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까 득일까.
언론과 정보통신 분야의 이력이 없는 첫 방송통신위원장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신임 방통위원장으로 최성준(57)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내정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박근혜 정부 두 번째 방통위원장이면서 역대 네 번째 위원장이 된다. 이경재 전 위원장은 이계철 2대 위원장의 잔여 임기만 채우고 물러나게 됐다. 친박 인사인 그의 연임 실패를 두고 ‘경질’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 내정자는 28년을 법조인으로만 살아왔다.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1986년)를 시작으로 수원지법 부장판사(2000년),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2006년), 서울고법 부장판사(2010년), 춘천지방법원장(2012년) 등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대법관 후보에 세 차례 올랐다. 고위 법관이 현직에서 곧바로 대통령 임명직 자리로 이동하는 것을 두고 삼권분립 훼손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법조인 경력 중에선 2010년 수석부장판사 때가 눈에 띈다. 당시 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교육과학기술부를 상대로 낸 조합원 명단 제공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 교과부에 초·중등 교사의 교원단체 가입 현황 제출을 요구한 상태였다. 교과부는 법원의 기각 결정 다음날 조 의원에게 명단을 넘겼다. 이 명단은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색깔론 공세의 근거 자료가 됐다.
최 내정자는 방송·통신 비전문가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인선 배경을 밝히면서 “법원 조직 내 신망이 두텁고 성품이 곧아 방송과 통신에 대한 규제와 이용자 보호 등 방송통신위원회의 업무를 판사 재직시 쌓은 경험과 식견을 바탕으로 합리적이며 공정하게 처리할 것으로 보여 발탁했다”고 했다. 대법원이 제공한 최 내정자의 프로필도 “정보법학회와 법원 내 지적재산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적재산권의 대가’라고 일컬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와 대법원이 우려를 씻기 위해 단어 선택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비전문가 출신 방통위원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방통위 내부에선 “최성준이 누구냐”는 반응이 다수다.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다 의외의 인물이어서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도 “며칠 전부터 법조계에서 위원장을 찾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긴 했으나, 어떤 배경이 작용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좀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법조인 중에서 행정부 고위직을 발탁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관행이 방통위원장에게까지 적용된 점도 편치 않은 분위기다. 최 내정자 본인도 기자들과 만나 “솔직히 방송·통신 분야에 깊은 지식이 없다. 옆에서 귀동냥한 정도”라고 했다.
법조인 출신 위원장이 정치 논리에 크게 휘둘려온 방통위를 맡아 좀더 균형을 잡을 것이란 견해도 없진 않다. 최 내정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통신 전문가로만 이뤄지는 것보다 법률 전문가도 참여해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방통위원장은 고도의 전문성과 정치력이 요구되는 자리다. 언론의 공정성·독립성 보호와 산업적 이해관계가 가파르게 견제·공존하는 과정에서 정치세력과 자본의 손길이 끊임없이 침투한다. 최시중 초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방송사 경영진 물갈이와 종합편성채널 선정을 주도하며 방송·통신 분야를 최대의 정치 격전장으로 만들었다. 방송·통신을 이끄는 수장이 방송·통신을 잘 모른다는 역설이 ‘예정된 독’이 될지 ‘의외의 득’이 될지 판가름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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