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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어가는 새누리당에 묻어가기

묻어가기
등록 2014-06-11 15:54 수정 2020-05-03 04:27
twitter.com@JIYArashi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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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는 ‘발명품’이다. 2000년 12월4일, 삼성의 변칙 증여에 대한 국세청의 조사를 촉구하는 최초의 1인시위가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옥상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궁여지책으로 태어난 것이다. 국세청이 있는 빌딩 안에는 온두라스 대사관이 있었고, 집시법은 외국의 외교기관 반경 100m 이내에선 옥외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회는 2인 이상을 말했다. 2인 이상이 모이는 것이 금지된다면, 1인이 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집시법의 틈새를 파고들어 시작한 최초의 1인시위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누구나 아는 시위 형태가 되었다.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지금의 서울시장 박원순이다.

얼마 전 있었던 6·4 지방선거 막판에 새누리당은 동시다발적인 1인시위를 벌였다. ‘도와주십시오’라는 손글씨 피켓을 들고 광화문 등지에 서 있었던 것. 번듯한 피켓과 플래카드를 만들 재력이 충분한 사람들이 삐뚤빼뚤한 손글씨 피켓을 든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기만적인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이것은 특정층에 먹혀든 것 같다. 참여연대가 사회 모순에 맞서기 위한 시민행동으로 시작했던 1인시위라는 아이디어에 제일 큰 정당이 ‘묻어간’ 것이다.

이 상황이 하도 어처구니없으니 1인시위자 옆에 이런 피켓을 든 사람들이 서기 시작했다.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외칠 때 뭘 도왔나요? 잊지 않겠습니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국민을 ‘돕고’ 지키겠습니다”. 1인시위자들을 촬영하기 위해 언론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피켓들도 함께 담기는 것이다. 역시 이것도 ‘묻어가기’의 아이디어다. 이 중 압권은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쓰인 피켓이었다. 하하하!

얼마 전 트위터에서 박원순 시장이 리트위트한 투표 인증 사진을 보았다. 공중파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JYJ의 팬인 어떤 분이 손등에 투표도장을 찍고 그 밑에 “JYJ는 공중파로 우리는 투표소로”라고 쓰인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다. 현재 박원순 시장의 트위터 팔로어는 82만4177명으로 우리나라 정치인 중 가장 많다. 이분은 투표 인증과 박원순 시장을 통해 80만 명이 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알린 것이다. 기발하게 묻어가는 아이디어다.

영화 을 찍다가 실제 커플이 된 에마 스톤과 앤드루 가필드는 이왕 파파라치 샷 찍힐 거, “이렇게 관심받을 기회를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단체에 주는 건 어떨까요?”라는 말과 함께 세계고아지원재단과 암환자지원기관의 홈페이지 주소가 쓰인 종이를 든 채 사진에 찍혔다.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이용해 후원이 필요한 단체의 홍보를 한 것이다.

콜라라이프(colalife.org)는 세계 구석구석 오지까지 들어가는 코카콜라의 유통 시스템을 통해 의료 혜택이 미치기 어려운 곳까지 의약품을 배송한다. 에이드팟(Aidpod)이라는 이름의 이 의약품 키트는 납작하게 만들어져 상자 속 콜라병 사이사이에 끼울 수 있기 때문에 유통비를 줄일 수 있다. 멋지게 묻어간다.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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