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호인데 이분에 대해 쓴다고 했다가 타박만 들었다. 대통령 퇴진을 얘기하고 있는데 이분이 문제냐고. 새해 첫 호니까 읽고 기분 좋아질 인물을 탐구하라고. 그러나 이분을 간과해선 안 된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현직의 포악함이 이분의 죄업을 가리고 있을 뿐.
일단 안 만나봤다. 만나기 어렵다. 나랏돈으로 사려던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사저를 포기하고 살고 있는 강남구 논현동 사저에 가봐도 문을 열어주지 않을 터다. 주 2회 찾는다는 테니스장도 마찬가지다. 2013년 11월13일 고향인 경북 포항 덕실마을 방문 행사를 찾아가 대선 개입을 지시했느냐고 물은 한 기자에게 “여기까지 따라왔어? 참 부지런도 하다, 허허”라고 말했단다. 다행히 가끔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을 전한다. 지난 성탄 전야에는 이렇게 썼다. “손주들, 어린이들이 정성을 다해 써내려간 크리스마스 카드를 읽을 때면 그 순간만큼은 할아버지인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안녕하신 것 같다.
그의 얼굴을 직접 본 건 6년여 전이다. 대선을 3일 앞둔 2007년 12월16일 밤. 이날 국회는 전쟁터였는데, 그는 이미 승리한 장수처럼 찾아왔다. ‘BBK 특검법’ 처리를 놓고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여야를 향해, “나는 부끄러울 게 없다”며 특검을 전격 수용한 직후다. 당시 한나라당 사람들이 그의 이름 석 자를 외치면, 당시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 사람들은 “사·기·꾼”이라고 응수했다. “대·통·령”이라고 외쳐도 “사·기·꾼”이라고 맞받았다. 어쨌거나 무난히 당선됐다.
2013년 12월19일 논현동 사저에 측근들이 모였다. 이날을 ‘트리플 데이’라고 부른다. 그의 생일·결혼기념일·당선일이 겹친 날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라는 익명을 즐겨 ‘이핵관’으로 불리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다음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의 ‘근황과 생각’을 전했다. 회고록을 쓰고 있고, 7월께 영문판을 먼저 낼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그는 ‘퇴임 대통령의 새로운 롤모델’을 고민 중이란다. 해외에서 강연, 봉사활동 등을 통해 국익에 기여하는 ‘대한민국 전도사’를 하겠다는 거다. 이핵관씨는 “퇴임 대통령의 불행한 문화라는 게 따지고 보면 정쟁에 얽혔기 때문에 그런 걸 벗어나서 국제적 활동을 통해 국익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문판, 해외, 국제적 활동! 2011년 펴낸 영문 자서전의 제목(<the uncharted path>)처럼 미지의 길을 가겠다는 것…?
회고록에 빠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그의 명언이 있다. “이번 정권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인 만큼 조그마한 흑점도 남기면 안 된다.”(2011년 7월)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당선인은 비도덕적이었고, 정권은 ‘도둑적’이었으나, 정권 출범 자체의 정당성은 인정됐다. 어쨌거나 2007년 대선의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 이는 없었으니까.
그가 물러나기 직전에 치러진 2012년 대선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지 궁금했는데, 이핵관씨는 이렇게 전한다. “그런 사안까지 국정 최고책임자가 다 일일이 알고 대응하거나 지시하는 일은 없죠.” 이런 말도 했다. “단초는 저희 정부의 임기 중에 제공됐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더욱 꼬인 건 여야 간의 정쟁이 얽히면서 더 증폭된 거 아닙니까.” 대선 개입, 그는 관계없는 일이고, 꼬이게 만든 현 정부가 알아서 하라는 거다. 자신감이 넘친다. 저지른 이들과 덮으려는 이들이 꼬이고 엮여 한 몸통이 됐기 때문일까? 이명박근혜? 그러나 ‘비도덕적’으로 탄생한 정권이 ‘도둑적’으로 운영됐던 전 정권에 들이댈 몽둥이가 없는 건 아니다. 4대강 비리, 자원외교 비리, 원전 비리, 측근 비리, 민간인 사찰… 이건, 이명박?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the>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친구’ 선관위 사무총장도 “부정 선거, 신이 아니고선 불가능”
“새해 벌 많이 받으세요”…국힘 외면하는 설 민심
“내일 가족 보러 간댔는데…” 22살의 꿈, 컨베이어벨트에 끼였다
윤석열 재판 최대 쟁점은 ‘그날의 지시’…수사 적법성도 다툴 듯
이재명 vs 국힘 대선주자 초박빙…박근혜 탄핵 때와 다른 판세, 왜
한반도 상공 ‘폭설 소용돌이’…설 연휴 30㎝ 쌓인다
‘정년 이후 노동’에 임금삭감은 당연한가
전도사 “빨갱이 잡으러 법원 침투”…‘전광훈 영향’ 광폭 수사
내란의 밤, 불 난 120·112…시민들 “전기 끊나” “피난 가야 하나”
경호처 직원들에 ‘윤석열 찬양’ 노래 시킨 건 “직장 내 괴롭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