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의 가사다. 자신이 별일 없이, 이렇다 할 고민도 없이 살고 있다는 자랑이다. 듣고 보니 별일 없다는 얘기가 어쩐지 대단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별일 없는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A. A. 밀른의 동화 에는 곰돌이 푸와 그 친구들- 피글렛, 래빗, 크리스토퍼 로빈 등- 이 즐기는 ‘푸스틱’(Poohsticks) 놀이라는 게 나온다. 다리 위에서 동시에 나뭇가지를 떨어뜨린 뒤 다리의 반대편으로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강물을 따라 가장 먼저 흘러내려오는 나뭇가지의 주인이 이기는, 썰렁한 놀이다. 가끔은 강물이 너무 느리게 흘러 다리 난간에 붙어 서서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봐야 하기도 한다. 참 별일 없는 풍경이다. 의 평화롭고 별일 없는 세상을 사랑하는 영국 사람들은 1984년 이후 매년 ‘월드 푸스틱 챔피언십’을 열고, 우승자도 공식적으로 기록해둔다.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라는 PC게임은 트럭 기사가 되어 유럽의 여러 나라를 오가며 화물을 운송하는 게임이다. 트럭을 훔치거나, 다른 차들과 속도 경쟁을 하거나, 대포를 피해가며 적을 향해 돌진하는 것 따위는 없다. 그저 현실의 트럭 기사처럼 라디오를 들으며 차선을 바꾸고 비가 오면 와이퍼를 켜고 실제와 똑같은 도로를 따라 각국의 교통법규를 지켜가며 끝없이 운전하는 게 다다. 이러한 밋밋함에도 불구하고 극도의 사실성으로 이 게임의 인기는 엄연하다.
노르웨이 국영방송 <nrk>는 2011년 크루즈선이 피오르 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134시간 동안이나 방송했다. 아무런 스토리도, 갈등도, 캐릭터도 없는 이 방송을 노르웨이 인구의 절반 가까운 250만 명이 6일간 시청했다고 한다. 2009년에는 달리는 기차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7시간 동안 달리는 모습을 아무런 편집 없이 내보내기도 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금요일 밤 황금시간대에 편성됐고 1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양털을 깎아서 털실을 만들고 뜨개질하는 장면을 8시간30분 동안 방송한 적도 있고,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는 모습을 12시간 동안 보여준 적도 있단다. 그런데 이 별일 없는 방송들은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보다 인기가 높다.
드라마뿐 아니라 뉴스까지 막장으로 달리니 우리도 별일 없는 이야기에서 안식을 찾게 되는 것일까? tvN 프로그램 이 화제다. 목포에서도 배를 타고 6시간을 들어가야 닿는 조그만 섬, 만재도를 배경으로 두 남자가 세끼 밥을 지어 먹는 게 내용의 다다.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세끼 밥을 먹는 것, 별일 없이 일상을 사는 것, 그것은 사실 모두에게 소중한 일이기에 비로소 평범하다.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n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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