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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도 안 알랴주는 걸 파는 동네

문래동 ‘디스코테크’ 만들기 ③
등록 2014-04-14 14:05 수정 2020-05-03 04:27
최빛나 제공

최빛나 제공

서울 문래동에 만들고 있다는 디스코테크(Disco-Tech)에 대한 얘기를 하는 김에 이 동네(마을 아님)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 문래역 7번 출구를 나서서 몇 분 걷다보면 왕곱창집을 기점으로 올드타운과 뉴타운의 선명한 분할이 펼쳐진다. 옛 방림방적 부지에 10여 년 전 지은 자이 아파트는 그 범용함 때문인지 이곳의 원주민처럼 자리를 잡고 있고, 50년 넘게 이곳을 지킨 철공소들은 오히려 이질적이고 생경한 이방인처럼 놓여 있다. 새것이 옛것보다 익숙해 보일 때, 아마 그때가 옛것이 발견되는 때일 것이다.

작업자와 예술가들이 이곳에 스며들었고, 그들의 활동은 ‘쇳가루와 예술의 아름다운 동거’로 종종 언론에 소개되었다. 주말에는 서울 도심에서 보기 어려운 이곳의 풍광을 호기심 어린 얼굴로 카메라에 담는 동호회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문래동 곳곳에 생기는 카페와 갤러리 같은 문화적 서식처는 그러한 발길이 안심하고 쉬는 곳들이다. 이곳의 쇠락하고 거친 제조업 현장은 문화적 기운들을 거치며 미적인 피사체가 되고, 그런 사정과는 별도로 이곳의 작은 철공소들은 오늘도 변해가는 경제구조 속에서 해체의 예감을 간직한 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실 문화적 시선을 걷어내고 본다면 이곳 공장의 노동조건은 열악한 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문래동을 향한 많은 문화적 시선이 그러한 노동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마치코바(동네에 있는 작은 공장)는 여전히 왕십리에, 창신동에 존재하고 있으며 드물게 남은 도심의 생산지다. 1960~70년대에는 산업부흥의 역군으로 치켜세웠던 곳이고(이면으론 공돌이), 이제는 ‘영세 공장’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실상 오랜 시간 응축돼온 기술자들의 장인적 길드이기도 하다. 이런 장인적 길드로서 마치코바는 흥미로운 공동체상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샤링(철판 절단), 빠우(금속 광내기), 로링(철판 원형말기) 같은 간판의 표현들에서도 드러난다. 네이버에 물어봐도 안 ‘알랴주는’ 그 일본식 표현으로 인해 해독 불능 문제로 먼저 다가오지만 사실 그 자체가 그들이 이루고 있는 상호적 분업 체계를 얘기해주는 것이다. 동대문에서 재봉 부속을 사려고 해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단추면 단추, 깡(버클 비슷한 것)이면 깡, 몇 가지 사려고 하면 ‘그건 저쪽 집에서 팔아’라며 알려준다. 즉, 한 곳에서 다 파는 경우가 별로 없다(물론 요즘은 모두 갖추고 판매하는 곳도 있다). 물론 이러한 시선 역시 참 문화적으로 공동체를 보는 시선이니 어쩔. 어쨌든 미적으로 문화적으로 발견되는 이면에 여전히 존재하는 노동의 조건과 생산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이 요즘 청개구리 요원들의 큰 관심사다. 산업사회의 쇠락해가는 동네에서 앙상하게 살찐 ‘공유’와 여기저기 만사형통인 ‘사회적인 것’들 사이에서 제작과 제조를, 그리고 노동을 미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루는 방식- 그것을 깡충/폴짝 넘어가는 전술은 뭐가 있을까, 하며 오늘도 봄 파티 벌일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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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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