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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디도 도망갈 데 없는 곳. 갇힘의 절망과 탈출의 절박함. 작품 배경으로서 선상이라는 공간이 주는 매력은 그런 것이다. ‘도망갈 수 없음’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공간의 핵심적 특징이며 선상은 이에 대한 극단적이되 대단히 선명한 비유이기 때문이다.
결국 벗어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속할 당시에는 세상의 모든 것 같은 그런 공간을 우리는 옮겨다니며 살고 있다. 중고생 시절의 반 아이들, 군대와 직장의 상사들이 지배하는 그 공간은, 불과 몇십km만 가도 세상으로 통함을 잊고 여기가 바로 세상의 끝인 듯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는 짙은 바다 안개처럼, 갖고 있던 멀쩡한 가치를 한순간 잃어버리게 만든다.
의 배는 물리적으로도 이 세상의 외딴섬이지만, 낡아가는 선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기술, 숨겨야 할 비밀, 용납될 수 없는 범죄, 은닉한 사람들 등으로 인해 상징적·정신적으로 고립된 곳이며 악이 바로 산소 같은 곳이다. 어떤 원근법도 무의미할 정도로 사위를 뒤트는 두꺼운 안개는 사이렌의 노랫소리처럼 사람들의 오감과 사고를 마비시킨다. 여기가 바로 세상이며 세상의 전부라고, 네가 찾을 세상의 의미란 건 없다고, 그러니 이제 이리 뛰어든들 어떠냐고,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가능케 한다고 유혹한다. 그리고 배에 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세상의 무의미성이라는 공포와 싸운다.
선장에게 이 배 ‘전진호’는 그의 인생 자체다. 한때 여수 바닥을 평정하던 사업가가 동네 바보와 대낮부터 섹스를 하고 있는 부정한 아내에게 분노하는 것도 잊고 서슴없이 범죄에 손을 내민 것도 실은 이 배 때문이다. 동식에게는 홍매가 그런 존재다. 살려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심연까지 따라 들어가 결국 구해내고, 옆에서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며 공포 속에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바로 돌아누워 사랑을 나누는 그들은 삶의 두려움에 맞서는 한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짙은 안개 속에서 누구는 실성하고 누구는 섹스를 하고 누구는 돈을 빼앗고 누구는 살인을 한다. 미친 공간에서 악은 순식간에 전염되고 동식의 도륙은 결국 그의 미래 역시 창욱과도 경구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암울한 의심을 하게 한다.
뭍에 내려온 동식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바다에 배와 함께 가라앉은 자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뭍으로 나온 자, 삶이 신산스럽기는 결국 별로 다르지 않다는 이 시대의 음울한 은유일까. 해무 안에서도 밖에서도, 인생이란 결국 한 발짝도 움치고 뛸 수 없는 촘촘한 그물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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