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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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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릿대가 타니 꽁치가 익는구나

할머니가 한 달 동안 어디 가지도 않고 비린것도 먹지 않고
기른 누에고치를 일찍 수매하는 날, 고양이와 개도 함께 먹던 꽁치구이
등록 2014-07-19 15:14 수정 2020-05-03 04:27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할머니의 누에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누에는 돈이 되는 벌레인 것입니다.

부업이 흔치 않던 시절, 오월 단오 무렵, 면사무소에서 가정에 누에씨를 분양해 고치로 키우면 수매해 갔습니다. 깨알보다 작은 벌레 알을 종이판에 붙인 것 한 판을 누에 한 장이라고 합니다. 일 욕심 많은 할머니는 남들은 한 장 내지 한 장 반 정도 받는 것을 서너 장씩 받았습니다. 누에씨를 깊숙한 함지박에 담아 수건으로 덮어 서늘한 방구석에 놓아두면 며칠 지나 바늘끝 같은 애벌레가 태어납니다. 뽕잎을 아주 잘게 다져 애벌레 위에 살짝 뿌려주고, 다 먹으면 또 주기를 반복합니다. 누에가 크면 방 안에 덕(나무 기둥 사이에 널을 얹어 만든 시렁)을 매고 잠박에 나눠 담아 키웁니다. 누에가 커갈수록 잠박은 점점 늘어납니다. 누에는 밤낮으로 먹다가 사나흘이 지나면 하루쯤 꼼짝 않고 잠을 잡니다. 그러고는 허물을 벗고 또 자랍니다. 그렇게 일생 동안 정해진 양을 다 먹고 다섯 번 잠을 자면 고치를 짓습니다. 누에가 자라면 뽕잎을 크게 썰어 주다가 다 자라면 통째로 먹입니다. 할머니와 한방에 살았던 나는 밤마다 누에들이 ‘와사사사삭∼’ 비 오는 소리를 내며 뽕잎 먹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누에와 같이 먹고 잡니다. 할머니는 누에가 사랑스럽다고 하는데 아주 징그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른 벌레처럼 돌아다니지 않고, 충실하게 먹고 자고 하여 일생이 끝나는 날 자기 몸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짓고 스스로 자기 몸뚱이를 가둬 생을 마감합니다. 나방으로 환생해 알을 낳고 생을 계속할 수도 있고 귀한 실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할머니는 누에 기르는 한 달 동안은 어디 가지도 않고, 먹는 것도 가려 드셨습니다. 누에는 영물이라 집안에 비린내를 풍겨도 안 되고 부정한 것을 보고 와도 안 된다 하셨습니다. 누에에게 뽕을 줄 때마다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강에서 목욕도 자주 하셨습니다. 누에는 추위를 많이 타서 자다가도 불을 때고, 밤에도 등잔불을 켜놓고 두세 번 밥을 더 주어 고치를 만드는 시간을 단축시켰습니다.

할머니의 정성 덕에 우리 집은 늘 누에고치를 특등급으로 남보다 일찍 수매할 수 있었습니다. 누에 수매날은 꽁치를 두어 드럼(두름) 사다가 꽁치 잔치를 합니다. 한 드럼은 스무 마리인데, 비료포대로 싸고 새끼줄로 묶어서 사가지고 옵니다. 보리가 날 때쯤 나오는 꽁치는 보리꽁치라 하여 특별히 맛이 있었습니다.

해가 중천에 있을 때부터 저녁 준비를 합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화롯불을 준비하고 싸리가지도 준비합니다. 꽁치를 강에서 씻어오면 쉽지만 모처럼 비린내 나는 것을 먹으니 꽁치 씻은 물은 창자랑 함께 끓여 개에게 주려고 강물을 길어다 집에서 씻습니다. 평소에는 잡곡을 많이 섞어 밥을 하지만, 이날만은 하얀 이밥입니다.

상추와 배추 속고갱이 쌈도 준비해 상을 차려놓고, 화롯불에 굼붕쇠(화로 위에 올리는 삼발이)를 올려 그 위에 싸리가지를 총총히 놓고, 미리 씻어 소금 뿌려놓은 꽁치를 올려 굽습니다. 싸리가지가 노랗게 익으면서 꽁치도 함께 익습니다. 한참 지나 싸리가지가 타면서 구수한 향이 꽁치에 배어들어 맛있는 꽁치구이가 됩니다. 싸리가지가 타면 새 가지로 바꿔 올립니다. 참깨를 볶는 냄새보다 더 고소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멀리까지 퍼져나갑니다. 이웃집 고양이도 양옹 하며 달려오고, 개도 쫓아옵니다. 이놈들아 우리도 아직 밥 안 먹었다, 기다려라. 모두들 와르르 한바탕 웃습니다.

40마리 다 구워 잿불 화로에 굼붕쇠를 얹고 석쇠에 올려 식지 않도록 놓고 실컷 먹습니다. 통째로 들고 바삭하고 고소하고 짭조름한 꽁치살을 등뼈 따라 뜯어먹습니다. 금세 머리만 남긴 채 한 마리를 다 먹고, 또 한 마리를 먹습니다. 40마리도 적을 것 같았는데 아이들은 두 마리 반, 어른들은 세 마리씩 먹으니 배가 부릅니다. 잔칫날이라고 우리 집 개와 고양이에게는 꽁치 한 마리씩 먹이고, 먹고 남은 뼈와 머리는 밥을 섞어 이웃집 고양이와 개에게 줍니다.

훗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누에를 맡아 몇 년 동안 기른 적이 있습니다. 농촌지도소에서 나온 ‘누에 기르는 법’ 책에 나온 대로 온도를 맞추고 깨끗한 뽕을 먹이니 누에는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할머니는 초전에는 잘되다가 막판에 원인 모를 실패를 하고 안타까워하신 적이 많았습니다. 누에가 크면 자체 온도가 높아지는 걸 모르고 불을 너무 많이 때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실패의 원인을 알지 못해 애쓰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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