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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첫 콘서트 취재인데~.”
다른 신문사 선배 기자가 동기 기자에게 ‘아쉽겠다’는 듯 인사말을 건넸다. 대중음악 담당 동기를 졸라, 일본 아이돌 ‘아라시’ 콘서트에 쫄래쫄래 쫓아간 날이었다. TV에서만 보던 니노미야 가즈나리와 마쓰모토 준이 번갈아 눈웃음을 치며 코앞까지 다가왔다. 엄숙한 기자 관람석에서, 혼자 벌떡 일어나 ‘꺅꺅’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그저 묵언수행을 했다. 란 이름의 무거움이랄까.
수습기자 시절, 까칠한 형사들에게 말 붙이기란 늘 어려웠다. 어느 날 밤, 영등포경찰서 화장실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정중한 매너와 웃는 얼굴에 누가 침 뱉으랴. 문을 나서니 때마침 시커먼 형사 한 명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형님!” 90도 인사를 했으나 시커먼 얼굴이 더욱 시커메졌다. 알고 보니, 그는 방송사 수습기자였다. 농담 섞인 훈계가 이어졌다. “ 기자가 공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면 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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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빛내지는 못할망정, 먹칠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다. 경제부에서 일할 때였다. 기업 홍보 담당자들을 만나는 게 늘 가시방석이었다. 점심 식사 약속이 많았는데 대개 밥값 계산은 그들 몫이었다. ‘기자가 사는 밥은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이 싫어, 호기롭게 신용카드를 긁기도 했으나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또 다른 고민은 그들이 들고 나오는 각종 상품들이었다. 신제품을 독자들보다 먼저 체험해본 뒤, 솔직한 평가를 쓰는 기사가 있었던 때도 아닌지라 마음에 걸렸다. 밥 얻어먹고 제품까지 받아드는 날이 이어지면서, 불편함이 극에 달했다. 사내 게시판에는 사내 윤리강령이 올려져 있었다. 5만원을 초과하는 선물은 돌려보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5만원’이란 숫자는 강렬했다. A사 홍보 담당자들과의 미팅이 끝날 무렵이었다. 홍보 브로슈어와 여러 종류의 화장품이 담긴 쇼핑백이 눈앞에 놓였다. 제품은 받지 않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쇼핑백을 열었다. 비싸 보이는 제품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쇼핑백에 남은 제품, 즉 5만원이 절대 넘지 않을 만큼만 받자고 생각했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 뒤통수가 뜨거웠다. 황당했을 터였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아직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무거움은 소개팅 자리까지 전이된다. 할 말을 탐색하던 소개남이 뜬금없이 정치 현안 이야기를 꺼낸다. 담당 분야 기사를 챙겨보는 것만으로도 바쁜 시절이었다. 무식함을 드러내는 건, 사명에 먹칠하는 것일 터. 소개남에게 ‘정기구독’ 그물을 던졌으나 무안하게도 거절당했다. 소개팅도 실패. 란 이름을 반가워해주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왕왕 있다. 기사 비판과 쓴소리를 넘어 ‘욕설’을 쏟아낸 전자우편을 열어볼 때면, 뚜껑도 함께 열린다. 개인정보가 널려 있는 한국 사회. 전자우편 주소 하나면, 신원 추적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내가 뭘 어찌하겠는가. 다만 ‘복수할 거야’ 폴더로 욕설 전자우편을 조용히 옮겨놓을 뿐.AA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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