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여성 파워인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여성 의장 시대가 드디어 열렸다. 자그마한 체구에 온화한 미소가 서린 백발의 재닛 옐런 부의장이 벤 버냉키의 뒤를 잇게 된 것이다. 사실상 세계경제를 진두지휘해온 연준의 100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붕괴 지경의 유럽을 지탱해온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3선에 성공한 데 이어,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여성 파워를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그것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중앙은행 동네까지 말이다. 사실 한국은행에도 지난해 7월 첫 여성 부총재보가 탄생했다. ‘세계경제의 파수꾼’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2011년부터 여성 총재가 이끌고 있다.
물론 선출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미국 상원의 인준 과정에서 찬성 56표 대 반대 26표라는 사상 최저의 지지율에 그친 것이다. 또한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후보 지명 과정에서도 자신의 제자였던 로런스 서머스에 밀리는 수모를 겪었다. 그래도 옐런은 오뚝이처럼 일어섰고, 마침내 ‘세계경제의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에게 최초의 여성 의장이라는 영예를 누릴 시간보다는 남겨진 숙제가 더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버냉키가 막을 올린 출구전략을 어떻게 충격 없이 관리해나갈 것인가? 연준을 비롯해 주요국의 대규모 통화부양책이 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던 만큼, 이를 정리하는 과정 역시 답보다는 의문이 더 많고 각종 복잡다난한 문제로 얽혀 있는 모습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여에 걸친 반복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조금씩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회복력은 아직 미약하다. 특히 옐런이 주목하는 미국의 고용 사정은 외견상의 회복과는 달리 여전히 유약한 상황이다. 실업률이 7%까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예 구직 활동을 포기한 사람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연준의 내부 환경도 나빠지고 있다. 옐런은 케인스의 영감을 따르는 경제학자로서 수요 부양과 고용 회복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그는 출구전략에 최대한 신중을 기할 것으로 여겨지나, 정작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인적 구성은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경제의 자율 조정에 치중하려는 인사가 느는 추세다.
게다가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부의장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스탠리 피셔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데, 그의 통화정책은 옐런과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내부 기류는 소통과 합의를 중시하는 옐런에게 큰 부담이다. 그의 성패에 세계경제 향방의 많은 것이 의존한다면, 앞날에는 아직 먹구름이 자욱한 실정이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지난해 11월 인준 청문회에서 드러난 옐런의 지향성이다. 미국 중산층의 붕괴를 우려하던 한 상원의원은 그에게 “훌륭한 의장이 되어 브루클린의 지혜가 빛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옐런은 “브루클린 출신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옐런은 미국 경제의 흥망성쇠가 서린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다. 예전에 영화 에서 느꼈던 칙칙하고 암울한 정취가 그의 유년 시절을 이룬다. 물론 그는 유대인 중산층의 영재로 자랐지만, 그에게서 브루클린의 뿌리를 잊지 않고 그 지혜를 빛내겠다는 다짐을 듣는 순간, 지금도 장기 실업과 기회 상실로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의 단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 jangbo@hanafn.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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