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숨이 턱 막혔다. ‘우리를 술 푸게 한 개념 없는 판결들’이라니. 839호에 실린 2010년 올해의 판결 기획 ‘걸림돌 판결’ 기사에는 이런 제목이 달렸다. 10개로 추린 목록을 소개하는 기사에는 ‘개념 없는’ 판결문에 올린 판사들 이름도 꼼꼼히 기록했다. 이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이는 김종필(54·사법시험 28회) 당시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였다. 한 해 동안 걸림돌 판결에서만 ‘2관왕’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만약 ‘올해의 걸림돌 판사’를 뽑았다면, 2010년은 그의 몫이었으리라.
논란을 빚었던 4년 전 그의 판결 가운데 최악은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 사건과 관련한 1심 판결이었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지정한 것은 장병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가 파면 등 징계를 받은 군법무관들이 낸 징계 취소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담당 재판장이었던 그는 “헌법소원을 행사할 권리는 법률에 의해 보장되지만, 국가의 안전 보장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 군법무관을 비롯한 모든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과거사 관련 재판에서도 그의 ‘활약’은 돋보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 54명에게 유죄판결을 하고 일본 정부의 훈장까지 받은 이른바 ‘친일 판사’ 유영씨의 후손이 낸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 취소소송’도 그가 맡았다. 그는 “판사는 법령과 공소사실을 기초로 유무죄 여부와 형량을 결정하는 역할만 한다”며 유영 판사 후손의 손을 들어줬다. ‘친일 판사’ 선배의 허물을 덮으려 했던 그의 판결은 이듬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그랬던 오래전 ‘2관왕’이 다시 돌아왔다. 지난 1월12일, 청와대가 그를 법무비서관으로 내정한 것이다. 그는 법관의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최종 근무지 사건 수임을 제한하는 법 시행을 앞둔 2011년 초 사표를 내고 최근까지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서초동에서 ‘JP’로 통했다고 한다. 그를 아는 판사·기자들은 그의 이니셜을 줄여 JP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김 변호사 스스로도 처음 만나는 기자들에게도 “그냥 JP라 불러달라”고 말하곤 했단다. 대구 출신으로 법조계 주류가 아닌 경북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평소에도 눈에 띄는 행동을 많이 했다. 그는 자신의 판결을 비판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법관에게 진보는 있을 수 없다. 법관은 보수적이어야 한다. 진보를 논하고 싶으면 정치를 하든지 혁명가가 돼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사실 그의 판결은 보수적이라기보다 이례적인 면이 많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진보 성향 문화계 인사 찍어내기’라는 비판을 받았던 황지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교수직 박탈 취소 청구소송에서도 1심 재판장을 맡았던 그는 “교수직은 당연히 상실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파기환송했다. 앞서 2000년 서울지방법원 형사1단독 판사로 근무할 때는 만화가 이현세씨의 에 대해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죄를 적용해 벌금 300만원의 유죄판결을 내려 문화계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씨는 6년 뒤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처럼 ‘걸림돌 판결’ 종결자였던 그의 청와대행이라는 ‘문제적 인사’에 대해 정작 청와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긴 ‘서초동 JP’의 청와대행이 시간을 거스르고 있는 이 시대에 뭐가 특별하냐고 생각했으려나.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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