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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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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속에, 기억을 새기다

붙들고 싶은 특별한 시간을 몸에 새겨놓은 사람들, 그들이 들려주는 타투에 얽힌 삶의 이야기
등록 2015-01-31 13:50 수정 2020-05-03 04:27
기억은 시간에 풍화된다. 흩어지고 닳아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글을 쓴다. 기록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몸에 새긴 기억은 쉬 휘발되지 않는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기억을 붙들려는 이가 늘고 있다. ‘타투’(문신)는 그들에게 허락된 가장 강력한 기억의 매개체다.
한때 타투는 주먹세계의 자기과시 정도로 여겨졌다. 최근 들어 해외여행이 늘고 ‘몸’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타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한번 새기면 평생 몸에 남겨지는 속성 때문에, 타투는 그 자체로 가장 내밀한 추억이 되고, 굳은 맹세가 되고, 지워지지 않는 정체성이 된다. 이 만난 한 타투이스트는 “타투는 평생 안 지워지는 것이어서 문제라는 게 그동안의 인식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늘이 몸을 찌르는 고통을 이겨낼 만큼 ‘새기고’ 싶은 특별한 기억을 가진 네 사람을 만나 그들의 타투에 얽힌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_편집자

“Being Human 20120508”

정인옥(40)씨 범준. 꼬마를 만난 건 2012년 5월8일이다. 얼마 전 꼬마는 4살이 되었다. 특별한 미남은 아니다. 특별한 영재도 아니다. 오히려 또래보다 말 떼는 것도 늦은 편이란다. 아들 범준에게 김연아 같은 재능이 숨겨져 있는지 정인옥씨도 아직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아이는 정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아이가 자신에게 온 날을 잊을 수 없어서 그는 목 뒤에 검고 작은 글씨를 적어넣었다. “Being Human 20120508”. 아들을 만나 비로소 사람이 됐다는 의미란다. 4살배기 아들을 둔 인옥씨에게 타투는 30대 중반에 새로 얻은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새겨졌다.

아직 엄마 노릇은 실수투성이다. 어린이집은 하루 걸러 지각이다. 저녁 늦게 일을 마친 뒤 아이를 만나 정신없이 놀아주다보면 어느새 자정이다. 당연히 둘 다 늦잠이다. 핸디형 청소기를 “범준이 장난감”이라며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누가 반찬 빨리 치우나’를 두고 게임을 벌이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인옥씨는 아이를 낳고 나서 오히려 업무도 더 열심히 하게 됐다. 돌이켜보면, 범준을 낳기 전에 책임감이라곤 없었다. “몸이 조금만 피곤해도 학교에 잘 가지 않았고, 자기 전에 세수하고 양치질하는 것조차 귀찮았어요.” 정씨가 멋쩍은 듯 웃었다. 길에서 누구와 살짝 부딪히기라도 하면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일도 잦았다. 지금은 다르다. “뭔가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못하면 아이한테 창피해요.”

‘사교생활’에 대한 관심도 휘발됐다. “친구들이 그 좋아하던 술도 못 마셔서 어떡하냐고 해요. 사람들 만나서 어울리는 걸 무지 좋아했거든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끼지 않으면 혹시나 소외되지 않을까, 불안하던 마음도 아들을 만나기 전의 일이다. 출산 뒤엔 굳이 모임에 끼지 않아도 아쉽지 않았다.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아이가 늘 내 곁에 있으니까 마음이 자연스럽게 편안해지더라고요.”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가. 범준이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엄마는 세상일에도 관심을 더 갖게 됐다. “학교폭력, 왕따, 우리 범준이가 당하면 어떡하지? 어느 날 아이가 ‘엄마, 나는 남자가 좋아요’ 하면 어떡하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모두 제 일처럼 가까워졌다. 그렇게 세상이 성큼 모자에게 다가온 날, 20120508. 인옥씨는 엄마가 되었고 사람이 되었다. 목 뒷덜미에 새겨진 숫자를 거울에 비춰볼 때마다 그는 범준이 온 귀한 날의 의미를 곱씹는다.

