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 제공
붉디붉은 동백꽃처럼 애모의 정 아득하지만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불쑥 받는 프러포즈처럼 봄이 오고 말았다. 느닷없이 왔으니 속절없이 갈까봐 걱정부터 앞서는 그런 봄이다. 생강꽃은 벌써 피었고 홍매에 벚꽃이 피려는 춘삼월 아득한 호시절에 겨울나기 온실 이야기를 쓰려니 좀 멋쩍기는 하지만 시작한 이야기니 매듭은 지어야겠다.
일기를 다시 들추어보니 2013년 12월1일 일벗 윤주열이 와서 굴착기로 반지하 온실 터를 팠고 나와 권 목수 둘이서 2013년 12월24일 일을 시작해 2014년 1월9일에 온실 목조 프레임 작업을 마쳤다. 신정이라 쉬고, 날씨가 너무 추워 쉬고 하면서 일했어도 헤아려보니 목재 프레임 만드는 데 열흘이나 걸렸다. 그러고 나서도 겨울 내내 어디 한 번 가지도 않고 (나의 일 친구 손준섭이 와서 이틀 동안 도와준 것을 빼고는) 부부와 큰아들 셋이 거의 석 달 동안 휴일을 이용해 돌 나르고 시멘트 개서 석축 쌓고 벽돌 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3월 말, 바야흐로 봄이 막 흐드러지려고 기지개를 켜는 시절에 우리 부부는 너무 역설적이게도 엄동설한 한겨울에 가장 빛을 발하는 반지하 온실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아마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란 것이 하다보면 항상 생각보다 더디다. 일이 좀 더디게 나가도 내 원칙은 확고했다. 목공 작업에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열 번 재고 한 번 자르라”는 금언을 이번 작업에도 적용해 나의 일 친구들과 내 머릿속에 있는 마스터플랜을 공유하고 수정하기 위해 피차간 묻고 답하고 의논하기를 반복했다. 일당을 주고받는 사이지만 작업장에서의 민주적(?) 토론과 소통은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나의 오랜 일벗들은 제 일인 양 진지해졌고 실수를 줄였으며 새로운 공법을 제안해 자재비도 줄였다. 그리고 다음번 작업자를 위해 세심하게 일처리를 하고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집현전 학사들에게 본받고픈 리더십을 보여준 세종과 소통을 통한 공론장의 중요성을 알려준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에게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면 필경 “당신, 잘난 척이 너무 심하다”는 아내의 지청구가 원투펀치로 이어질 것이지만 그래도 꼭 그러고픈 마음이다.
터파기 작업은 하루가 걸렸다. 온실 터가 평지라면 파낸 흙을 보온을 위해 북쪽에 쌓아 바람막이를 해야겠지만, 내 경우 이미 상당한 높이의 석축이 쌓여 있어 주변에 골고루 펼쳐 터파기의 수고를 줄였다. 굴착기로 깍두기를 썬다는 풍문이 있는 윤주열의 솜씨는 역시 그만이었다. 정확하게 직사각형을 파낸 동시에 물이 고일 경우를 대비해 온실 지하 바닥의 구배를 잡고 끝에 집수정(集水井)을 설치했다. 일을 이어받은 권 목수는 막걸리 한 잔을 앞에 둔 기획회의(?)를 통해 거의 정확하게 구입할 자재의 종류와 양을 산정했을 뿐 아니라 평소 친한 거래처에 도매가격으로 주문해 내 공사비를 줄여주었다. 자재가 도착하자 드디어 내가 범접하기 어려운 고수의 영역이 전개되었다. 온실의 외곽을 정확하게 직사각형으로 구획하고 이 직사각형 위에 지붕 구배를 고려해 수직의 기둥을 세우는 작업은 모든 작업의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진정한 목수는 수평과 수직을 잡는 ‘(먹)줄 튕기는’ 솜씨로 판가름 난다는 말이 실제 해보면 실감이 난다. 지켜보니 약간씩 굽고 휜 나무를 달래고 얼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직과 수평을 잡아내는 노하우는 저절로 나로 하여금 권 목수를 ‘싸부님’으로 ‘모시게’ 만들었다.
‘싸부님’이 (계산이 끝나) 홀연히 하산하신 뒤 남은 작업은 말이 좋아 여가형 가족노동이지 그야말로 노가다의 연속이었다. 호박돌과 주먹돌이 섞인 잡석을 한 차 주문해 부려놓고는 그 추운 한겨울에 시간 날 때마다 갖은 방법으로 날라다가 시멘트 모르타르를 개어 석축을 쌓고 잡석 다짐을 한 뒤 그 위에 벽돌로 길을 깔았다. 얼추 이 작업들을 마치자 이 고을의 맥가이버인 나의 일 친구 윤현이 와서 전기 작업을 도와주고 개장(?) 선물로 폐자재를 활용해 직접 만든 전등을 달아주었다. 그 덕분에 온실에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노래를 들으며 봄을 맞게 되었다. 아아, 봄날은 간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10시 이후에 출근”…정부, 노인일자리 ‘출·퇴근 시간’ 조정한다

최전방 ‘철책선 뚫렸다’고 지휘관 줄징계 안 한다…경계 개념 ‘영역’으로 전환

“당신 연기가 전쟁 범죄”…백악관, ‘트럼프 비판’ 조지 클루니에 막말

오만, 이란 구상에 선긋기…“호르무즈 통행료 안 받겠다”

이란, 호르무즈 재봉쇄…“합작 투자” 이권 챙기겠다는 트럼프

전한길 “이영훈 목사, 이재명에 약점 잡혔나? 그럴지도 모르잖아?”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확정…과반 득표로 본선 직행

신라 ‘흔한’ 근친혼, 부모가 서로 4촌 이내…첫 DNA 분석 대반전

이 대통령 “똑같은 조건일 때 비정규직이 보수 더 많이 받아야”

이란 지도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협상 무의미해질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