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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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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 울리는 인권위, 어떻게 다시 설까

소위원회 만장일치제 무력화에 위압적 조직문화로 평등권 침해
상임위원 인사청문 절차 마련·자격 검증제 등 개선안 마련돼야
등록 2025-03-14 23:43 수정 2025-03-19 13:11
순직이 인정된 변희수 하사의 안장식이 열린 2024년 6월24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안장식이 엄수되기 전에 충남 계룡시 육군본부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노제가 열리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순직이 인정된 변희수 하사의 안장식이 열린 2024년 6월24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안장식이 엄수되기 전에 충남 계룡시 육군본부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노제가 열리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군 복무 중에 성확정 수술을 받은 트랜스여성(출생 때 지정성별은 남성이지만 성별 정체성은 여성인 사람) 고 변희수 하사가 육군으로부터 부당한 전역 처분을 받았을 때, 그것은 인권침해라고 유일하게 목소리를 낸 국가기관이 있다. 짐작하신 대로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다. 육군본부가 2020년 1월22일 전역심사위원회를 열어 변희수 하사를 심신장애인으로 간주해 쫓아내려 할 때, 인권위는 “성전환(성확정) 수술 행위를 신체장애로 판단해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은 성별 정체성에 의한 차별 행위 개연성이 있다”며 전역심사위원회 개최 연기를 긴급 권고했다. 2020년 12월엔 변희수 하사에 대한 전역 처분을 취소할 것을 육군참모총장에게 권고했다.

 

‘변희수재단’ 설립 인권위가 반려 

변희수 하사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2021년 3월4일엔 그의 명복을 비는 성명을 발표했고, 변희수 하사의 죽음을 ‘일반사망’으로 처분한 육군과 달리 국방부가 2024년 3월29일 재심사 끝에 ‘순직’으로 인정하자 이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처럼 인권위는 변희수 하사와 함께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서 싸웠다.

그랬던 인권위가 지금은 인권침해 피해자인 변희수 하사와 맞서는 형국이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모두가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지냈으면 한다는 고인의 뜻을 공익활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변희수재단준비위원회(준비위)가 추진하는 ‘변희수재단’ 설립을 인권위가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위는 비영리법인인 변희수재단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2024년 5월7일 인권위에 제출했다. 8월 인권위 사무처 담당 부서의 서류 검토는 이미 끝났고, 송두환 당시 위원장도 9월5일 임기를 마치기 전에 결재를 완료했다.

이제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 안건을 심의하는 상임위원회(위원장과 상임위원 참석·이하 상임위) 의결만 거치면 되는 상황. 그사이에 위원장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동성애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안창호로 바뀌었다. 인권위는 서류 접수 후 약 9개월이 지난 2025년 2월20일이 돼서야 변희수재단 설립 허가 안건을 상임위 안건으로 상정했다.

심의 결과는 보류였다. 서류 제출일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나 비영리법인 설립에 필요한 기본재산(5천만원)이 지금도 있는지를 알아야겠다며 증빙서류를 최근 시점으로 보완해 제출하라는 것 등이 반려 사유다. 이후 3월6일 열린 상임위에서 이 안건이 다시 상정됐다. 하지만 인권위 상임위원 김용원이 ‘사단법인으로 신청하면서 왜 단체명에 재단이 들어가냐’는 취지의 말을 하며 회의장을 나가버리는 바람에 안건 처리는 또 무산됐다. 비온뒤무지개재단, 한국문화창작재단, 생명존엄재단, 희망나무재단 등과 같이 사단법인이면서도 이름에 ‘재단’이 들어간 단체는 이미 존재한다. 준비위는 김용원의 문제 제기가 “생트집”이라고 비판했다.

변희수 하사 4주기(2021년 2월27일 사망)를 앞두고 2025년 2월22일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시민 4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인권 문제에 아무런 기초 지식도, 감수성도 없으면서 인권위를 정치 선전장으로 만드는 위원들 때문에 인권위가 제 구실을 못하는 현실을 성토했다.

