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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악성이 세계를 덮고 있다

로버트 피스크의 <전사의 시대>
등록 2014-09-17 15:23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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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이슬람국가’의 이라크 대공세, 6월29일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 창설 선포, 9월10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내전 개입 선언…. 최근 중동 위기의 원인을 알자고 치면 다시 2001년 9월11일, 아니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3월로 돌아가는 반복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9월12일치 ‘이슬람국가(IS)는 어떻게 건설됐나’ 기사를 보아도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와 이라크 내전 등 12년 전으로 돌아가는 화살표를 거쳐야 알카에다 연계 조직인 ISIS의 성장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동어반복은 서구도 마찬가지다. 오사마 빈라덴을 3차례 인터뷰한 로버트 피스크는 최근 영국 일간지 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빈라덴을 인터뷰할 땐 생명을 잃을까 걱정한 적이 없었다”면서도 동시에 “최근 큰 중동 위기에서 다시 미국의 오래된 중동 정책을 보게 된다”고 비판했다.

9·11 공격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쓰인 로버트 피스크의 경험담과 논평을 담은 (경계 펴냄)는 그사이 오바마 대통령의 종전 선언과 ‘아랍의 봄’ 같은 굵직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오늘의 현실과 자꾸 중첩되는 이유는 세계가 ‘전사의 시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책은 베트남에서 더 이상 잔학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던 미 육군의 ‘복무 신조’가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전사의 기풍’이라 불리는 새로운 복무 신조로 바뀌었음을 지적한다. 전사의 신조는 절대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미합중국의 적을 말살시킬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서구의 시선으로 중동 문제를 접하기 일쑤인 우리는 IS의 성장을 이해하기 위해 시아파와 수니파 문제를 국가나 지역적 대립으로 바라보려 애쓰지만 번번이 허탕을 친다. 책은 또 공개적으로 중동의 종파 지도를 유포하고 결정적으로 종파 갈등에 불을 지핀 것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전까진 집권세력이 누구냐에 따라 종파 간 차별은 있을지언정 심각한 긴장은 형성되지 않았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미국의 논리에 따라 사담 후세인 시절 득세했던 수니파에 대한 대대적인 솎아내기와 소탕이 일어나 변방으로 밀려났던 수니파는 다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손잡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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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우리는 악마와 싸우고 있으며 그건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최근엔 가자지구 폭격),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점령, 관타나모에서의 고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내심 이슬람을 뒤떨어지고 폭력성이 잠재된 종교라고 바라보는 서구의 시각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냐고 묻는다. 중동 사태가 점점 악화된다는 것은 점점 더 많은 희생을, 무슬림 민중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이고 인간의 잔악성이 세계를 덮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전쟁에서 침묵은 곧 동의를 의미한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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