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만세. 고양이다.
하나, 둘, 셋… 오늘도 끝까지 세는 것을 포기했다. 베란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불 켜진 창을 헤아리는 것. 하나, 둘, 셋… 이 역시 포기했다. 저 아래 큰길 헤드라이트를 밝힌 채 이 밤의 끝을 잡고 달리는 자동차 대수를 세는 것.
세상이 까맣게 내려앉으면 나는 오도카니 베란다 창문 앞에 앉는다. 맞은편에 사는 인간들이 하나, 둘. 제 집에 불을 밝힌다. 저 멀리 크고 작은 상점도, 사무실도 하나, 둘. 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처음에 이런 풍경을 구경할 때는 꽤나 재미가 있었다. 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반딧불이처럼 꽁무니에 밝은 불을 달고 움직이는데, 마치 벌레들이 군무하는 듯 황홀해 보였다. 온기 어린 불빛이 창밖에 어른거리기 시작하면 나는 좀 감동하기도 했다. 밤하늘에 별을 띄우는 마음으로 인간들은 밤을 맞는구나. 그들이 띄우는 별을 바라보며 나도 어느 시인처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그렇게 아름다운 말을 한마디씩 불러보았다. 어릴 적 우다다를 함께 했던 나의 형 이름과, 터키시 앙고라, 러시안 블루, 아비시니안 이국 고양이들의 이름과 가난한 길고양이들의 이름과….
아아, 하지만 역시 이 지긋지긋한 인간들, 하나하나 부르던 이름이 바닥이 날 때까지 인간들은 그 불빛을 꺼트릴 줄 몰랐다. ‘밀당’도 모르냐. 그 정도 고양이의 눈을 홀렸다면 충분하다. 참치, 치킨, 쥐돌이, 간식캔…. 아름다운 간식과 사소한 장난감 이름까지 동원해보아도 낮과 같은 인간들의 밤은 끝이 나질 않는 거다.
밤은 고양이들의 시간이다. 우리가 하루에 16시간씩 잠을 자며 인간들에게 낮을 양보했다면 이제 그만 밤 시간은 우리에게 내줘야 하지 않나. 밤은 길에 사는 나의 친구들이 사냥해서 아이들을 먹이는 시간이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지붕 위에서 날래게 몸을 달려보는 시간이기도 하고, 사람들을 피해 숨어 있던 그늘에서 나와 밤공기를 누리는 시간이다. 하지만 불 밝힌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발길에 행여나 차일까, 헤드라이트를 번뜩이며 급하게 달려가는 오토바이가 혹시 길 건너는 우리를 보지 못하고 내달릴까봐 우리는 밤이 아주 깊어지도록 낡은 지붕 아래에 숨죽여 고양이의 시간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집주인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그 남자, 택배 아저씨는 요즘 종종 한밤중에 문을 두드린다. 아저씨는 더 깊은 밤이나 되어야 겨우 자기 집 문고리를 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할 일에 치이고 밀린 시간들이 쌓여 슬금슬금 고양이의 시간을 넘보는 거다.
해거름이 지는 저녁부터 동트기 전 이른 새벽까지, 언제쯤 우리 고양이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하나, 둘, 셋 밤을 잊은 그대들의 불 밝힌 창을 헤아리며 나는 모두들 그만 분주함을 접고 안락한 밤을 보내길 기다리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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