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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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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부엌, 그곳에 가면

잊히고 사라져가는 통영의 삶·문화와 전통, 아픈 역사를

단디 기록한 섬생활 문화탐사기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
등록 2014-04-14 14:09 수정 2020-05-03 04:27

경남 통영, 유명한 곳이다. 떠오르는 말이 여럿이다. 충무김밥, 굴, ‘쿠크다스섬’으로 알려진 소매물도, 동피랑 벽화마을까지. 외지인들에게 알려진 통영의 면모다. 그 속살은? 알려지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직접 가보지는 않았더라도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된 통영은 ‘알려진 면모 그대로가 아닐까’ 지레짐작하게 된다. 큰 실수였다. 여행자가 많이 찾는 통영 시내와 소매물도를 벗어난 ‘진짜’ 통영은 마치 보물섬 같다. 역사·문화와 주요 산물까지 저마다 다른 섬들이 통영 앞바다에 알알이 박혀 있다.

섬이 부엌이고, 부엌이 곧 섬

통영 용초도 바닷가에서 말리고 있는 미역.

통영 용초도 바닷가에서 말리고 있는 미역.

(남해의봄날 펴냄)는 ‘보물섬’이라는 표현 대신 ‘섬 부엌’이라는 낯선 말을 건넨다. 섬의 부엌은 섬의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더디 흐른다. 바다는 섬을 품고, 섬은 마을을 품고, 마을은 집을, 부엌을 품었다. 바다와 섬의 문화, 마을 공동체의 연대가 ‘섬 부엌’에 녹아들어 있다. 섬 전체가 부엌이고, 부엌이 곧 섬이다. 그저 ‘밥 짓기’의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느린 섬을 향해 글쓴이는 스스로 발길을 재촉했다. 휘적휘적 섬을 거닐며 감상에만 젖지 않는다. ‘단디’(제대로) 들여다본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나가 섬의 불 땐 아궁이에서 솟는 연기를 찾아나섰다. 근대화·현대화한 문명은 어떤 모습으로든 스며들기 마련이어서 원형에 가까운 섬 부엌이 곧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다.

이 한 권의 책은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민속지’ 같다. 섬 곳곳을 다니며 만난 섬사람들 목소리가 생생하다. “파래김 이기 돈이 쏠쏠하게 되는 기라,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모 갱문(해안)으로 간다. ‘모디이’라고 철사를 여러 겹 뭉쳐서 맨든 게 있어… 온 동네에서 파래김을 만들었씬깨나 늦게 가모 우물물이 말라삐리. 그뿐이가. 좀 늦으모 동네 어디에도 김발을 늘 데가 없다꼬. 우리 집 담장이고 밭둑 가지고는 모자라는 기라.” 글쓴이가 우도에서 만난 이임선(90) 할머니의 목소리다. 외지인들은 몰랐던 섬마다의 주요 산물, 굿 문화, 역사 등이 실제 공간과 맞물려 구성되어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책 속에는 간고등어의 주요 산지였던 욕지도에 보존된 간독(고등어에 소금 간을 해 보관하는 지하 창고), 한국전쟁 때 용초도에 세워졌던 북한군 포로수용소 표지석, 섬사람들을 지켜주는 당산할매가 깃들었다고 믿고 지켜낸 죽도의 원시림이 섬사람들의 생생한 설명과 함께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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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생기 넘치는 내용이 듬뿍 담긴 것은 글쓴이의 땀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글쓴이는 2012년 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통영 앞바다의 섬을 들락날락했다. 그는 통영에서만 12년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통영통’이다. 자신이 뿌리내린 공간에 대한 애정 없이는 나오지 못했을 결과물이다.

통영통 글쓴이와 출판인의 의기투합

이 책을 낸 출판사도 독특하다. 서울을 떠나 고향인 통영으로 돌아온 출판인 천혜란씨는 ‘남해의봄날’이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지역적으로 같은 뿌리를 지닌 글쓴이와 디자이너, 출판인이 한데 모여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는 ‘지속 가능한 삶의 씨앗’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시리즈는 지역의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기록하기 위해 유엔 지속가능발전교육 통영센터와 손잡고 만들어졌다. 천씨는 “앞으로 통영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라져가는 문화를 기록하고 남겨 지속할 수 있게 시리즈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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