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크고, 붉었다. 제주 바다의 달은 ‘아름다웠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친구들은 황당해했다. “야, 저건 해잖아.” 저녁 무렵, 저물어가는 해를 보고 달이라고 착각했다. 달이 나올 시간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두고두고 이 일을 놀려먹는다. 어찌하여, 해와 달을 착각했단 말인가. 기본 상식, 상당히 떨어진다. 핑계를 덧붙이자면, 제법 긴 시간 동안 해 지는 모습을 도통 본 적이 없었다. 저녁을 잃은 직장인이 어디 한둘이겠는가마는, 자꾸 되뇌지 않으면 자연의 법칙도 잊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몇 년 전, 또래 남녀 20여 명과 심층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나고 자란 환경은 제각각이었고, 사는 방식도 달랐다. 하지만 놀랍도록 비슷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남들과 비교해’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남들과 비교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분투하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서 벗어나길 희망하지만, 현실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인터뷰를 통해 학벌이나 집안 배경 같은 내 안의 결핍과 마주할 수 있었다. 기자가 된 이후, 출신 대학이나 집안 환경을 물어보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기자도 취재원의 학력이나 인맥을 파악하는 게 일상이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쉽게 말하진 못하겠다. 다만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벗어나야 올곧이 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심히가 아니라, 잘하는 게 중요해진 연차에 접어들었다. 해와 달은 잊을 수 있어도 ‘비교 본능’을 지우긴 어렵다. 지난 1년 내내 참으로 ‘특종 보도’를 하고 싶었다. 좀더 ‘알려지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독자는 어느 기자가 어떤 뉴스를 가장 먼저 보도했는지 관심이 없지만. 기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다. 잘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동동거렸다. 마치 반에서 몇 등 아래로는 떨어지기 싫어, 관심 없는 산수 공부를 하는 것처럼. 정작 중요한 것들은 잊고, 남들의 평가와 인정에 매달려 살았던 모양새다. 그만큼 일은 괴로웠고, 평가에 민감해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작은 동네 공연장에서 50대와 60대로 구성된 여성 포크 듀오를 만났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거쳤을 언니님들은 그 어떤 젊은이들보다 유쾌하고 여유가 넘쳤다. 유명하지 않은 뮤지션의 삶은 녹록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공연 말미, 환갑이 넘었다는 언니님이 관객을 향해 말했다. “평생 해온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난 행복하다. 당신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새로 생긴 욕구다. 이번엔 잊지 않도록, 일기라도 써야겠다.
덧붙여. 잊고 지냈던 꿈 가운데 하나는 에 ‘김소희의 오마이섹스’ 같은 칼럼을 연재하는 것이었다. 기사 마감도 벅차, 조악한 글로 지면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을 졸였다. 과분한 칭찬으로 독려해주신 독자편집위원 K님과 독자 K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AA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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