스스로 몸 곳곳에 새긴 신념들

안가영(29)씨 누군가에게 타투는 몸에 새겨넣은 신념이다. 녹색당에서 당직자로 일하는 안가영씨는 몸에 나무 한 그루를 그려넣었다. “평생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할 나무예요.” 가영씨는 그 나무를 환경단체의 선전물에서 보았다.

타투는 한 번 새기면 지울 수 없다. 그 때문에 오히려 타투를 새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인옥(왼쪽)씨는 아들의 탄생을 기념하며 그 생일을 목 뒤에 새겼고, 녹색당 당직자 안가영(오른쪽)씨는 환경과 생명을 고민하며 ‘생명평화무늬’를 팔에 아로새겼다. 정인옥 안가영 제공

타투는 한 번 새기면 지울 수 없다. 그 때문에 오히려 타투를 새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인옥(왼쪽)씨는 아들의 탄생을 기념하며 그 생일을 목 뒤에 새겼고, 녹색당 당직자 안가영(오른쪽)씨는 환경과 생명을 고민하며 ‘생명평화무늬’를 팔에 아로새겼다. 정인옥 안가영 제공

지난해 9월 강원도 평창 가리왕산에서는 겨울올림픽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한 벌목이 시작됐다. 밑동 지름 1m가 넘는 거목까지 예외 없이 잘려나갔다. 그러므로 가영씨의 목 뒤에 새겨진 나무는 지금쯤 그 자리에 서 있지 못할 것이다.

“살아온 세월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 커다란 나무가 잘려나가는 걸 본 순간, 내 몸이 잘려나가는 것 같았어요.” 그 아픔에 견줄 바가 못 되겠지만, 바늘이 자신의 몸을 찌르고 들어오는 아픔을 견디는 데는 잘려나간 나무들을 위한 공감의 의미도 있다.

가영씨의 왼쪽 팔뚝으로 시선을 더듬어 내려가면, 거기에도 기하학적 모양의 타투가 하나 웅크리고 있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풀과 나무. 온 생명을 하나로 모아 그린 ‘생명평화무늬’다. 처음부터 자연이나 생명에 대한 가영씨의 신념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우연한 계기로 빈곤과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다 동물에 대한 관심, 그리고 생명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영역을 넓혔다.

여행을 하다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채식을 하다보니 ‘생명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명제에 자꾸 마음이 기울었다. 우연에 기대 걸어온 활동가로서의 삶을 다잡기 위해 가영씨는 타투를 새긴다.

그는 “패션으로 하는 타투는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는 스스로 되게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에게 계속 상기시켜주기 위해서 타투를 하게 되더라고요. 흔들릴 나를 알기 때문에….”

2011년 유럽 여행 뒤 가영씨가 어깨에 새긴 첫 타투도 그런 의지의 반영이다. “그때 생각은 평생 여행 다니고 되도록 많이 여행을 가야겠다는 거였는데, 당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나중으로 미뤄야 했거든요. 여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낯선 곳, 낯선 경험들이 이제껏 저를 이끌어온 것 같아요.”

현실에 안주하려는 유혹이 들 때마다, 여행하듯 삶을 살아온 가영씨는 자신의 어깨를, 팔을, 목 뒷덜미를 들여다본다. 스스로 몸 곳곳에 새긴 신념들을 말이다.

나의 몸을 긍정하고 인정하고

정규리(28)씨 한국 사회에서 타투가 금기시되는 것은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의 유교적 전통이 강한 탓이 크다. 여성학을 전공하면서 누드모델로 일하는 정규리씨에게는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인정하는 데 타투가 촉매작용을 했다.

