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해 천수를 누린 예술가는 어쩐지 매력이 없다. 예술가가 ‘전설’이 되기 위해선 그 삶에서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비범한 유년기, 신경질적인 기질 가운데 천재성이 빛나는 성장기, 순식간에 거둔 극적인 성공 따위다. 모두를 갖추고도 마지막 한 가지가 완성되지 않으면 전설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 ‘요절’이다.
비틀스의 멤버 존 레넌도 그랬다. 1980년 나이 마흔에 자신의 팬이 쏜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음으로써 존은 ‘전설’을 완성했다. 그에 비하면 살아남아 전설이 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제아무리 젊어서 찬란했던 예술가라 할지라도 늘어지는 뱃살과 함께 창조성마저 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레넌-매카트니’ 콤비로 존과 함께 비틀스를 이끌었던 폴 매카트니에게 ‘생육신’의 길은 더 고단했을 것이다.
72살의 나이에 오는 5월 첫 한국 공연을 앞둔 폴에게도 늘어진 뱃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파파라치의 사진 속 폴은 평범한 백인 노인이다. 그러나 음악가로서 그는 50년째 청년이다. 2013년에도 새 개인 앨범 를 발표하고 올 초에는 밴드 너바나의 원년 멤버들과 작업한 곡으로 2014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록음악상’을 받았다. 공식 누리집을 보면, 오는 5월에도 서울을 포함해 확정된 공연만 5개다. 살아남아 전설이 된 사나이라고 할 만하다.
어지간한 ‘멘탈 갑’이 아니고선 도달하기 어려운 자리다. “비틀스는 하나의 유기체 같았다”고 에릭 클랩턴은 회고했지만, 사실 그들은 함께 활동한 10여 년을 제외하면 철저하게 다른 길을 걸어왔다. 존은 비틀스 해체 뒤 폴이 결성한 밴드 ‘윙스’의 음악에 대해 자신의 솔로 앨범에서 “싸구려 음악 같다”든가 “예쁜 얼굴로 한두 해는 더 버틸 수 있겠지”라고 비웃기도 했다.
애초부터 비틀스는 (그들의 천성에 따라) 역할이 분담된 최초의 아이돌이었다. 존이 반항의 아이콘이었다면 조지 해리슨은 수줍지만 열정적인 막내였고 링고 스타는 천부적인 유머 감각과 여유를 갖춘 형이었다. 폴은 늘 예의 바른 도련님처럼 행동했다. 록스타답지 않은 그의 성실한 태도는 때로 ‘계산적’이라거나 ‘가식적’이라는 말로 평가절하됐다.
이를테면 멤버들이 투어를 쉬고 싶어 할 때도 폴은 주장했다. “투어를 해야 해. 연주를 날카롭게 가다듬자. 그게 음악인의 자세야.” 장인에 가깝다. “역설적으로 존이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무례하고 잔인하게 행동할수록 사람들은 그를 더 좋아했지만 폴의 순수한 친절은 사람들을 의심하게 만들고 그를 계산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헌터 데이비스, )
음악적인 평가에서도 폴은 손해 본 바가 좀 있다. 비틀스를 잘 알지 못하는 대중은 전설이 된 존을 비틀스의 아이콘으로 여긴다. 폴이 나 처럼 말랑한 대중음악을 작곡한 사실만을 안다. 클래식 악기와 화성을 사용한 나 같은 명곡을 폴이 작곡한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비틀스의 ‘전위’가 폭발한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작업의 주도권을 그가 쥐었던 것마저 대중에겐 생소하다.
어떤 의미에서 결국 1970년 솔로 앨범 발매와 동시에 비틀스 탈퇴를 선언한 이는 폴이었으므로 ‘계산적’이라는 그에 대한 평가는 옳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가라면 모름지기 ‘어딘가 부서진 듯한 감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폴 매카트니는 그의 칠십 평생을 통해 반증했다. 건강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면서도 평생 현역 록스타의 자리를 유지했다. 살아남아, 이제 반백 년 만에 한국의 팬들을 만난다. 비나이다. Long live the King(만수무강하시라)!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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