지만 심각한 국제적 고립을 가져옴으로써 경제 활성화와 회복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선군정치를 물려받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시대에 대한 고찰로 시작한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정의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만원
9·11 이후 이슬람 대 서방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슬람 국가 내의 내전과 내란은 테러, 이슬람국가(IS)의 탄생과 인질 살해 등으로 번져가고 있다. 흡사 3차 대전을 방불케 하는 규모다. 시작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이다. 소련의 침공으로 이슬람 세력들은 무장하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IS가 탄생했다. 이 35년간의 ‘중동 대전’을 살핀다.
다문화사회와 한국 이민정책의 이해
김태환 지음, 집사재 펴냄, 2만3천원
한국에서 다문화의 수용은 배제와 동화의 프레임이 동시에 작동한다. 일이 끝나면 모국으로 돌아갈 것을 전제로 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배제, 한국 농촌으로 시집온 결혼이주 여성의 경우는 동화의 프레임이 적용되는 것이다. 전자는 고용노동부, 후자는 여성가족부가 관할한다.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이 두 정책은 충돌하게 마련이다.
알랭 바디우, 공산주의 복원을 말하다
알랭 바디우·페터 엥겔만 지음, 김태옥 옮김, 숨쉬는책공장 펴냄, 1만3천원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랭 바디우와 동독 출신의 철학자 페터 엥겔만이 공산주의 재건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다. 알랭 바디우는 공산주의 이념의 귀환을 끈질기게 요구해온 철학자다. 페터 엥겔만은 동독 치하에서 2년간 구금당한 경험이 있다. 알랭 바디우는 왜 부정적인 공산주의 역사를 마주하고도 그 이념을 여전히 지켜나갈까.
바보 선거
최광웅 지음, 아카넷 펴냄, 1만4천원
서울시의원과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을 지낸 저자가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에 믿음으로 자리한 몇 가지를 점검한다. 정당에 대한 투표는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가, 선거 연대는 선거의 필승 전략인가, 어떻게 양당제는 유지돼왔는가 등. 제목의 ‘바보 선거’는 유권자가 바보처럼 선거했거나, 유권자의 선택을 바보로 만들었거나, 정치권이 스스로 바보짓을 했다는 말이다.
스콧 F. 파커·마이클 W. 오스틴 등 지음, 김병순 옮김, 따비 펴냄, 2만2천원
카를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권 주장은 공격한 반면 자유무역은 지지했다. 국민국가를 무너뜨릴 것이라 믿어서다. 이 모든 것은 블렌드 커피를 마시면서 잉태됐다. 염소가 먹고 뒷발로 춤추는 것을 보고 마시기 시작했다는 커피는 수많은 사상과 혁명, 철학이 만들어진 바탕이다. 철학의 실종을 염려하는 요즘 사람들은 친숙한 소재를 끌어다가 철학하기를 즐긴다. 바로 커피 같은.
고백 1·2
장 자크 루소 지음, 박아르마 옮김, 책세상 펴냄, 1권 2만3천원·2권 2만7천원
탄생 300주기를 맞아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루소의 저작이 시리즈로 나온다. 첫 번째는 그간 으로 번역되곤 하던 이다. 루소는 불평등 기원을 탐색한 , 자연적 인간 형성 교육을 주창한 등으로 독창적 사상가로 평가되지만,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했다. 지나온 삶을 기록한 은 소설처럼 잘 읽힌다.
수사학
리처드 토이 지음, 노승영 옮김, 교유서가 펴냄, 1만2800원
“나치즘은 단어와 숙어의 문장 구조를 수백만 번씩 반복하여 (…) 사람들의 살과 피에 스며들게 하였다.” 우리는 수사학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수사학에는 무시해버릴 수 없는 면이 있다. 수사학은 설득의 기술이다. 책은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이다. 1권 철학, 2권 역사다. 옥스퍼드대학의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의 한국어판이다.
해부하다 생긴 일
정민석 글·그림, 김영사 펴냄, 1만4천원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 노래방에서 을 누가 부를라치면 이 사람은 웃을 때 목젖을 볼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목젖으로 아는 것은 후두이고 별명은 ‘아담의 사과’이며 목젖은 입천장의 뒤끝에 달려 있다 등등의 생각을 한다. 아주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서 해부를 하고 있는 정민석 교수가 그린 만화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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