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노란 불빛이 포근한 느낌을 준다. 엘이디(LED)로 연출한 빛이다. 전구를 자주 갈지 않아도 되고 간접등 효과를 톡톡히 한다.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이들은 전구색·주광색 등 LED등 색깔까지 세세하게 외운다. 이제는 가정집 인테리어에도 LED 조명은 필수품이다.
정작 이 빛을 만든 사람들은 고통받는다. 빛 색깔을 정하는 형광체를 칩에 덧바르다 미세 입자가 코안으로 들어간다. 칩을 고열에 굳히다 공기 중에 흩날린 유해물질을 맡는다.
2024년 11월11일 삼성전자 기흥공장 LED 공정 전직 근무자 3명이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난소암으로 숨진 이가 1명(이아무개씨·사망 당시 40살), 본인이 대장암에 걸렸고 자폐 아이를 둔 이가 1명(유아무개씨), 지적장애 아이를 둔 이가 1명(ㄱ씨)이다.
앞서 2021년과 2024년 5월에도 같은 공장 노동자들이 뇌종양(32살 이아무개씨)과 악성 림프종(최아무개씨)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LED 공정에서 알려진 산재 신청만 5년 내 5건인 셈이다. 그간 메모리 반도체 공정의 유해성은 지적됐어도 LED 공정에 대한 집단적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형광체 색깔이 휘황찬란해요. 꽃분홍색에 노란색에…. 딱 봐도 몸에 정말 안 좋게 생겼고요. 그걸 개방된 공간에서 직접 스푼으로 떠서 배합하는 거예요.”(전직 삼성전자 기흥공장 LED 공정 직원 ㄱ씨)
LED는 빛을 내는 반도체다. 전기 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변환시켜 발광한다. 조그만 반도체 칩에 적색·녹색·황색 형광 가루를 입혀 자연스러운 색을 만든다.(배합·오븐 공정) 특히 백색 LED 조명의 경우 어떤 형광체를 얼마나 많이 배합하느냐에 따라 전구색·주백색·주광색 등 LED 색깔이 달라진다.
칩 꾸러미(웨이퍼)를 만들고 다듬는 과정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정과 비슷하다. 하지만 형광체를 칩에 덧입히는 건 LED만의 독특한 공정이다. 산재를 신청한 5명 모두 배합·오븐 공정을 경험했다. 다른 공정만큼 화학물질 노출이 심하다. 형광체를 에탄올 등 유기용매에 버무리고 빨리 굳도록 경화제도 섞는다.
“자동화 기계가 있긴 한데 워낙 바쁘니까 직접 손으로 배합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형광 가루가 날리니 늘 목이 아팠어요. 배합 용기 씻는 세정액도 엄청 독해서 장갑을 두 겹씩 껴도 구멍 나고 녹더라고요. 두통이 자주 생기더니 뇌종양을 진단받았습니다.” 201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9년간 3라인 LED 공정에서 일한 32살 이아무개씨가 말했다. 그는 2021년 뇌종양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배합물을 고온에 굳히는 ‘오븐’ 공정에서도 화학물질이 배출된다. 서울반도체 LED 공정에서 배합과 오븐 공정에서 일한 송영란씨와 이가영씨(2019년 사망)는 각각 2013년과 2015년 림프구성 백혈병과 악성 림프종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149~150도 이상 가열조건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와 벤젠이 생성 가능하다”(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고 판단했다. 실제 작업환경 측정 결과 세 번 중 두 번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다. 삼성 노동자들도 오븐 작업을 했다.
배합에 쓴 용기를 씻을 때도 독한 세정액에 노출된다. 최아무개씨는 200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19년까지 꼬박 12년을 LED 패키지 공정에서 일했다. 2024년 악성림프종을 진단받았다. “미끌거리는 ‘실리콘 세정액’ 통에 주사기, 펌프 등을 담근 뒤 벤코트(산업용 세정 부직포)로 세정액을 닦아냈다. 그리고 아세톤이 담긴 통에 재차 담갔다 뺀 뒤 벤코트와 솔로 다시 닦았다. 마지막으로 세척용 알코올(IPA)에 담갔다 빼는 식으로 3차 세정을 했다. 맨손으로 골무만 낀 채 작업했다. 부품을 해체할 땐 화학물질 냄새에 두통이 날 정도였다.”(재해경위서 발췌) 실리콘 세정액과 벤코트, IPA는 모두 세정 목적으로 쓰이는 화학약품이다.
이 밖에도 익히 알려진 반도체 공정의 유해성이 LED 라인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예컨대 칩에 봉지재를 씌우는 ‘몰딩’ 공정의 경우, 주원료인 에폭시몰딩컴파운드(EMC)를 가열하면 벤젠과 포름알데히드가 생성된다.(‘반도체 제조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작업환경 및 유해요인 노출특성 연구’) 2014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의 몰딩 공정 노동자들이 뇌종양으로 집단 산재를 신청하며 위험성이 알려졌다.
LED 반도체 불량품을 테스트하는 공정(EDS)에선 화학물질 ‘에틸렌글리콜’이 사용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17가지 생식 독성 물질(임신 중 자녀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 중 하나다. 2017년 에틸렌글리콜에 장기간 노출된 삼성 기흥공장 직원의 불임이 산재로 인정된 사례도 있다.
