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M 연구원 스펜서 실버는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려고 했으나 실수로 접착력이 아주 약한 접착제를 만들게 되었다. 그는 이 접착제를 쓸 만한 곳을 찾으려 5년 동안 노력했지만 쓰임새를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3M의 다른 직원이 성가대에서 노래할 때 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사이사이에 종이를 끼운 찬송가 책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종이를 와르르 쏟은 적이 있었다. 이 경험으로 인해 그는 앞서 말한 접착제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3M의 엄청난 히트작이자 위대한 발명품인 ‘포스트잇’이 탄생했다.
다음은 마이클 조던이 나온 나이키 광고 카피다. “농구선수로서 나는 9천 개 이상 슛을 실패했고, 거의 300게임에서 패배했다. 26번이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슛을 놓쳐버렸다. 나는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나는 지금 ‘언젠가 성공하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 말라’는 뻔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실패한 화가로서 살았고, 실패한 채 죽었다. 그는 2천여 작품을 그렸지만 생전에 팔린 것은 거의 없었으며, 동생 테오에게 물감 살 돈을 빌려 그림을 그렸다. 그가 1886년 2월 테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1885년 5월 이후로 따뜻한 식사를 한 것은 오직 6번뿐이었다.” 가난과 정신질환의 고통 속에 죽어간 반 고흐의 작품들은, 그가 죽고 나서 11년 뒤 파리에서 열린 전시 이후 큰 명성을 누리게 된다. 로버트 팔콘 스콧 대령과 그의 탐험대원들인 윌슨, 보우어, 오츠, 에반스. 이들은 아름다운 실패자들로 기억된다. 아문센과의 남극점 최초 도달 경쟁에서 졌고, 돌아오는 길에 악천후를 만나 조난당하고 결국 모두 죽어버린 사람들. 발에 걸린 동상 때문에 대원들에게 누가 될까봐 ‘밖에 좀 나갔다 올 텐데,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소’라고 말한 뒤 스스로 텐트를 걸어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오츠 대령이 거기 있었다. 그들의 실패담은 그 어떤 성공의 이야기보다 진한 울림을 우리에게 남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위대한 천재였고 생전에도 명성을 누렸다. 그는 예술과 과학의 수많은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겼다. 또 그는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데 대단한 열정을 쏟았다. 그는 여러 종류의 비행기계를 고안하고 제작했지만, 모두 하늘을 나는 데는 실패했다. 그는 실패에 낙담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설계들은 훌륭했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강력하면서도 가벼운 엔진이 없었던 탓이다. 그의 실패한 착상과 설계는 미래의 기술자들에게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연금술에 성공한 인간은 지금껏 하나도 없다. 연금술은 2천여 년 동안이나 유행했고 그 위대한 아이작 뉴턴조차 30년 이상 연금술에 매달렸지만, 값싼 금속을 비싼 금으로 바꾸어내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실험은 모조리 실패했다. 그 허튼짓이 남긴 유산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물질과 원소가 수없이 발견됐고, 현대 화학이라는 거대한 분야가 그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연말연시, 성공을 기원하는 말이 많이 오간다. 성공은 좋은 것이겠으나, 실패를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근사한 실패는 실패가 아니며, 우리는 모두 거대한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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