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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박정희교’의 전도사

2006년 민선시장 첫 임기 때부터 ‘박정희 신격화’의 ‘저작권’ 일관되게 보여준 남유진 구미시장
박정희의 고향에서 그를 신앙하는 고도로 정치화된 언어의 화신
등록 2014-04-01 14:22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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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신’은 어떻게 비를 멈췄을까.

박정희를 단군과 헤라클레스급으로 격상시킨 ‘저작권’은 남유진 경북 구미시장에게 있다. 그는 지난 3월26일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기공식 때 내리던 비가 그치자 “위에 계신 박 전 대통령이 멈추신 것”이라며 ‘신실한 믿음’을 표했다. 지난해 11월14일 ‘박정희 대통령 탄신제’에서 자신의 ‘영웅’을 반인반신으로 규정해 입길에 오른 뒤였다. 그의 말로 ‘박정희 신격화’ 움직임도 본격 조명됐다.

그의 발언은 결코 돌출이 아니었다. 남 시장의 ‘반인반신 신앙’은 7년 전부터 태동하고 있었다. 2006년 시장 첫 임기(민선 4~5기 재선) 시작 때 그는 이미 날씨까지 자유자재로 부리는 반인반신의 숭배자였다. 지난 8년 동안 그는 자치단체장의 신분으로 ‘반인반신교’를 전도해왔다. 그가 박정희 추도식과 탄신일에 한 연설문을 모으면 그 자체로 반인반신교의 ‘경전’이자 ‘기도문’이 된다.

님은 “우리 민족의 영원하신 햇살”이십니다. “님을 따르고 흠모하는 저희들 모두 결연한 의지”를 모아 “님의 거룩하신 생애와 위대한 뜻을 가슴에 새기”(2006년 11월9일 ‘박정희 대통령 탄신 89주년 기념 축사’)겠습니다. “님의 청명한 지혜와 바다 같은 마음을 어찌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사랑과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생가 주변을 단장”하고 “관광벨트화해서 님을 기리는 모든 사람들의 발길을 편안하게 할 것”(2007년 10월26일 28기 추도식)입니다.

“뛰어난 예지력과 진취적 리더십”을 가진 “님이 태어나신 구미의 땅을 밟고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님의 위대한 영도력”이시여! “단 하루라도 잊지 못하고 잊을 수도 없는 님”(2009년 10월26일 30주기 추도식)이시여! “위대한 영웅”인 “각하의 위업은 황하의 바위와 같이 결코 흔들림 없는 위대한 역사”(2009년 11월14일 92회 탄신제)입니다. “부디 살아생전의 마음으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문무대왕처럼 우리나라의 안위와 구미의 영원한 안녕을 위해 굽어 살펴주”(2010년 10월26일 31주기 추도식)소서.

“영생불멸의 신과 같이 저희의 마음속에 살아 계신 님”(2011년 10월26일 32주기 추도식)이시여! “비록 동상으로나마 우리 곁에 다시 현신”(2011년 11월14일 94회 탄신제 때 박근혜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 앞에서 동상 제막)하신 님이시여! “낙동강 1300리 곧은 줄기가 태백의 작은 황지연못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번영의 힘찬 발걸음이 이곳 상모동 생가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2012년 11월14일 95회 탄신제) 하겠습니다.

남 시장은 재임 중 논란을 아랑곳 않고 대형 박정희 동상을 만들었다. 그의 임기 5년 동안 박정희 탄생 기념행사 예산이 18배 뛰었다. 2009년 ‘대한민국새마을박람회’를 열었을 땐 박정희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를 공연하기도 했다. 재선 땐 아예 ‘박정희 대통령 얼계승 프로젝트’를 10대 공약에 넣었다.

정치인 남 시장의 언어는 정치인의 언어가 아니다. 박정희를 신앙하는 종교인의 언어다. 그는 노골적으로 ‘박정희교 신자’를 자처한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고도로 정치화된 언어다. 박정희의 고향인 구미에서 박정희를 신으로 떠받드는 정치인의 종교적 언어는 강력한 무기다. 다른 지역에서 뭐라 욕하든 그가 필요한 것은 구미 시민의 표다. 그는 반인반신교의 언어로 코를 막아도 피할 수 없는 ‘박정희 향수’를 뿌리고 있다. 그 향수에 취한 시민들을 상대로 그는 6·4 지방선거에서 3선 도전에 나섰다. 구미시와 구미역의 이름을 ‘박정희시’와 ‘박정희역’으로 바꾸자는 한 예비후보의 제안은 남 시장보다 더 강한 향수를 뿌려야 하는 정치인들의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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