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많은 경우 미터법을 쓰지만 허리 둘레는 인치로 잰다. 인치는 원래 엄지손가락의 너비에서 비롯되었다. 인치의 12배인 피트는 발 길이가 기원이다. 피트는 야드의 3분의 1인데, 야드는 한 팔을 뻗었을 때 코끝에서 엄지손가락까지의 길이다. 옛날에는 측정할 때 몸을 많이 사용했다. 몇 뼘, 몇 척, 몇 걸음, 몇 줌 등. 사람마다 신체 사이즈가 다르니 너와 나의 한 뼘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점점 도량형을 통일하고 그것을 지키는 일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암행어사도 마패와 함께 유척이라는 자를 갖고 다니면서 도량형을 정확히 지키는지 감찰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리적 단위를 설정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래서 6년간의 노력 끝에 적도~파리~북극을 잇는 자오선의 1천만분의 1을 정확히 측정해 드디어 미터(m)가 탄생했다. 그러니 미터는 엄연한 발명품이다.
필요에 따라 단위가 생겨나지만, 단위가 생겨나면 인식은 달라진다. 천체 사이의 거리를 재는 단위는 너무 커서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우주의 광활함이 느껴진다. 1광년은 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나아간 거리다. 빛은 1초 동안에만 약 30만km를 진행한다.
옛날에는 다섯 수레를 가득 채우는 책이라는 뜻의 ‘오거서’라는 말이 굉장한 장서, 학식, 정보량을 의미했다. 요즘엔 오거서 정도는 이 컴퓨터에 꽂힌 내 USB 메모리카드에도 들어간다. 리처드 파인만은 1959년의 저 유명한 연설에서, 핀 머리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4권의 모든 글자를 써넣을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금까지 인류가 책에 기록한 모든 정보는 팸플릿 하나 정도에 들어간다고도 했다. 영화 에는 “1기가요? 그럼 1천 메가. 우와 1천 메가면 평생을 써도 다 못 쓰겠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지금 들으면 웃음이 나오는 말이다. 디지털 정보 단위라는 것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없던 개념이었는데 지금은 비트, 바이트, 메가바이트, 기가바이트, 테라바이트도 익숙한 단위가 되어 있고, 정보전송속도를 나타내는 bps(초당 비트 수)는 자동차 속도 등을 나타내는 km/h만큼이나 친근하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서로에게 “날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물어본다. 사랑에는 단위가 없으므로 측정할 수도 없다. 그러니 “하늘만큼 땅만큼” 등 생각나는 가장 큰 단위를 말한다. 정지용은 노래했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맘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보고 싶은 맘은 호수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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