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맨발과 흙이 만나니…아킬레스건염도 훨훨

전남 곡성 편
2~3시간 맨발로 흙 밟고 일하니 건강 좋아지고 농사는 더 좋아져
등록 2025-04-04 19:15 수정 2025-04-09 11:14

 

과수원에서 맨발로 일하고 있다.

과수원에서 맨발로 일하고 있다.


2월부터 왼쪽 발이 안 좋더니, 아킬레스건염에 걸렸다.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긴 것인데, 발꿈치를 안쪽으로 구부리면 발꿈치 쪽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농사를 무리하게 한 탓일까. 한 달 넘게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병원 가서 소염제를 타 먹었지만, 아킬레스건염은 쉽게 낫지 않았다.

내 주변엔 맨발로 걷는 사람이 많다. 매일같이 1~2시간을 맨발로 산에 오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아예 맨발신발(어싱슈즈)을 신고 다니며 평상시에도 땅과 접촉하는 친구도 있다. 사실 맨발 걷기 효능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었다. 맨발로 걸으면 만병이 치유된다는 말은 좀 과장이 심한 것 아닌가. 한의원에서도, 약으로도 치유되지 않으니 갈 데까지 갔다. 맨발로 걸어나 보자 생각했다. 돈 드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광고

첫 도전은 집 앞 텃밭이다. 두꺼운 양말과 굽이 높은 신발을 벗고, 맨발과 흙이 만났다. 고은의 시가 떠올랐다. “방금 도끼에 쪼개어진 장작/ 속살에/ 싸락눈 뿌린다// 서로 낯설다.” 맨발과 흙의 사이가 그랬을까. 둘은 낯설었다. 햇볕을 쐐본 적이 없는 뽀얀 발이 흙에 닿았다. 차갑지만 보드라운 흙의 느낌이 맨발로 전해졌다. 약간의 두려움마저 점점 사라지고, 맨발로 집 앞 텃밭을 돌아다녔다. 나를 보며 먹을 것 좀 달라고 애원하는 닭들의 눈을 피할 수 없어, 맨발로 걷다가 풀을 뜯어 닭들에게 나눠줬다. 발은 딱히 큰 변화가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피곤함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날은 과수원이다. 과수원을 퍼머컬처 방식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감나무 사이에 복숭아·보리수·무화과 등을 심고, 그 밑에는 대파와 마리골드·컴프리·산마늘 등을 심는 것이다. 과수원에서 맨발로 다닌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혹시 모를 나뭇가지에 찔리거나, 벌레에 물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까짓것 좀 다치면 어때?’ 하는 마음으로 맨발로 과수원 일을 시작했다.

우선 나무를 심으려면 급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과수원 가에서 흐르는 냇물에 호수를 연결해 물이 나오게 만들었다. 펌프처럼 콸콸콸 쏟아지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물조리개와 삽, 묘목을 들고 온 과수원을 맨발로 돌아다니며 나무를 심었다. 중간에 나뭇가지에 찔리기도 했지만,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원시인이 된 기분이었다. 옛날 옛적 원시인도 이렇게 살았겠지.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발에 가시가 찔려도, 걸어 다니면서 짓이겨진 온갖 잡풀들이 상처를 치료하진 않았을까. 한의학의 침처럼, 발을 찔리는 것도 혈자리를 건들면서 오히려 몸을 풀어주기도 하진 않을까. 그렇게 2~3시간을 맨발로 다니며 과수원 일을 마쳤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킬레스건염이 상당 부분 치료됐다. 발목이 부드럽게 돌아가고, 통증도 나아졌다.

한의원의 침으로도, 소염제로도 낫지 않던 것이 맨발 걷기만으로 어느 정도 나을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이후 밭일할 때면 맨발로 하기 시작했다. 귀찮던 농사일이, 맨발로 하니 기분도 좋고 피곤함도 상당 부분 사라졌다. 무엇보다 자연과 접촉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무한한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듬뿍 받으며 농사일할 수 있다니. 농사가 좋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겨났다.

광고

 

글·사진 박기완 글짓는 농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