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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에 상상력을!

‘프린세스 가르텐’이란 오아시스
등록 2014-03-01 15:00 수정 2020-05-03 04:27
최빛나 제공

최빛나 제공

서울에서도 요 몇 년간 도시텃밭, 도시농업의 바람이 거세다. 사실 그런 담론이 기묘하게 이식돼 세종대왕상 앞을 벼상자로 덮는 예술적(?) 퍼포먼스로 귀결되거나 밀과 보리가 자라는 세운상가의 풍경으로 연결되는, 좀 충격 고로케이긴 하지만 말이다. 고백하자면 청개구리제작소의 활동에는 산골마을 폐교에서의 농사 경험이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농사를 지으며 몸의 문제와 기술의 문제를 포함해 대략 ‘인간의 조건’을 뒤늦게 시린 무릎 부여잡고 고민하던 요원들이 어리바리 뭔가를 시작하게 된 것이 지금의 청개구리제작소다. 단지 지금 도시텃밭의 획일적 풍경과 단체주문이라도 한 걸까 싶은 텃밭 원두막들을 보면 역시나 마음에 흠집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도시텃밭이라는 방법을 상상해낸 것은 좋으나 그 대안에 사로잡혀 그 이상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슬프다.

농사는 흔히 고전적 기술 정도로 이해되지만, 사실 인간이 이룬 여러 분야의 기술과 과학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도시텃밭은 제작 공간으로도 훌륭한 장치가 될 수 있는 ‘거리’가 많이 포함돼 있다. 일상의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에너지, 공학, 적정, 재활용, 문화적 향유의 기술이 삶의 기술로 매개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런 상상을 적극적으로 재미나게 담아낸 곳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요 몇 년간 ‘창조도시’라는 브랜드를 위해 꽤나 재개발의 몸살을 앓아왔다고 하는 독일 베를린이지만 서울의 빡빡한 격자에 비한다면 아주 밀도 낮고 상대적으로 생태성 충만한 도시다. 베를린에서도 다양한 도심농업이 시도되고 있는데, 그중 인상적인 곳이 ‘프린세스 가르텐’이라는 재밌는 이름을 가진 모바일 텃밭이었다. 언제 옮겨가야 할지 모를 운명을 아예 인정하고 모든 작물을 땅이 아닌 베드나 상자에 키우는 이곳 텃밭은, 농사를 매개로 다양한 실험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물을 키우는 것은 물론이고 그 작물을 바로 판매할 수 있는 작은 시장, 종종 열리는 공연과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나무들 사이에 날것으로 자리잡은 카페, 화덕을 만들어 제철 요리를 만드는가 하면 ‘리사이클 마피아’란 이름을 가진 그룹은 온갖 폐자재를 이용한 워크숍을 하기 위한 공간을 한쪽에 근사하게 만들어두고 있었다.

특히 텃밭을 위한 에너지 순환 시스템을 직접 고안한 것이 흥미로웠는데 손때 묻은 적정한 발명품들은 배수·생장·급수 시스템으로 고안돼 그것 자체로 훌륭한 조형적 생태계였다. 사실 도시에서 자연의 연기성 운운하는 것보다 지금 이곳에 가능하고 필요한 방식이라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현명함이 더 필요하다. 이곳은 농사라는 것을 매개로 소박하지만 통합적인 삶의 공간으로서 제작 공간의 모습을 현명하게 (그리고 멋있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봄은 오고 있고 흙의 감촉이 떠올라 마음이 꼬물거린다. 올해 어느 땅에서 이러고 좀 놀 수 있으면 좋겠다.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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