“부모님은 제가 번역일을 하는 줄 아세요. 대학원에 다니니 석사 논문은 도대체 언제 쓸 거냐고 매번 타박을 하시고요.” 의자에 앉아 남이 원하는 이야기만 내놔야 하는 공부보단, 몸을 움직이는 일이 기질에 맞았다. 어릴 때엔 육상 운동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만뒀지만 몸을 쓰거나 연기를 하는 것에 늘 관심이 있었다.

“예쁜 몸은 아니에요. 팔등신도 아니고 가슴은 작고 하체는 통통하고요.” 규리씨는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래서 더 벗고 싶었어요. 여자 몸이 꼭 바비인형 같아야 하나요? 사람이 살 좀 찌면 어때서. 살이 쪘건 빼빼 말랐건, 내 몸은 내 몸 그대로 아름다울 텐데, 아닌가요.”

타투 합법화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박근혜 정부 들어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과 함께 재점화되고 있다. 성모 마리아 문신을 새긴 모델 정규리(왼쪽)씨와 좋아하는 경구를 나무와 함께 새겨넣은 박보현(오른쪽)씨. 사진작가 한욱희 제공, 박보현 제공

타투 합법화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박근혜 정부 들어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과 함께 재점화되고 있다. 성모 마리아 문신을 새긴 모델 정규리(왼쪽)씨와 좋아하는 경구를 나무와 함께 새겨넣은 박보현(오른쪽)씨. 사진작가 한욱희 제공, 박보현 제공

팔뚝에 그림을 새길 용기를 얻은 것도 모델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진리를 깨닫는 법열의 순간 환희를 느끼는 성녀의 표정이 너무 뇌쇄적이어서 불경 논란에 휩싸였다던 조각상(조반니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법열’) 이야기를 들었다. 웃겨서 참을 수 없었다.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 오르가슴의 표정을 입혀 타투로 새겼다. 감히 쾌락을 탐한 이브를 벌한다는 의미로 마리아가 밟아 죽인 뱀도 살려뒀다. 오해는 말아달라. 규리씨는 “가톨릭 신자인 것도 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다만 규리씨는 우리 사회의 겉과 속이 다른 엄숙주의가 불쾌하다. “쾌락 좀 탐하면 그게 뭐 어때서요.” 나랏돈으로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 이주여성들을 쇼핑하듯 고르도록 하면서도, 여성에게 과도한 정절을 기대하는 사회, 그 사회가 갑갑해질 때마다 규리씨는 환희에 찬 성모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박보현(23)씨 박보현씨의 타투는 힘에 부칠 때 들여다보는 가장 가까운 곳의 경구다. ‘무릇 흔들리는 것은 네 마음뿐이다.’ 영화 의 소개 영상에 등장하는 문구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제자가 묻는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것입니까?” 스승이 답한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묘한 선문답이 보현씨에게는 상한 영혼을 달래주는 잠언으로 다가왔다.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너무 지치고 소진된 상황이었는데 그 말이 꼭 와닿았어요.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나봐요.”

한 번쯤 쉬어가고 싶었다. 영화 속 흩날리는 버드나무 이파리를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흔들리는 이파리가 바람에 쉬 흔들리던 자신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보현씨에겐 여중생 때부터 숨겨온 이야기가 있었다. 사춘기 시절, 처음 찾아온 사랑은 동성 친구였다. 표현하고 싶은 게 많은데 그걸 모두 뱉어내면 학교에서, 집에서, 이 세상 모든 곳에서 혼자가 될 것만 같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감췄다.

지난해 가을, 보현씨는 ‘커밍아웃’을 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되도록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털어놓았다. “남들과 다른 상황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안 좋은 감정, 불안감, 괴로움이 나를 자꾸 옭아매더라고요. 그게 스스로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결심했어요.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제 상황에 대해 알고 있어요.”

흔들려도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게 가장 큰 힘이었다. 여성단체 활동가가 되고 나서다. 보현씨의 내밀한 이야기를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다. 올해 겨울 마침내 그 흔들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보현씨는 색색의 나무 한 그루와 함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왼쪽 팔에 새겨넣었다. ‘무릇 흔들리는 것은 네 마음뿐이다.’