문정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가인권위윈회지부 지부장이 2025년 2월24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 앞서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문정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가인권위윈회지부 지부장이 2025년 2월24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 앞서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인권위 직원들 “시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문정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가인권위원회지부장도 추모제에 참석했다. 인권위에 있는 노동조합 대표다. 문정호 지부장이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로 침해된 시민의 인권 보장을 위한 안건은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 탄핵 위기에 빠진 ‘대통령 윤석열 구하기’ 권고안은 가결하는 것이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일까요? 국가인권기구의 정체성일까요? 본연의 업무일까요? 우리 지부는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겠습니다. (…) 시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립니다.”

시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위원장 안창호와 상임위원 김용원, 비상임위원 한석훈·이한별·강정혜, 그리고 지금은 인권위를 떠난(3월1일 면직) 전직 상임위원 이충상이다. “내란 부역자”로 불리는 이 6명은 2025년 2월10일 열린 전원위원회(위원장과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참석·이하 전원위)에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라는 이름의 안건 처리를 밀어붙였다. 윤석열 탄핵사건을 심리할 때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증거조사를 하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장(현재 권한대행 체제)에게 표명한 것으로, 일명 ‘내란범 비호’ 안건이다.

당시 회의 자리에는 윤석열이 공권력을 동원해 일으킨 12·3 내란사태가 국민의 기본권을 얼마나, 어떻게 침해했는지를 인권위가 직권으로 조사하자는 안건도 있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로 “공포를 느꼈다”는 시각장애인 김준형(32)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계엄령이 선포됐을 때 무서웠어요. ‘군인들이 국회에 갔다는데, 내가 사는 동네에도 오는 게 아닐까?’ ‘지나가다가 나한테 총을 겨누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 그래도 시각장애인은 평소에도 자유롭게 이동하기 어려운데, 긴급히 대처해야 하는 위급 상황에서는 더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계엄 선포가 믿기지 않았고, 큰일 나는 건 아닐까 두려웠어요. 같은 위기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사회적 약자가 더 힘들어요.”

그러나 이 안건은 기각됐다. 다음날인 2월11일 인권위 사무처 직원 5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대국민 사과를 하고 고개를 숙였다. “안창호, 김용원, 이충상, 한석훈, 이한별, 강정혜는 그렇게 인권위 독립성을 훼손했습니다. 가히 인권위를 망치러 온 ‘파괴자들’이라 하겠습니다. (…)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의 발 빠른 대응으로 비상계엄이 해제되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 시민들은 오늘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까요.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요?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었을까요?”

인권위 ‘파괴자들’의 무도한 행동을 대신 사과할 만큼 직원들의 자괴감은 상당하다. 다음은 문정호 지부장이 2월24일 한겨레21과 만나 한 말이다. “문제의 안건이 의결됐을 때 회의장에 있던 직원들, 중계화면으로 회의 진행 상황을 지켜본 직원들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떻게 이런 안건이 통과될 수 있는 거지?’ 하면서 분개했어요. 다들 머리가 띵했죠. 그날(2월10일) 직원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엄청 많이 받았대요. ‘어떻게 그런 안건이 인권위에서 통과될 수 있느냐’는 항의였죠.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가만히 있으면 직원들도 그 안건에 동의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자각이 직원들을 움직였고, 그 공감대가 단체 행동으로 나타난 게 다음날(2월11일) 기자회견이었어요.”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왼쪽)과 이충상 전 인권위 상임위원. 한겨레 신소영·김태형 기자\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왼쪽)과 이충상 전 인권위 상임위원. 한겨레 신소영·김태형 기자\


 

왼쪽부터 이한별·한석훈·강정혜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한겨레 신소영 기자

왼쪽부터 이한별·한석훈·강정혜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한겨레 신소영 기자


‘형편없다’ ‘그것도 모르냐’ 직원 겁박·비난

직원들은 툭하면 직원들을 겁박하고 비난하는 김용원과 이충상, 그때마다 거드는 한석훈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한겨울에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에게 식수와 방한용품이 지급되도록 조처한 조사관이 “월권했다”는 비난을 받은 일이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2024년 2월 한국알콜산업 울산공장에 있는 55m 높이의 연소탑에 올라가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한 농성자에게 식수와 방한용품이 제공되도록 한 조사관을 향해 “판관 노릇을 했다”(김용원), “그럴 권한이 없는데 월권했다”(이충상), “조사관이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한석훈)고 했다. 2024년 3월11일 전원위에서 나온 말들이다.

