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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놀아보자

문래동 디스코테크 개장기
등록 2014-03-12 14:56 수정 2020-05-03 04:27
최빛나 제공

최빛나 제공

유령 제작소로 2년 동안 참 많이도 이곳저곳 민폐를 끼치며 다녔다. 이름은 그럴듯하게 제작소라 붙여놓고는 당연히 있어야 할 ‘공간’은 없으니 이거 수상한 놈들이라 느껴질 만도 하건만 덕력 높으신 우리의 공범자들은 흔쾌히 공간을 빌려주셨다(이 지면을 빌려 깊은 애정을 표하고 싶다). 길거리, 공장, 갤러리, 카페, 농성장 등 가는 공간마다 접속하는 세계는 달랐고 그 면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갔고, 만들기를 매개로 연결되는 일시적인 공동체를 열었다. 참 좋은 시간들이었다.... ̄⌒ ̄.....라고 회고하기엔 사실 삽질도 이만저만이 아닌 시간들이었다.

공간을 가지지 않기로 한 것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기도 했는데, 많은 활동들이 우선 공간부터 만드는 것에 비하자면 말 그대로 청개구리 짓 한 거라 할 수 있다. 주된 이유야 ‘주거도 불안정한 이 시대에 공간은 무슨!’(돈이 없단 얘기)이 진솔한 대답이겠으나 그래도 공간을 가지게 되었을 때 생기는 폐쇄성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들에 대한 고민, 창조 도시들(!)의 생태계를 보며 길어올린 결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야흐로 이사다니느라 친해진 용달 사장님은 ‘아가씨들(?) 짐 잘 옮기는구마! 동업하지!’라는 농담을 치기 시작하시고 짐들은 알 까듯 착실히 늘어나 털실부터 우주복까지 그 목록이 점점 길어지고 있으니 이 일을 어째.

그리하여 그럴듯한 공간까지는 안 되어도 베이스캠프 정도 만들어보기로 했다. 서울 문래동. 도시의 멸종되어가는 오랜 이 준공업 동네는 또한 몇 년간의 꾸준한 문화적 밑천의 획득으로 6년 전에 비한다면 2배 이상 오른 임대료를 내야 한다(이제 아이러니도 아닌 뻔한 이야기). 그래도 뿌리 없는 이 도시에서 꽤나 오랜 시간 정붙여온 동네라 이곳에 자리를 펴기로 결정한다. 강점기에 지어진 집합 숙소였다는 영단주택의 남루한 지붕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 3층에는 재밌게도 옥상이 2개나 있고 2층에는 옥상이랄지 마당이랄지 모를 묘한 공간이 또 펼쳐져 있다.

이렇게 잇고 덧붙어진 공간 한켠에 작은 캠프를 만든다. 내부 공사를 한다고 오랜만에 목공 작업하며 몸 쓰는 일을 하니 초미세먼지가 뒤덮은 하늘이라 할지라도 달달한 봄기운과 함께 타카질의 탕탕거리는 소리 그루브 넘친다. 하지만 아직 덕업일치(덕질과 돈 버는 업의 일치)를 이루지 못해 덕력이 어느 것 하나 고수의 경지를 이룬 것이 없다. 그러다보니 책장이라고 만든 선반은 버드나무처럼 낭창거리며 기묘한 곡선미를 선보이고 1mm의 오차로 서랍의 디테일은 묘하게 떨어진다(신은 디테일에 깃들지니).

그래도 어쩔 것인가. 자작물에 깃드는 어여쁨이란 눈에 씌는 콩깍지와 같은 것이니 그대 멋있기만 하다. 이 공간, 올해도 신나고 싶어 대놓고 현혹하는 이름을 지었다. 디스코테크(Disco-Tech)- 뭐 가끔은 음주가무와 함께 테크(Theque)로도 돌변할 계획이다.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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