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강정을, 그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

제주해군기지 반대로 네 번째 구속돼 400여 일 째 복역 중인 영화평론가 양윤모
만기 출소 앞두고 있지만 그의 싸움은 계속되리
등록 2014-03-11 15:11 수정 2020-05-03 04:27
1

1

3월4일 397일째. “선생님, 포구에서 소라를 구우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밤처럼요.”(동균) 3월5일 398일째. “평화의 절규를 가두어놓고 평화의 섬이라니요.”(육지 사는 제주사름) 3월7일 400일째. “평화로의 온전한 투신, 이길 때까지 함께 쭉~.”(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2월 초부터 에 매일 실리고 있는 릴레이 의견 광고다. 광고는 누군가를 향한 항의이자 누군가를 향한 응원이다. 항의가 향하는 곳은 국가와 정부다. 응원 메시지가 향하는 주소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 161 제주교도소’다. 수신인은 301번 수인이다.

양윤모. 제주해군기지 반대로 현재 복역 중인 단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2월1일 네 번째 구속됐다. 해군기지 공사 차량을 막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혐의가 적용(항소심)됐다. 이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그는 구속 직후 52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2011년 71일간과 지난해 1월 42일간의 단식에 이어 세 번째였다.

그에게 빚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28번째 응원 광고를 낸 3월7일은 그의 400일째 수감일이다. 그가 발버둥치며 지키려던 구럼비 바위가 발파된 지 2년이 된 날이기도 하다. 교도소에서도 를 읽는 그에게 신문 지면을 빌려 응원의 뜻을 전하자는 생각에서 광고는 시작됐다. 외부와의 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그의 처지가 고려된 아이디어였다.

양윤모는 영화평론가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을 지냈고, 강우석필름아카데미 초대 교장을 역임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과 스크린쿼터영화인대책위원회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제주시 건입동이 그의 고향이며, 외할아버지는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였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운동 뒤 제주로 내려간 그는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의 눈에 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들어왔다. 해군기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자라기 전부터 그는 강정마을 구럼비 중덕해안가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반대 싸움을 시작했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거나 차량 밑에 들어가 공사를 막는 데 그는 늘 앞에 섰다. 그의 구속과 단식은 강정의 비명이 잦아들 때마다 세상의 관심을 되살리는 불씨가 됐다.

그는 강정을 모른 체할 수 없는 이유를 ‘평론가로서의 책무’ 때문이라고 설명해왔다. 그의 눈에 구럼비 바위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예술작품과 같았다. 그는 구럼비에 설 때마다 예술적 영감이 자신을 깨운다고 했다. 예술을 보호하고 지키는 자로서 영화평론가 양윤모는 강정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의 감독 올리버 스톤도 그를 면회하고 그의 싸움을 지지했다.

지난해 그의 수감 3일째(2월4일) 되는 날 제주특별자치도는 ‘민군복합항 논란’의 종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강정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지 건설 과정에서의 불법성을 감시하는 해양 조사 활동은 계속되고 있고, 공사장 정문에서 천주교 사제들의 ‘생명평화 미사’도 멈추지 않고 있다.

양윤모는 다음달 10일 1년6개월의 형을 마치고 만기 출소한다. 이생에서 벌써 네 번째 나서는 교도소 문이다. 홍기룡 제주군사기지저지범대위 집행위원장은 “출소하면 제주의 문화예술인들과 힘을 합쳐 강정마을을 생명평화마을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려 한다”고 그의 계획을 전했다. 릴레이 응원 광고는 출소날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