조사관이 현장에 가서 경찰과 대화해 인도적 차원에서 식수와 방한용품 반입 제한을 풀도록 한 일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침해 호소가 있거나 우려가 있는 현장에 가서 상황을 살피고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인권위 조사관의 역할”이라며 “마치 인권위 조사관이 현장에 가서 경찰관을 상대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이고 왜곡”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인권위 관계자는 “상임위, 전원위뿐만 아니라 김용원, 이충상이 위원장을 맡은 소위원회에서도 직원들이 많은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김용원은 진정사건을 조사해 예비조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한 조사관들에게 ‘그것도 모르냐’ ‘형편없는 보고서를 들고 온다’고 하고, 자신이 원하는 내용으로 보고서를 써오지 않으면 담당 조사관에게 ‘징계하겠다’고 하거나 회의실에서 퇴장시킨다”고 전했다. 소위원회는 생명권,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자기결정권과 같은 ‘인권침해 진정사건’과 성별, 연령, 학력, 장애 등을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 진정사건’을 일차적으로 심의하는 기구다.

이런 일은 옛 인권위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인권위 사무처가 출범한 2002년 4월1일 인권위에 와서 2018년 퇴직한 김성준 전 인권위 조사국장은 “상임위원이 회의 때 자신이 보고받은 안건 내용 중 잘 모르는 것을 사무처 보고자에게 물어보는 일은 늘 있었지만, 사무처 보고자의 발언 기회를 제한하거나 보고자에게 ‘당신은 잘못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일은 내가 재직하는 동안에는 없었다”고 말했다. 2019~2022년 국장급 직위인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을 지낸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비록 위원장, 사무총장, 국장, 과장, 직원들로 이어지는 위계 구조가 있긴 했지만 회의할 때 분위기가 되게 수평적이었다. 조사단에서 같이 근무했던 다른 중앙부처 파견 사무관들이 ‘이런 곳은 없다’고 할 정도였다”며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이 소위원회 회의에서 사무처 직원들을 대할 때 ‘보고서가 왜 이래’와 같은 말과 태도를 보인 일은 없었다. 회의 참석자들끼리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김현수 위원장은 이어 “내가 참석했던 소위원회의 위원장(상임위원)은 다른 비상임위원에게 발언할 기회를 많이 줬고 안건을 보고하는 조사관과 담당 과장, 국장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 회의를 대충 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2025년 2월24일 전원위에서 ‘2024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보고서’ 발간 추진 계획 보고 안건이 논의될 때 있었던 일이다. 이충상은 Ⅰ권 연간보고서와 Ⅱ권 인권상황보고서로 구성된 ‘2023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보고서’ 중 Ⅱ권을 언급하며 “담당 부서 직원이 신나게 현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주관적으로 쓴 것”이라고 보고서 집필 담당자를 몰아붙였다. 김용원도 “지금까지 나온 인권상황보고서를 보면 집필자의 개인적 평가가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며 “편향적인 보고서”라고 공격했다.

이들이 딴지를 건 인권상황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인권 문제와 개선 대책을 담은 보고서다. 한 해 주요 인권 현안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의견을 제출하는 50명 내외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인권상황 모니터링단’, 그리고 여성·장애·이주 등 각 영역 인권 전문가들과 인권위원(위원장 제외)으로 구성된 발간자문위원회 의견을 종합해 작성된다. 담당 부서 직원 한 명이 주관적으로 쓸 수 없는 보고서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대통령 윤석열(앞줄 오른쪽)이 2024년 9월12일 안창호 신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왼쪽)에게 임명장을 주고 그와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대통령 윤석열(앞줄 오른쪽)이 2024년 9월12일 안창호 신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왼쪽)에게 임명장을 주고 그와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함량 미달’ 인사 임명되지 않으려면…

이충상과 김용원, 한석훈, 이한별, 강정혜는 인권위가 2001년 11월 공식 출범 후 지금까지 유지해온 사건 처리 방식마저 훼손했다. 안창호도 여기에 가담했다. 상임위원 1명과 비상임위원 2명으로 구성되는 소위원회(위원장은 상임위원)에서 인권침해 진정사건과 평등권 침해의 차별 진정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현행 인권위법이 정하고 있다. 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그동안 소위원회에서 진정사건을 인용(피진정인에게 개선을 권고하거나 관계기관에 법·제도 개선을 권고) 또는 기각할 때 위원 3명이 모두 일치된 의견으로 결정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유지된 방식이다.

