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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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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며느리의 고민

<송편> 추석 전날 새파랗게 질려 함지박을 들고 달려온 옆집 새댁, 송편 반죽이 죽이 되어버렸다는데…
등록 2014-08-30 14:31 수정 2020-05-03 04:27
정선군 제공

정선군 제공

누구네 시집온 며느리가 ‘어머니, 깨 볶을 때 참기름으로 볶을까요, 들기름으로 볶을까요’ 하고 물었답니다. 어떤 갓 시집온 며느리는 깨소금은 깨에 소금을 섞는 것이 라고 알았다지요.

어두니골에 두 집이나 새 며느리가 들어와서 처음 맞는 추석에 벌어진 일입니다.

명절 준비로 한창인 우리 집에 열여섯 살 옆집 새댁이 함지박을 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달려왔습니다. 큰일 났다고 함지박을 내려놓고 엉엉 웁니다. 시할아버지와 동갑내기 시누이만 있는 집에 시집온 새댁이 처음 맞는 추석에 송편 반죽을 하다 실패한 것입니다. 시누이와 둘이 아침 일찍부터 디딜방아에 쌀을 빻아 쌀가루를 만들어 송편 잘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올케가 쌀가루 담은 함지박 앞에 앉아 시누이보고 물을 부으라고 했더니 경험 없는 시누이가 물 한 바가지를 단번에 들이부어서 떡반죽이 아니고 죽이 되어버렸답니다.

우리 집은 떡반죽을 하기 전이라 죽이 된 새댁네 떡반죽을 물 삼아 쌀가루에 조금씩 나눠 넣고 호박을 갈아 섞어 노란 떡반죽도 만들고 도토리 가루를 섞어 밤색 반죽도 만들고 산머루를 주물러 걸러 보라색 떡반죽도 만듭니다. 할머니가 물을 부어주며 옆집 시누이·올케에게 떡반죽을 해보게 합니다. 함지박에 담긴 쌀가루 가운데를 손으로 살짝 파고 조심스럽게 물을 부어주며 살살 손으로 뒤적여가며 물을 맞춥니다. 떡가루가 다 젖었을 때 손으로 꼭꼭 주물러 말랑말랑하며 손 사이로 삐져나가지 않을 정도면 마침맞습니다. 다음은 물과 쌀가루가 잘 어우러지도록 두 손으로 한참 치대주면 됩니다. 소는 뭘 넣을 거냐 물으니 아직 생각도 못했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우리 집은 줄밤나무 집이라 밤이 많으니 밤도 까고 콩은 즈네들(너희들) 밭에 가 따다가 만들어 우리 집에서 빚어 쪄가라고 했습니다.

여럿이 함께 떡을 빚습니다. 하얀 반죽에는 맨드라미꽃으로 예쁘게 장식을 합니다. 새댁네는 처음에는 떡 모양이 우습더니 몇 개 빚으니 예쁜 모양이 나옵니다.

열두 동이들이 가마솥에 떡을 찝니다. 물을 솥 아래 금까지 붓고 나무로 된 엉그레를 물 위로 건너지르고 큰 싸리로 엮은 채반을 깔고 그 위에 삼베 보자기를 깝니다. 바싹 말라 잘 타는 장작과 솔갑(솔가지)으로 불을 땝니다. 물이 설설 끓을 때 채반 위에 솔잎 훌훌 뿌리고 한 번 찔 만큼의 양을 들어다 조심스럽게 주르르 붓습니다. 떡 위에도 솔잎을 뿌리고, 큰 삼베 보자기를 덮습니다. 나무 뚜껑을 덮고, 아궁이에 빨리 잘 타는 솔갑을 더 넣어 김이 확 오르면 조금 있다가 불을 치우고 잠시 뜸을 들여 꺼냅니다.

어머니가 옆에서 지켜보는 새댁더러, 나는 짐작으로 하지만 언제쯤 불을 치우고 얼마만큼 뜸을 들이는지 숫자로 세어보고 적어놨다가 내년에는 그대로 하라십니다. 물이 끓지 않을 때는 절대로 한꺼번에 들이부어서는 안 되고 서로 붙지 않도록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안쳐서 쪄야 하며, 콩떡이 익는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팥떡과 함께 안쳐서는 안 되는데, 양이 많지 않을 때는 콩떡 먼저 안쳐 한 김 오른 다음에 깨떡이나 팥떡을 안쳐 쪄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주었습니다.

뜸이 다 들면 뚜껑을 열고 찬물을 한 바가지 위에다 훌훌 뿌린 다음 여럿이 보자기 네 귀퉁이를 들어 다섯 말들이 통나무 함지로 옮깁니다. 손에 기름을 묻혀 떡에 발라가며 다른 그릇에 옮겨 담습니다. 한 김 나간 뒤에 만져야 반들반들하고 맛깔스런 떡이 됩니다. 미리 준비한 물김치와 먹는 갖가지 송편은 쫄깃하고 고소하고 향긋합니다. 모두 올해 송편이 제일 맛있다고들 합니다.

새 며느리를 본 순자네도 떡반죽 때문에 고부가 다투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가 찬물로 생반죽을 한다고 하니 며느리가 어머니 무슨 소릴 하시냐고, 익반죽을 해야지 생반죽은 깨져 못쓴다고 우겼답니다. 시어머니는 이런 버르장머리하곤, 내가 30년을 떡반죽을 했다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러면 아가 너는 익반죽을 하고 나는 생반죽을 해서 먹어보고 내년에는 더 좋은 걸로 하자, 그래서 더 싸우지 않고 조용히 떡을 빚게 되었습니다. 며느리의 떡반죽은 깨지지 않고 만지는 대로 말을 잘 듣습니다. 소가 흩어져서 빚기 어려운 깨떡이나 팥떡도 예쁘게 만들어집니다. 생반죽은 아무래도 빚을 때 생각대로 말을 잘 안 듣습니다. 추석날이 되었습니다. 똑같이 어제 빚은 떡인데 생반죽 떡은 굳지 않고 쫄깃거리고 맛있습니다. 익반죽 떡은 벌써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다들 먹으면서 이 떡은 왜 이리 딱딱하냐고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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