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질소과자’를 풍자하기 위해 160개의 과자 봉지로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건넌 대학생들 얘기를 보고 많이 웃었다. 하하하! 이 얼마나 재미있는 아이디어인가. 과자 봉지에 과자는 적고 질소만 가득 들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일종의 ‘에어백’이라 하겠다. 물에 띄워보자! 여러 개를 이어 뗏목을 만들자! 내친김에 한강을 건너보자!
‘국산 과자 과대포장, 해도 너무한다’ 같은 예상 가능한 신문 헤드라인이나 항의성명보다 이 ‘질소과자 뗏목 한강 도하사건’은 훨씬 강력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훌륭한 쇼다. 쇼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입소문이 퍼지게 한다.
2009년 10월17일, 몰디브의 대통령과 각료들은 잠수복을 입고 산소통을 멘 채 바다 밑바닥에 놓인 책상에 둘러앉아 서류에 서명을 했다. 세계 최초의 ‘해저 각료회의’로 기록되는 이 회의는 수몰 위기에 있는 몰디브의 사정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서명한 것은 기후변화회의에 보낼 온실가스 배출규제 촉구결의안이었다. 파란 바다 아래에서 대통령이 서명하는 그 인상적인 장면은 세계 각지의 신문에 실렸다. 그렇다. 이것은 쇼다. 쇼는 기억된다.
1992년, 식품안전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CSPI는 기자회견을 열고 TV 카메라 앞에 세끼 식사를 차려놓았다. 베이컨과 달걀을 곁들인 아침 식사, 빅맥과 감자튀김으로 이루어진 점심 식사, 그리고 다양한 사이드 메뉴를 곁들인 스테이크 저녁 식사까지. 그리고 발표했다. “극장에서 파는 미디엄 사이즈 버터 팝콘에는 이 음식들보다 동맥경화증을 유발하는 지방이 더 많이 들어 있습니다. 따로따로가 아니라 이 세 끼니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이 말입니다!” 미국의 온갖 방송·신문사는 앞다퉈 이 소식을 뉴스에 내보냈고 팝콘 판매량은 곤두박질쳤다.
1967년 어느 날 영국 런던 도심의 트래펄가 광장에 있는 넬슨 제독의 전승기념물인 사자상을 누군가가 흰 천으로 휘감아버렸다. 그리고 거기에다 자기 몸까지 쇠사슬로 묶어버렸다. 검은 머리의 자그마한 여자, 34살의 오노 요코였다. 미국의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그 행위는 “과거의 전쟁과 현재의 전쟁에 복종하지 말라”는 메시지로도 읽혔다. 도발적이고도 효과적인 쇼였다.
올여름,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기부를 촉진하기 위한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이로 인해 우리 돈으로 1025억원을 모았다고 한다. 질병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아이디어로는 누구도 예기치 못한, 유쾌한 방식의 쇼였다. 하지만 쇼만으로 그쳐선 안 된다. 우리나라의 여러 정치인들도 얼음물을 뒤집어썼으며 대통령도 기부금을 내놓는 방식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희귀·난치성 질환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기 위한 내년도 예산을 30억원이나 깎았다고 한다.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참, 쇼하고 있다.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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