그런데 김용원과 이충상은 소위원회에서 위원 3명의 찬성이 없어도 소위원회 위원장이 안건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 통과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결국 안창호가 위원장으로 임명된 뒤인 2024년 10월28일 소위원회의 만장일치제를 무력화한 안건이 전원위에서 의결됐다. 소위원회 위원을 기존 3명에서 4명으로 하고, 진정사건 인용에 필요한 의결정족수(3명 이상 출석과 3명 이상 찬성)를 충족하지 못하면 소위원회 위원장이 진정사건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한 안건이다.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지 않고 그저 결론을 내는 데 급급한 회의로 운영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이에 따라 인권위 소위원회 6곳 중 한 곳인 군인권보호위원회는 2025년 1월1일부터 김용원과 한석훈, 이한별, 강정혜로 구성됐다. 이들은 2025년 2월19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박안수(전 육군참모총장), 여인형(전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전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전 정보사령관)의 보석 허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권위는 단순히 합의제 의결기관이 아니라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운영되는 기구다. 소위원회에서 위원들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인권침해 피해를 호소한 진정인과 우리 사회 인권 보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안건이 처리돼야 한다”며 “소위원회는 전원위의 사건 처리 부담을 덜기 위한 간이 절차로서 전원위 위임을 받아 사무를 처리하는 기구이지, 스스로 종국 판단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함량 미달’의 인사들이 인권위원(이하 위원장 포함)으로 임명된 뒤로 인권위가 권력자 편에 서고 시민과 멀어지면서, 인권위원을 국회에서 탄핵할 수 있도록 한 인권위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하지만 1993년 유엔 총회 결의로 채택된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 원칙)에서 강조하는 인권기구의 독립성, 그리고 탄핵이 ‘집권 세력에 거슬리는’ 인권위원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 등을 고려했을 때 탄핵 같은 강제수단보다는 인권 전문성과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임명될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인권위가 2024년 11월 발행한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승인소위원회 권고 국내 이행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이 연구를 수행한 한국인권학회는 인권위원 선출·임명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국회의장 소속으로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인권위법 개정 △현재 위원장에게만 적용되는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상임위원도 거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인권위원 후보자의 서면 시험, 공개 면접, 유엔과 국내외 인권기준 지식과 인권 감수성 시험 실시(인권위원 후보자 자격 검증제 도입) △인권위원 후보자 공개 모집 △인권위원 임명 후 평가 시스템 도입 등을 제안했다. 여기에, 현재(2025년 3월13일 기준) 인권위원 9명 중 7명이 법조인인 만큼 법조인 편중 현상을 해소하고 다양한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대통령 지명과 국회 선출 인권위원 후보는 비법조인을 우선하여 임명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원 지명과 선출 방식, 위원회 구성 등을 종합하여 국가인권기구의 등급을 심사하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승인소위원회는 한국 인권위를 상대로 한 2008년 2차 자격심사부터 2021년 5차 자격심사까지 일관되게 인권위원 선출과 임명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2026년 10월로 예정된 6차 자격심사에서도 같은 문제가 지적될 것으로 보인다

문정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가인권위원회지부 지부장(마이크를 들고 있는 인물)과 인권위 사무처 직원들이 2025년 2월1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정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가인권위원회지부 지부장(마이크를 들고 있는 인물)과 인권위 사무처 직원들이 2025년 2월1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위 직원들은 본연의 일을 해나갈 것”

문정호 지부장은 “일부 인권위원이 사적인 목적을 위해 인권위라는 공적 기관을 이용하고 있다. 인권위가 인권위 직원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차별받는 소수자, 인권침해를 겪은 분들을 위해 권리 구제 활동을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개탄스럽고, 그 자괴감을 직원들이 상당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누구처럼 인권위가 할 일까지 포기할 순 없다. 인권위를 지키는 직원들은 약속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권위가 지향해왔던 인권의 가치를 지켜내는 데 온 힘을 쏟겠습니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처지가 안 되는 이들과 부당한 차별을 받아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직원들은 인권위 본연의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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