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제작소에서 ‘언메이크 랩’(Unmake Lab)이란 걸 새롭게 쏘아올린다. 부제가 ‘다르게 만들기 혹은 망치기 연구실’이다. 청개구리제작소에서 좀더 확장돼 서로 다른 층위의 사람들이 모여 앙상블을 이뤄보자는 느낌이 강하다. 3년 정도 활동 시간을 가진 뒤 자연스레 생겨나고 있는 또 다른 방향성이다. 재밌는 건 지인들에게 얘기해주면 ‘다르게 만들기’보다는 ‘망치기’라는 표현에 다들 ‘꽂힌다’. 이뤄내고 증명해내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시간을 살다보니 ‘망친다’는 표현에 오히려 안도감과 상쾌함을 느끼나보다. 사실 ‘망친다’는 말은 ‘결과를 망쳐도 된다’는 의미보다 어떤 대상을 다루고 생각하는 새로운 방법을 익히는 것에 더 의미를 두자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그것의 결과가 망친 거라 하더라도 그 과정이 만들어낸 것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자는 의미다.
이런저런 것을 만들다보면 수많은 ‘망침’의 과정을 경험한다. 그때마다 열이 뻗치면서도 집착과 흥미, 새로운 자료를 찾으며 여러 시도를 더해간다. 그래도 계속 망치면 그것을 구석에 밀어놓고 오랫동안 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밀어놨던 그 망침을 우연히 다시 발견할 때 그것은 거의 열에 열, 새로운 영감과 환기를 준다. 그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지금 하는 일이 이것에서 어떻게 발전됐는지, 그때의 지각이 내 안에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깨닫게 된다. 그래서 망친 것들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사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 서 있는 길, 수많은 망침들이 만든 것이지 않은가. 그러니 많이 망치자, 라고 스스로에게도 얘기한다. 그게 이룸이더라, 라고 적고 보니 살짝 거짓말이다. 인생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ㅡ.ㅡ
그나저나 뭘 하든 ‘간지’는 못 버리는 닝겐들이라 언메이크 랩을 위한 재미있는 시각 작업을 해보자며 각자 그간 경험하고 방문했던 공간들의 사진을 모아보았다. 카톡으로 마구 날아온 사진들을 보니 이건 웃프고 언빌리버블한 세상이다. 주차장으로 변한 서울 용산의 남일당, 그 건너편의 엄청나게 솟은 주상복합아파트, 개발되길 기다리는 주상복합 앞의 너른 공터는 들꽃들이 채우고 있어 전원적인 낭만까지 풍긴다. 재개발로 퇴거한 집을 표시하기 위해 빨간 스프레이로 쓴 글자 ‘공’, 몇십 년 동안 반전운동을 하고 있는 일본의 한 마을, 식당 앞 목도리를 두른 인사 로봇, 솟아난 크레인타워가 빼곡하게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풍경, 4대강 사업으로 생긴 거대한 인공 (자연) 절벽, 24조원 규모의 신규 원전 유치를 경축하는 바닷가 마을의 현수막들 등등. 쓰리고 따끔거리다가도 어이상실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현실의 이미지는 기묘한 스펙터클을 주면서도 너무나 일상적이다. 네임펜으로 유약하고 실없는 농담 같은 이미지를 그 사진 위에 덧그려넣으며 피식거렸다. 살갗같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상이라니. 그런데 무엇을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이미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데. 헐.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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