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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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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름다워 무서운

어린이 주인공 영화의 힘
등록 2014-07-05 15:39 수정 2020-05-03 04:27
호호호비치 제공

호호호비치 제공

어린아이들은 그 무지함, 무력함, 무능함으로 인해 사건과 감정을 증폭시킨다. 쥐들이 혹시 밤에 와서 동생의 주검을 뜯어 먹을까 걱정돼 며칠째 잠도 못 자고 동생 곁을 지키느라 바스러질 듯 피로에 전 꼬마가 너무 안쓰러운 이웃 아저씨가, 너는 대체 어떻게 된 애가 학교에서 쥐들도 밤에 잠을 잔다는 것도 안 배웠느냐며 짐짓 야단을 친다. 반신반의하던 아이가 그 말을 결국 믿어 그 작은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는 독일 소설 에서, 누구나 아는 전쟁의 아픔과 무의미함은 순진무구한 어린애를 통해 극대화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영화 (사진)도 아이의 처지를 통해 이슬람 사회의 현실을 촘촘히 그린다. 코란 외우기가 핵심인 교육과 오로지 정조와 순종으로 여자를 판단하는 극단적 남녀 차별도 어린애의 시선을 통과할 때 새로운 울림을 준다. 머리칼을 히잡으로 남김없이 다 가렸는지를 교문 앞에 서서 검사받고, 드디어 네가 머리뿐 아니라 얼굴까지 가리고 다닐 나이가 됐구나 하며 엄마가 기뻐한다. 먼발치에 아저씨들이 지나가면 하던 놀이를 멈추고 당장 피신해야 “정숙한 여자애들”이고, 어떤 애들은 그 나이에 마땅히 관심 가질 화장품 나부랭이와 쪽지 주고받기 때문에 퇴학을 당한다. 와즈다 엄마는 남자들이 쳐다보면 남편의 심기가 불편해질까봐 남자 없는 직장만 고집하며, 남편이 두 번째 신부를 맞는 문제에 대해 시가와 남편에게 한마디 하는 것은 꿈도 못 꾼 채 예비신부의 기를 죽일 궁리만 한다. 이런 사회에서 여자애가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처녀막이 사라질 위험에 노출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닌데 와즈다는 필사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다양한 모습이 어린아이의 간절한 자전거 사랑을 필터로 한눈에 조망되고, 자전거 바퀴와 저 너머를 동경하는 아이의 눈망울은 결국 폐부를 찔러 어느 한순간 관객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어린아이의 이토록 놀라운 영화적 힘은 최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에서는 아예 공포스러울 정도다. 어린 남매의 굶주림과 외로움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까지 울게 되는 이 영화는, 그러나 눈은 줄줄 울면서 머리로는 끝없이 찜찜하게 만드는 참으로 드문 작품이다. 배고파 제정신이 아닌 꼬마가 자갈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자기도 어린 주제에 오빠랍시고 동생을 돌보는 장면에서 어깨까지 흔들릴 정도로 통곡을 하면서도 근데 저게 아닌데, 저들이 저런 피해자가 아닌데, 하는 뜨악함이 머릿속에서 계속 흐르는 것이다. 불쾌해서 울음을 거부하려는데 또 너무 슬퍼서 눈물이 계속 나는 희한한 경험을 하면서, 어린애가 등장하는 수작(秀作)들의 힘은 얼마나 아름답고 또 얼마나 두려운지를 느끼게 된다.

오은하 회사원·영화진흥위원회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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