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 때 노무현과 후보 단일화했다고 좋다며 러브샷하던 걸 우리 당 사람들은 똑똑히 기억한다.”
2012년 봄 친박 인사들은 정몽준 의원에게 으름장을 놨다. 4·11 총선을 승리로 이끈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후보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당내 경선에 도전하려던 정몽준 의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박근혜 위원장을 비판했다. “식자층에선 박 위원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다고 걱정한다”고 했다. 앞서 총선 땐 “당이 유신의 그림자에 덮여 있다”고까지 했다. 친박은 반발했다.
정몽준(63)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장충초등학교 동창이다. 당시엔 서로 몰랐지만, 그 아버지들은 ‘개발독재’ 권력자와 정권의 비호 속에 성장을 거듭하던 기업인이란 ‘특수관계’였다. 두 사람이 처음 서로 알게 된 건 1990년대 중반 전직 국가대표가 운영하는 한 테니스클럽에서였다. 정 의원은 당시 현대중공업 회장(1987년~)이자 국회의원(1988년~)으로 월드컵 유치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1980년대 말 육영재단 분란을 끝으로 대외적인 공개 활동을 삼가고 있었다.
2002년 두 사람의 인연이 교차했다. 대한축구협회장이던 정 의원은 월드컵 열기 속에서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1998년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이회창 독주’에 염증을 느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만들었다. 북한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왔고, 9월 남북축구경기를 추진하면서 정 의원과 교류를 텄다. 두 사람의 연대가 점쳐졌고 11월엔 급기야 단둘이 만났다. 새로 창당한 국민통합21의 대선 후보였던 정 의원은 박 대통령에게 대표를 맡아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 전 의원이 창당기획단장이라는 이유 등이었다. 얼마 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으로 돌아갔고, 정몽준 의원은 단일화로 대권의 뜻을 미뤘다.
2007년 대선 때 사실상 ‘본선’이라 했던 당내 경선에서 박 대통령은 이명박 후보에게 졌다. 그 뒤 정 의원은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듬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른 총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정 의원에게 지역구를 서울로 옮겨오라고 했다. 불과 5개월 전에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당시 통합민주당 후보와 맞붙으라는 요구였다. 정 의원은 옮겨왔고, 이겼다. 그 공로로 그해 전당대회에서 2위 최고위원이 됐다. 2009년 박희태 당시 대표가 국회의장이 된 뒤엔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다. ‘당원이라면 누구나 당이 잘되길 바랄 것’이라며 호의를 기대한 정 의원과 친이-친박 간 격렬한 당내 갈등의 한 주체였던 박 대통령은 몇 차례 얼굴을 붉혔다.
이후에도 갈등의 골은 여전했다. 2011년엔 박 대통령의 미국 외교전문지 기고문에 대해, 정 의원이 “내가 잘 아는 교수”가 대필한 거라고 깎아내려, 친박 쪽 신경을 긁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경선에선 ‘박근혜 독주’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주장한 완전개방형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경선을 포기했다. 2002년 단일화를 들어 정 의원더러 ‘당에 가장 큰 피해를 줬던 인물’이라며 방방 뛰던 친박은, 대선 이후 당과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정몽준 의원은 3월4일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 출마를 선언한다. 그동안 내세워온 ‘반박’의 기치가 선거 과정에서 어떻게 표출될지 관심이 모인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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