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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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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 전부터 이미 대변인

아마추어 마술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민경욱 새 청와대 대변인…
임명 당일 오전까지 출근한 ‘친박 방송’ 꼭두각시 앵커의 눈속임
등록 2014-02-11 17:47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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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욱(51)은 마술사다. 트위터 소개글에 ‘KBS 문화부장, 전 9시 뉴스 앵커, 기자, 토론 진행자’와 함께 ‘아마추어 마술사’라고 써놓은 걸 보면 마술을 꽤 즐기는 것 같다. 그는 정치부 기자 시절 정치인,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마술을 선보였다고 한다. 그의 마술쇼를 봤던 한 기자는 “종이에 쓴 글씨를 안 보고 맞히거나, 그릇을 신문지로 싼 뒤 깨뜨렸는데 멀쩡한 걸 보고 다들 신기해했다”며 “분위기를 돋우는 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매번 마술쇼를 반복해 취재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의도적으로 마술을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누군가 “속임수가 빤히 보인다”고 하면 그는 정색하기도 했다. 어쨌든 취재원은 그를 기억했다.

민경욱 부장의 행보는 눈속임이었다. 그의 트위터 글을 보면, 지난해 10월18일 KBS 앵커 자리를 물러난 뒤 12월20일 “뒤늦은 승진”으로 문화부장이 됐다. 무려 “천 일 동안” 공영방송 앵커를 했다. 9월에 한국방송대상 앵커상도 받았다. 지난 2월4일 문화부장으로 데스크분석에 출연해 ‘문화재 복원 제대로 하려면’을 리포트 했다. 이날 오후 늦게 사표를 냈다(고 한다). 다음날(2월5일) 오전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문화부 리포트에 단신 사인을 냈다.

이날 후배 기자들과 한 점심 약속을 깨고 사라진 그는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청와대 춘추관에 나타났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새 대변인인 민경욱 KBS 보도국 문화부장”이라고 소개했다. 민경욱 부장은 설 연휴(1월30일~2월2일)가 시작되기 직전에 청와대로부터 연락받았으며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KBS는 공석 37일 만에 임명된 청와대 대변인 소식을 23번째 ‘간추린 단신’으로 전했다. “민경욱 전 KBS 보도국 문화부장이 임명됐다.” KBS는 그가 2월5일 ‘면직처리’됐으나 ‘면직시점’은 (임명 전날인) 2월4일이라고 2월6일 밝혔다.

민경욱 대변인 임명 직후 KBS 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비판 성명을 냈고, 공채 기수별 연명 성명이 쏟아졌다. 38기 기자들은 성명에서 “KBS가 정권의 나팔수라는 조롱, 이제는 완전히 무뎌질 만큼 지겹게 들어 더 이상 부끄러움은 없을 줄 알았다”고 한탄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2월6일 첫 브리핑을 했다. 이산가족 상봉 합의에 대한 네 개의 문장을 읽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해 “~라고 하셨습니다”는 문장을 이어가다, “상봉의 첫 단추가 잘 풀리길 바란다”는 내용의 대변인 생각으로 맺었다. 저녁 7시 두 번째 브리핑에서는 “박 대통령께서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해임 조치하셨습니다”라고 전했다. KBS 보도본부 막내인 40기 기자들은 2월7일 성명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말했습니다’에서 ‘박근혜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로 바뀐 모습, 우리가 미처 몰랐던 당신의 모습에서 이제는 ‘선배’라는 두 글자를 지우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손짓에도 존경받는 방송인으로 남았던 월터 크롱카이트(미국 이브닝 뉴스 앵커)를 존경한다”는 그의 옛 블로그 글(2010년 2월)이 새삼 회자됐다.
민경욱은 마술사였다. 앵커 옷을 입고 마술쇼를 했다. 그의 눈속임은 알아채기 쉬웠다. “민 기자가 이명박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 완전히 설득당했다”는 2011년 미국 외교 전문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덕분만은 아니었다. ‘친박 방송’ ‘땡박 뉴스’란 비판이 나올 만큼 노골적인 수준이어서, 알아채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그의 대변인 발탁 소식에 한 트위터리안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쭉~ 대변해왔는데 뭘.” 다들 알아챈 지 오래다. 민경욱은 마술사가 아니라 꼭두각시라는 걸.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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