게다가 LED 공정은 메모리 반도체 공정보다 수작업 비중도 크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직접 화학물질을 만지고 옮기며 유해물질에 더 자주, 가까이 노출됐다.
“반도체 공장 있다가 온 분들이 많이 당황했죠. 거기선 로봇이 자동으로 비커에 넣어주는데 여기선 사람이 직접 도구를 써서 넣어야 했으니까. 오신 분들이 질색하며 ‘이걸 내가 해야 되냐, 다른 거 시켜달라’고 요구하곤 했어요.”(유아무개씨) “LED 공정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열악해서 충격받았어요. ‘대장간 같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ㄱ씨)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역량을 인정받아 승진도 빨랐다. 그러나 유씨에게 돌아온 건 대장암과 아이의 장애다. 유씨는 LED 공정 관리자로 일할 때 아이를 가졌다.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도 직장과의 연관성은 의심해보지 못했다. 퇴직 뒤 LED 공정 전직자들과 교류하다 각 가정에 지적장애나 자폐를 가진 아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확인된 것만 5명의 자녀가 지적장애·자폐·희귀질환을 가졌다. 지적장애 자녀를 둔 ㄱ씨도 그때 알았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LED 공정의 유해물질이 아이에게 영향을 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을 통해 태아 산재를 신청했다.
2024년 8월, 또 다른 3라인 LED 공정 직원인 40살 이아무개씨가 숨졌다. 그는 2009년부터 15년간 기흥 LED 라인에서 일하다 난소암에 걸렸다. 암을 뒤늦게 알았을 땐 손쓸 수 없었다. 급하게 입원했지만 호흡곤란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유씨 가족이 그를 대신해 이번에 산재를 신청했다.
과거 반도체 산재 피해자를 대리한 천지선 변호사는 반도체 공정을 이렇게 정의했다. “화학물질을 붙이거나 입히거나 바르고 고온에 굽기를 반복하며 다양한 기체·액체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것.” 겉보기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듯하지만, 실은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가득하다. 특히 유해물질은 2종 이상이면 유해성이 더욱 커지는 ‘독성의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반도체 업종에서 직업병 사례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2020년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 안전 보건 모델’을 만들었다. 웨이퍼 제작 전반에서 드러난 유해·위험 요인을 정리했다. 그러나 배합·오븐과 같은 LED의 특수 공정은 따로 다루지 않았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종사자에게 적용하는 ‘추정의 원칙’도 한계가 크다. 공단은 현재 업무 관련성이 확인된 백혈병 등 8개 질병에 한해 역학조사를 생략하고 빠르게 산재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기준 설정 당시 피해자가 가장 많았던 ‘2011년 이전 입사자’로 적용 대상을 한정했다는 점이다. 암에 걸렸어도 2011년 이후 입사자는 이 원칙을 적용받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삼성 반도체 직원 신아무개씨 경우, 공단이 2014년 입사자라는 이유로 산재를 인정하지 않아 사망 후 소송을 통해서야 인정받았다.
반올림은 삼성전자 기흥공장 3라인의 고질적 문제도 주목한다. 삼성은 작업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2009년 3라인을 대대적으로 LED 라인으로 개편했다. 황유미씨와 이숙영씨가 이 라인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지고 노후 설비로 가스 누출도 반복된 탓이다.
하지만 공정 개편 이후에도 노동환경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고 노동자들은 증언한다. 기존의 낡은 장비 상당수를 도로 가져다 썼고 새로 들인 장비도 전부 중고였다는 것이다. 이씨는 “설비가 너무 낡고 고장이 잦아서 생산량을 맞추려면 결국은 수작업해야 했다. 배기도 불량해 고깃집 연통 같은 것을 달아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단계적으로 LED 사업에서 철수할 방침이다. 당장 2024년 하반기부터 조명기기용 LED칩 제조부문을 정리한다. 티브이(TV) 조명과 차량용 전기전자장비도 단계적으로 손을 뗄 예정이다.
재해자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다니던 현장 증거가 다 사라질까 겁이 나요.” 가뜩이나 반도체 공장은 보안 이유로 직원들 휴대전화 카메라도 가려놓는다. 재직 중 설비 한 장 촬영한 적이 없다. 재해자들은 뒤늦게 그것이 안타깝다.
LED 노동자들 병은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이 중국산 저가 LED와의 경쟁에서 손을 떼지만, 국내 중소기업은 여전히 이 분야에 남아 있다. 6천억여원 규모 시장에 700~800여 개 업체가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보다 유해물질 관리가 더 열악할 수 있다.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LED 산업 전반에 대한 노동환경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은 재해자들이 지적한 LED 공정 유해 요인에 관해 삼성전자에 자세히 질의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쪽은 “반기 1회 작업환경측정을 통해 유해인자 노출수준을 지속 모니터링하고 작업환경도 법적 노출기준의 10% 미만으로 안전하게 관리한다. 또 2018년11월부터 반올림 합의안에 의거, 보상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삼성의 직업병 보상 기준은 특정 진단명에 한해, 매우 엄격하게 적용된다. 유씨도 난소암 최초 진단을 받았으나 암 전이로 최종 진단코드가 대장암이 되자 보상 대상에서 빠졌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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