한 번 새긴 타투는 삶의 고비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와 박힌다. “타투를 할 때는 내가 이 이미지에 대해 모두 알고 새겼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내가 이걸 왜 새겼지? 무슨 의미였지? 자꾸 되새기고 새롭게 생각하게 되고, 이게 지금 내 상황에 대입했을 때 어떤 의미로 변할까,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내가 이걸 왜 새겼는지 또 질문하게 되죠. 본래 내 마음을 다잡자는 의미에서 하게 됐지만 끊임없이 다른 의미로 변해요.”

정인선 인턴기자 insun9782@naver.com



타투이스트가 말하는 타투


'제대로 합법화'를 고민하라


타투이스트들은 작은 타투숍에 앉아 온 세상 사람들을 만난다. 고객만큼이나 그들 자신에게도 하나하나의 타투 작업은 큰 의미로 각인된다. 서울 이태원에서 8년째 타투숍을 운영하는 타투이스트 월하는 “문신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에게 평생 남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해주는 게 뿌듯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름이랑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나도, 타투를 보면 그때 나눴던 얘기까지 기억이 나요.” 그가 덧붙였다.
9년 가까이 타투를 새겨온 타투이스트 도이에게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외국에서 작곡가로 활동하는 한 고객은, 앨범이 몇십만 장씩 팔리거나 공연이 성황리에 끝나는 등 직업적으로 큰 성취를 이룰 때마다 ‘의식’처럼 몸에 타투를 새긴다. 한 번 날갯짓을 하면 6개월을 땅에 내려앉지 않고 난다는 붕새, 몇 년에 한 번만 핀다는 선인장의 꽃처럼 성취를 위해 견뎌낸 시간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주로 새긴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그의 몸에 새겨온 타투가 벌써 네 개다. 기쁨을 함께 나눠온 셈이다. “그 손님이 타투를 하나 더 하겠다고 연락이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타투가 동원되기도 한다. 큰 점이나 흉터를 꽃이나 나무 등 화려한 문양의 타투로 덮는 이도 있다. 타투이스트 보름은 가장 의미 있는 작업으로 친언니의 몸에 있던 큰 점을 덮어준 목련꽃 무늬의 타투를 꼽았다. “이제 당당하게 수영장에 갈 수 있다고 기뻐하는 언니를 보며 나도 만족감이 컸어요.” 타투이스트 월하는 “한국에서 생활하며 차별로 인해 상처받은 조선족 고객에게 한국의 전통 문양을 살린 타투를 시술해준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타투이스트들은 타투가 하나의 예술행위임을 인정해달라고 호소한다. 타투이스트들에게는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도이는 한 사람에게 시술한 도안은 다른 사람에게 중복해서 시술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수채화 타투, 일러스트 타투 등 서정적인 느낌의 디자인을 주로 하는 것도, 타투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 승화해 타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고 싶기 때문”이다. 타투이스트 월하는 미술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타투숍을 열기 전 화실에 다니며 그림 실력을 쌓았다.
현재 한국에서는 업계 추산 2만여 명의 타투이스트가 활동 중이다. 타투 시술을 받는 인구는 한 해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업계의 오래된 화두인 ‘합법화’가 박근혜 정부에선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타투이스트들의 관심이 높다.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타투 합법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해 12월28일엔 ‘규제 기요틴’ 추진 과제를 발표하면서 예술적 문신 행위를 양성화하겠다고 밝히며 타투 합법화를 둘러싼 논의를 재점화했다.
타투이스트 도이는 ‘무조건 합법화’보단 ‘제대로 합법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합법화라는 결론이 같더라도 타투를 의료 행위로 볼지 문화의 하나로 볼지는 건전한 타투 문화를 이끌어가는 데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무작정 합법화한 뒤 국가가 제대로 감시하지 않고 관리를 민간단체나 협회에 다 이양한다면 지금보다 부작용이 클 것 같아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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