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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나는 ‘앞으로나란히’를 해본 적이 없다. 키가 워낙 작아서 늘 맨 앞에 섰기 때문이다. 내겐 막중한 임무가 있었는데, 뒤로 길게 늘어선 줄은 나부터 시작된 줄이므로 내가 허투루 몸을 움직이면 안 되었다. 옆 사람과의 간격을 정확히 유지하고 서 있어야 우리 줄 전체가 정확한 간격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줄의 기준이었다.
얼마 전 일러스트레이터 한 분을 만났는데, 올해에도 그랬듯 내년의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1월 전까진 못 만들어서 그분의 달력은 항상 2월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대신 이듬해 1월분까지 만들어서 열두 달을 채우긴 한단다. 하.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한 해가 1월부터 시작하는 것도 사람이 정한 일이요, 달력 열두 장이 꼭 1월부터 12월까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 달력 기준으로 한 해는 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다.
그러고 보니 ‘기준’으로 생각이 옮겨간다. 세계 시간의 기준이 되는 것은 영국 그리니치천문대다. 그곳에서 경도를 15도 옮겨가면 시간은 1시간 차이가 난다. 그리니치표준시가 0시일 때 우리나라는 +9시다. 중력의 기준은 지구다. 우리가 살고 있고 비교적 잘 아는 행성이니까. 지구가 우리를 당겨서 지표면에 묶어두는 힘을 중력이라 하고 그 크기를 1g으로 표시한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쯤 되는 0.1654g이고 목성의 적도상 중력은 2.358g이다.
예전에 누가 그런 말을 했다. 물은 어쩜 그리 신기하게도 100°C에서 끓고 0°C에서 어냐고. 당연하게도 섭씨온도의 기준이 물의 상태 변화였기 때문이다. 1742년 스웨덴 물리학자 셀시우스가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의 온도를 100등분해서 섭씨온도(셀시우스도)를 만들었으니까.
지난주 tvN 드라마 에서 장그래는 엄마가 거꾸로 붙여놓은 세계지도를 보고 ‘파격’에 대해 깨달았다. 지도는 보통 북쪽이 위쪽이다. 그래서 우리의 인식 속에 적도를 기준으로 북쪽이 위쪽이고 남쪽이 아래쪽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그래의 말처럼, 우주에 떠 있는 지구는 구체이고 위아래는 따로 있지 않다. 지도를 ‘바로’ 놓고 보면 한국은 대륙 끝에 매달린 반도지만 ‘거꾸로’ 놓고 보면 해양을 향해 뾰족하게 돌출한 당돌한 모습이 된다.
한국에서 표준어의 정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여러 이유로 서울말을 표준 삼기로 정해서 그렇지, 서울말이 가장 아름답거나 정확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서울말과 부산말을 적재적소에 섞어 쓰는데, 표현 영역이 얼마나 넓어지는지 모른다. 부산이나 광주, 제주말이 표준어였다면 어땠을까? 아니, 각 지역 사투리를 표준어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같은 온갖 사투리가 난무하는 드라마가 보통의 드라마가 될 것이다. 나는 그것도 꽤 긍정적 부분이 크리라고 생각한다.
이문재 시인이 올해 낸 시집 제목은 이다. 표제시는 이렇게 끝난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다시 한번 새긴다. 광막한 우주에는 위도 아래도 없으며, 나는 지금도 어느 줄의 맨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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