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평등

새사연의 <분노의 숫자>
등록 2014-05-10 18:22 수정 2020-05-03 04:27
1

1

2003년 8월 92만9천 명이던 한국의 시간제 노동자는 2013년 8월엔 188만3천 명으로 늘어 전체 임금노동자의 10%를 넘었다. 2010년 소득 하위 20%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43.1%였는데 그 다음해에는 201.7%로 크게 올랐다. 한국의 빈곤 탈출률은 2006년 35.43%였다가 2009년에는 31.28%로 계속 낮아진다. 소득수준이 최저생계비 이하로 떨어지는 절대 빈곤을 경험하는 가구 비율은 거의 그대로인데, 다시 바닥에서 일어서는 빈곤 탈출률은 점점 낮아지니 빈곤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숫자는 힘이 세다. 몇 년 동안 살금살금 내려앉는 듯하더니 우리네 형편을 통계로 들여다보니 삶의 질이 꾸준히 후퇴해온 정황이 명확해진다. 나빠지지 않은 곳도 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6년 동안 10대 대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은 평균 3.5배가 늘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년 동안 기업 순이익은 25%가 늘었다. 막연히 어깨를 누르던 짐의 정체는 차별이다. 열심히 일해도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임금과 사회보험 혜택에 직면한다. 2013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4820원이었지만 전체 임금노동자의 10%를 넘는 200만 명이 최저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늙으면, 아프면, 가난한데 아이를 낳으면 벼랑 끝에 몰린다는 공포도 사실이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8.3%로 세계 1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아동가족복지 지출 수준은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 중 최하위다. 그사이 사교육비와 물가는 현기증 날 만큼 올라 아이 한 명을 키워서 대학까지 보내는 데 드는 돈은 3억1천만원으로 집계된다. 소득 하위 20%는 버는 돈의 24.55%를 의료비에 쓰지만 상위 20%는 2.36%만 쓴다. 가난하면 아프기 쉽고, 아프면 더 가난해진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2년 동안 한국 사회의 통계 수치를 모아 분석한 책 (동녘 펴냄)에서 그리는 한국인의 자화상은 절망적이다. 월소득 100만원 미만인 가구는 한 달에 6만8천원을 들여, 700만원 이상인 가구는 42만6천원을 들여 아이를 키운다. 어린이·청소년의 교육지수는 122.99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 주관적 행복지수는 72.54로 최하위다. 청년이 되어서는 그중 112만 명이 최저 주거 기준에도 미달하는 집에 살며 그중 절반 정도가 일자리를 얻는다(2013년 기준 20대 취업률 55.8%). 65살 이상 고령자의 17.4%(남자 기준)가 일을 한다. 홀로 사는 일자리 없는 노인 10명 중 7명이 빈곤에 처해 있다. 숫자들이 그리는 한국 사회는 ‘벼랑 끝 사회’의 모습이다. 5월1일 통계청은 중산층의 몰락 정도를 나타내는 ‘울프슨 지수’가 2011년 0.254에서 2012년 0.256으로 늘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책 안팎에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는 명확하다. “한국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분노의 숫자는 절망의 숫자로 바뀔지 모른다.” 책 머리말에 붙인 경제학자 정태인씨의 말이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1010호 주요 기사



  [표지이야기] 가만있지 마라
  [표지이야기] ‘짐이 곧 국가’ 다만 ‘국가 개조’에선 빠지겠소
  [표지이야기] 적어도, 김기춘·남재준·김장수
  [표지이야기] ‘음모론’이 믿을 만하다?
  [레드기획] 한국 재난영화와 세월호는 왜 이다지도 닮았나
  [사회] “내 노래가 쓸모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