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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판이 사라졌다

충남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출범 9년 만에 문 닫아… 국민의힘 다수 충남도의회가 ‘센터 폐지’ 조례 통과
등록 2025-01-23 15:31 수정 2025-01-27 14:37
부여공익활동지원센터가 활동을 지원한 마을기록팀이 2023년 12월 전시회를 열었다. 송인걸 기자

부여공익활동지원센터가 활동을 지원한 마을기록팀이 2023년 12월 전시회를 열었다. 송인걸 기자


계엄 설거지로 세상이 뒤숭숭하던 2024년 12월 말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가 문 닫았습니다. 앞서 보름여 전인 12월14일 충남 내포시 충남공감마루 1층에서는 이 센터의 활동을 정리한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9년의 여정, 성과공유회’가 열려 이 센터가 어떤 사업을 했고 성과는 어떠했는지를 밝혔습니다.

9년의 여정, 성과공유회 열려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는 2016년 출범해 충남 지역 시민사회 생태계 기반을 구축하고 활동가(1491명) 교육, 청년 공익활동가(50명) 육성 등을 통해 9년 동안 시민사회 생태계를 강화하는 사업들을 했습니다. 또 서산(2020년 6월), 논산(2020년 8월), 당진(2021년 1월), 부여(2021년 6월)에 시·군 단위 공익활동지원센터를 열었습니다. 시·군 센터는 공모를 거쳐 주민들이 스스로 공익활동을 하려고 만든 동아리들과 전문가를 이어줘 아이디어를 공익사업화하고 소규모 사업비를 지원했습니다. 이를 통해 주민·활동가·전문가가 결합한 플랫폼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센터 자료를 보면, 2024년 말 현재 각종 활동에 참여한 시민은 4793명, 공익활동 사업비를 지원받은 시민 모임은 723개, 지원 예산은 센터 총예산 61억552만원의 45.9%인 28억276만원입니다.

어떤 아이디어가 활동으로 이어졌을까요? ‘홍반장팀’은 2023년 부여공익활동지원센터의 ‘리빙랩 실험’ 공모에 선정됐습니다. 김성미, 김희경, 이선영, 김애정씨 등 ‘홍반장팀’ 팀원들은 ‘잘못된 것을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 그래서 일상의 불편함을 스스로 풀어내려는’ 지역사회의 언니·동생들입니다. 이들은 센터에서 소개한 전문가의 조언과 활동비를 지원받아 장바구니 임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부여읍내 장터에서 비닐봉지와 종이상자를 추방하자’는 환경 실험에 도전한 거죠. 장바구니 제작비는 부여공익활동지원센터가 지원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실험이 진행될수록 주민들 사이에 ‘장터에 비닐봉지와 상자가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더니 장바구니를 갖고 다니는 이가 늘었습니다. 6개월 활동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장터에서 비닐봉지와 종이상자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게시가 끝난 펼침막 천으로 장바구니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 주려던 처음 아이디어는 펼침막 천이 바느질에 적합하지 않아 실패했지만, 홍반장팀의 소소한 도전은 부여읍내 장터를 변화시켰습니다.

2024년 12월14일 충남 내포시 충남공감마루 1층에서 열린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9년의 여정, 성과공유회’.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제공

2024년 12월14일 충남 내포시 충남공감마루 1층에서 열린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9년의 여정, 성과공유회’.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제공


서산·논산·부여·당진 ‘풀뿌리 활동’

소소한 도전은 어떻게 성공했을까요? 인구 6만 명 안팎인 초고령화 사회 충남 부여의 시민의식을 엿볼 수 있는 조사가 하나 있습니다. 부여공익활동지원센터가 공모에 앞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주민 스스로 공익활동을 하려고 만든 모임이 84개나 됐습니다. ‘학부모회에서 환경교육을 받고 지구를 지키려고’ ‘자원봉사 활동을 하다 고향 거리를 가꾸고 싶어서’ ‘정겨운 동네를 기록하다 뜻이 같은 이들을 알게 돼 반가운 김에’ 등 모임을 꾸린 동기도 다양합니다.

활동가들은 센터가 재정이 있는 중간지원조직이어서 시민사회 성장에 기여했다고 말합니다. 지역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활동한 한 활동가는 “공익활동지원센터가 플랫폼으로서 시민·전문가 그룹과 함께 사업을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찾으면서 매년 사업이 발전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어렵지 않게 공익 활동을 하게 돼 민주 시민의식이 높아졌다”고 전했습니다. 공익활동에 참여한 단체를 대상으로 설문(92개 단체 중 46개 단체 365명 참여)했더니 ‘센터가 대단히(63.0%) 혹은 적당히(23.9%) 풀뿌리 활동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올해(2025년) 센터 활동이 중단됐습니다. 충남도의회가 2024년 9월 센터 활동의 근거인 ‘충청남도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조례’를 폐지하고 ‘충청남도 지역공동체 활성화와 소통협력증진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기 때문입니다. 새 조례에 따라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충남사회혁신센터는 문을 닫고 도지역공동체활성화센터가 설립됐습니다. 겉보기엔 이름만 바뀐 것 같지만, 새 조례에 따라 시민사회 활성화 전략, 풀뿌리 주민운동 지원사업, 민관협력체계 구축 등 시민사회 생태계 활성화 사업은 전면 축소됐습니다. 자생적인 시민 모임의 공익사업을 지원하고 활동가들을 양성하는 기능이 없어진 것이죠.

이에 대해 활동가들은 “행정에 시민사회가 껄끄러운 상황인 건 언제나 같은데 민선 8기 들어와서는 양쪽으로 완전히 갈라졌다. 도지사가 몇몇 단체를 아예 안 만나려 하니 행정도 눈치 보느라 시민사회를 배제하고,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도의회가 센터를 없애는 조례를 제정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긍정적 구실을 하던 기관을 제도나 조례 등을 폐지·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없애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뒤 민관협치·거버넌스 같은 용어도 사라졌다”고 지적했습니다.

2023년 부여공익활동지원센터의 공익실험실에 참여한 시민 동아리 회원들이 성과공유회를 기념해 한자리에 모였다. 송인걸 기자

2023년 부여공익활동지원센터의 공익실험실에 참여한 시민 동아리 회원들이 성과공유회를 기념해 한자리에 모였다. 송인걸 기자


“충남도, 시민단체 직접 지원 예산 부족 개선해야”

활동가들은 충남 시민사회 생태계를 다시 활성화하는 과제를 제안하는 것으로 성과보고회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들이 첫손에 꼽은 제안은 ‘조성자’로서의 센터 역할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센터를 연결자(73.9%), 지원자(79.0%)로서 인식하는 비율은 높았으나 시민사회 생태계 조성자라는 인식(61.6%)은 낮았거든요. 둘째는 충남 시민사회의 도시지역, 도농지역 등 지역별 편차가 큰 점을 살펴 운영안을 세우는 것입니다. 셋째는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10위(전체 평균의 40%) 수준인 충남도의 시민단체 직접 지원 정책과 예산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안정적인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고 공익활동지원사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어요.

“센터 복원하고 우리 다시 만납시다.” 활동가들은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플랫폼이 다시 열리기를 바라면서 손을 흔들어 작별했습니다.

내포(충남)=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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