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고 나서 한동안 아침마다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삽으로 시멘트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 어디서 또 공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며칠 지나면 끝나겠지 싶었는데 웬걸, 한 달이 지나도 계속 같은 소리가 들렸다. 지익- 지익-. 소리도 박자 맞춰 규칙적인 것이, 도대체 무슨 작업인지 몰라도 무척 짜증이 났다. 그러다 어느 날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동네 할머니가 보행보조기를 밀면서 천천히 걷는 소리였다. 아, 그랬구나. 다음날 아침부터 신기하게도 그 짜증스럽던 소리가, ‘아, 할머니 걸으시네’로 바뀌었다. 분명 같은 크기로, 같은 박자로 들리는 소음이었지만 그게 거슬리지 않게 된 것이다. 어느 날부터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덜컥, 할머니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이 될 터였다.
내가 ‘신영복식 층간소음 해결법’이라고 부르는 게 있다. 신영복(사진) 선생이 말하기를, 위층에서 쿵쿵 뛰는 애 때문에 시끄러우면 올라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면서 애 얼굴도 보고 이름도 물어보라는 것이다. 왜냐. 선생의 지론은 이렇다. ‘아는 애가 뛰면 덜 시끄럽다.’
물리적으로는 해결된 게 없거나 결과적으로 패배했는데 정신의 변화로 문제를 극복하는 것을 ‘정신승리’라고 한다. 어쩌면 신영복 선생은 과연 정신승리의 달인일지도 모르겠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특별가석방되기까지 20년간 복역하면서도 선생의 정신은 우울이나 체념으로 빠지지 않고 꼿꼿했으며 온화했다. 그 물리적 구속 안에서 휴지며 엽서에 빼곡히 쓴 정신승리의 정수가 우리 시대의 고전 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박원순 시장도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시골에서 자라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기쁨도 잠시, 3개월 만에 교내 시위에 연루돼 제적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만다. 처음엔 공포스러웠지만 이내 많은 책을 읽고 사색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옥은 완벽한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곳입니다.’ 감옥 생활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었다며 ‘감옥이야말로 저에게 새로운 삶을 개척하게 해준 곳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꼭 한번 가볼 만한 곳입니다’라고 말이다.
1964년에 만들어진 멋진 뮤지컬 영화 에서 굴뚝청소부인 버트는 이렇게 노래한다. 검댕과 연기와 함께 지내면서 알았다네. 세상에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는 걸. 굴뚝청소부는 행운아들! 굴뚝이야말로 마법으로 통하는 문이거든. 내가 뭐랬어? 온 세상이 발 아래로 보인다니까. 이런 걸 볼 수 있는 건 새들과 별들과 굴뚝청소부밖에 없지!’
정신승리. 나는 비꼬는 의미 하나 없이 이 말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냉소주의자가 아닌 정신승리자만이, 폐허에서도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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