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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에서 본 ‘우리의 앎’

노마 히데키의 <한국의 지를 읽다>
등록 2014-10-18 15:46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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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 교수는 학자, 번역가, 작가 등 일본 지식인들에게 “여러분이 한국의 ‘지’와 만나게 해준 책을 추천해달라”는 편지를 썼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지적 재산과 스친 순간을 묻는 질문에 응답한 94명의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 책은 노마 히데키가 쓴 이었고, 그다음은 윤동주 시집 와 김중혁 단편집 순이었다.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 하면 ‘드라마’나 ‘케이팝’ 같은 말이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르는 데 비해 한국과 ‘지식’ ‘앎’은 영 낯선 조합이라고 했다. 일본어권에 번역된 한국 문학과 인문서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정황을 140명의 한국·일본 필자가 쓴 (노마 히데키 엮음·김경원 옮김·위즈덤하우스 펴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아사히신문사 기자 사쿠라이 이스미는 리영희·임헌영의 대담집 를 추천하며 “이 책의 일본어판이 아직 없다. 변함없이 일본은 이웃 나라의 지에 무관심하고 또 무지하다”고 비판했지만 우리라고 일본에 대해서 더 나을 것 같지는 않다.

한국과 일본, 오래된 사이지만 서로를 모르는 두 나라가 ‘앎’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서 평론가 세키카와 나쓰오는 “한국엔 내셔널리즘이 없다. 한국의 내셔널리즘은 실은 ‘남을 싫어하는 마음’과 ‘자기 편 챙기기’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솔직한 질문을 던진다. 출판인 류사와 다케시는 오히려 김구의 를 언급하며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시작부터 세력 확장주의가 아니었는지” 반성하면서 “그 정반대의 지점에서 어떤 보편적인 정신이 태어났는지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책읽기는 언제나 자신을 향하는 행위라는 증거다.

물론 책에선 이창동 감독의 를 추천하는 니시카와 미와 같은 이나 일본인은 공지영 나 김용철 를 읽어야 한다는 사쿠라이 이스미 같은 사람들도 있다. 와세다대학 마쓰나가 미호 교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문학을 과연 ‘한국다움’을 기준으로 언급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며 “기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불식하는 새로움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한강, 김중혁, 구효서 작가의 문학을 추천한다. 책을 엮은 노마 히데키의 춤추는 듯한 문장은 외국인이 한국 문화에 바친 최고의 찬사로 기록할 만하다. 그는 책 말미에서 “한글은 일본어의 에크리튀르(문자)가 경험한 적 없는 터무니없는 위기를 꿋꿋하게 살아왔다. …한글로 쓰인 문자열은 우리가 배워야 할 앎에 대한 투쟁대열”이라며 글을 맺는다. 책에 참여한 한국어권 지식인 46명은 ‘한국의 지’를 대표하는 책으로 과 유홍준의 를 가장 많이 꼽았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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