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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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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급식과 600인의 고기도둑

보수의 프레이밍
등록 2014-09-06 14:13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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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짖거나 으르렁대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는 개를 보고 ‘착하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 중심적인 언어다. 그 개는 ‘순한’ 것이다. 순한 개를 착하다고 표현하는 곳에서, 성깔 있고 까칠한 개는 착하지 않은, 못된 개가 된다. 인류는 오랫동안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개를 ‘착하다’고 말하며, 늑대라는 늠름하고 야성적인 종의 자손을 사람이 주는 먹이에 의존하도록 진화시켜왔다.

사람들은 가격이 싸면 ‘착한 가격’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소비자의 시각에서만 그렇다. 생산자가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든, ‘후려치기’로 하청업체를 우려먹든, 임금을 제대로 안 쳐주든 말이다. 마찬가지로 날씬하면서도 육감적인 몸매를 ‘착한 몸매’라 하는 곳에서, 평범한 몸매는 착하지 않은 몸매가 된다.

얼마 전 서울 광화문을 지나다 한 무리의 노인들을 보았다. “놀러가다 죽은 자 의사상자 지정은 개가 웃을 일”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물론 세월호 유족들은 의사상자 지정을 요구한 적도 없으니 그 피켓의 내용은 처음부터 거짓된 정보에 바탕한 것이다. 어찌됐건, 어디서 후원을 받고 나왔건, 300여 명의 사람들이 국가의 방조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고 그 슬픈 부모들이 있는 곳에서 그런 피켓을 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늙은 자들을 혐오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순간 저런 것들의 말을 잘 들으라고, 저런 것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가르쳐온 이 나라의 성인 중 하나로서 무척 부끄러웠다. 그렇게 했던 아이들은 ‘착하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언어는 사고를 프레이밍(framing)한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우리 내부의 프레임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언어로 인해 프레임이 무의식적으로 들어서기도 한다. 정치권에서는 프레이밍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보수파는 ‘세금폭탄’이라는 자극적인 말을 퍼뜨려 공포감을 주고 본질을 왜곡한다. ‘귀족노조’라는 말을 만들어 그들의 요구를 배부른 소리로 몰아가기도 한다. 지난 선거에선 ‘농약급식’이란 말을 퍼뜨렸다. 그 논란에 걸맞은 이름은 ‘급식 네거티브’ 정도가 될 것이었다. 보수 쪽은 언제나 한발 앞서 기민하게 언어를 조작해 내놓고, 반대 세력은 그것을 규탄하느라 힘을 빼앗긴다. 선제공격을 당하고 있지 말라. 언어를 쉽게 여기면 안 된다. 고민을 시작하자. ‘privatization’은 ‘민영화’가 맞을까, ‘사영화’가 맞을까?

올 초에 변아무개라는 사람이 보수대연합 대회 뒤 뒤풀이 장소였던 고깃집에서 제대로 계산하지 않은 채 가버린 사건이 있었다. 이것을 ‘고깃집 계산 실랑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기사에선가 이런 기가 막힌 표현을 썼다. “변××와 600인의 고기도둑.” 너무나 강렬해서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방금 포털에서 변아무개씨의 이름을 쳐봤더니 여전히 저 표현이 자동 완성된다. 프레이밍이란 강력한 것이다. 적어도 변아무개씨의 이름으로 식당 단체 예약은 평생 힘들 것 같다.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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